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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북한 지도, 만들어 보실래요?

[취재파일] 북한 지도, 만들어 보실래요?
돌이켜보면 저는 어릴 때부터 지도를 참 좋아했습니다. 여섯 살 때 부모님이 사주신 모 출판사의 '어린이 세계 백과사전'에서 처음 세계지도를 보고 틈만 나면 달력 뒷면 같은 큰 종이에 따라 그리기도 했고요, 스칸디나비아 반도 꼭대기의 두툼한 혹 같은 땅덩어리의 이름이 '콜라 반도'라는 걸 알고는 자주 먹지 못하던 콜라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기도 했죠. 학생 시절에는 사회과부도의 색색가지 예쁜 지도를 보고, 습자지를 대고 따라 그리는 일을 즐겨 했었습니다. 벼의 이모작 북한계(북쪽 한계) 지도라든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각국 세력도 등등……. 갈 수 없는 먼 곳, 살 수 없는 시대에 대한 호기심을 지도를 따라 그리며 많이 달랠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도를 좋아하던 꼬마는 어른이 되어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됐습니다. 저는 지난 2009년과 2010년에 걸쳐 국방부와 통일부에 출입했는데요, 가끔 미국의 상업위성업체가 발표하는 북한 지역 인공위성 사진을 기사에 활용했습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기지의 동향을 찍은 사진을 보니 기술자들이 많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든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 갱도를 뚫느라 파낸 흙이 많이 모인 장면이 포착되어 핵실험 준비가 시작된 것 같다든가 하는 기사들을 썼습니다. 북한의 지명은 일견 생소하면서도 우리와 체계가 같아서 친숙하고,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그리 먼 곳도 아니어서 딱딱한 기사에 흑백의 밋밋한 사진들을 사용하면서도 북한 지리에 대한 관심이 꽤나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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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북한 지도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국가지식포털에서 운영하는 북한지역정보넷( 바로가기)이나 검색을 통해 파편적인 정보만 얻을 수 있었고, 포털 사이트에서 운영하는 지도도 북한은 휑 하니 뚫려 있는 거대한 공백이었습니다. 가끔 인터넷에서 한반도를 밤에 찍은 위성사진을 보게 되는데요, 마치 그 사진을 그대로 지도로 옮겨놓은 것처럼 그 공백은 크고 넓었습니다.

그런데 세계의 전체상을 0과 1의 디지털로 바꾸고 있는 최대 포털 사이트 구글이 북한을 지도화해서 공개했습니다. 공개 시점은 미국 현지 시간으로 지난 월요일 밤이었고, 우리 시간으로는 화요일 낮이 공개 시점으로 결정됐습니다. 구글이 공개한 북한 지도에는 평양이나 개성, 함흥, 신의주 등 주요 도시의 거리와 건물, 지형지물들이 '깨알같이' 표시돼 있었습니다. 또 네이버나 다음 등의 포털사이트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지도처럼 축척을 이용해서 줌-인, 줌-아웃이 가능하고 마우스 클릭으로 이리저리 움직일 수도 있었습니다.

북한의 인터넷 지도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재미있고 의미가 있던 것은 이 지도가 인터넷 사용자들의 참여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구글은 북한의 위성 사진을 촘촘하게 모아 북한 전역을 마치 내려다보는 것처럼 만든 뒤 이를 자사의 지도 제작·참여 서비스인 '구글 맵 메이커'에 올렸습니다. 맵 메이커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은 이 위성사진을 PC 화면에 띄워 놓고 그 위에 지도를 그렸습니다. 이건 도로, 이건 건물, 이건 공장,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딱히 구글로부터 보상을 받지도 않은, 그야말로 '자발적'인 참여였습니다. 북한에 대한 작업은 약 2년 남짓 진행됐고, 많게는 10만여 건을 올린 사람부터 수백 건을 올린 사람까지 참여 정도도 다양했습니다. 그런 노력들이 모여 어느 정도 인터넷 지도의 모양이 갖춰졌다고 판단한 구글이 마침내 이를 공개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방대한 지도 제작 작업을 가능하게 한 이런 방식을 '클라우드 맵핑(cloud mapping)'이라고 하더군요. '클라우드'는 요즘 많이 쓰고 계시는 방식이죠. 파일이나 자료를 서버에 올려놓고 원하는 때 원하는 기기로 다운로드받아서 그때그때 이용하는 겁니다. USB 저장장치도, 외장 하드 디스크도 필요없지만 '보안'에 취약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무튼 구글의 맵 메이커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선의'가 모여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던 북한 위성사진 위에 도로와 철도가, 학교와 병원이, 농지와 공장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장한 정보가 잘못돼 있다면 이를 수정할 수도 있었고, 아예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한 마을을 집중적으로 도맡아 그릴 수도 있었습니다.

예전에 '그리드 컴퓨팅grid computing'에 잠시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드 컴퓨팅은 각각의 PC(정확하게는 CPU)의 유휴자원을 활용해 방대한 데이터를 조금씩 처리한 결과를 네트워크로 보내 한데 모으는 겁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외계인 탐사 프로젝트 세티(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프로젝트도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의 PC에서 조금씩 힘을 빌려 전파망원경이 수집한 외계 전파 데이터를 분석했던 일이 있습니다. 이번 북한 지도도, 아니 구글의 맵 메이커 전체도 개념적으로는 사람들의 '잉여 자원'을 한 군데로 끌어모은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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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29일)에 제가 보도했던 8뉴스 리포트 "평양 시내 한 눈에"( 기사보기)에 인터뷰이로 나왔던 황민우씨는 도로를 그리고 건물을 표시하면서 앞서 소개한 북한지역정보넷과 인터넷 기사 검색 등을 통해 이름을 찾고 입력까지 하는 훌륭한 자원봉사자였습니다. 모든 참여자가 그럴 의무도, 필요도 없지만, 황민우씨처럼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우리가 지금 깨알같이 정리된 평양의 지도를 손쉽게 마우스로 휙휙 둘러볼 수 있는 것이겠죠.

구글의 북한 지도는 아직 완성형이 아닙니다. 완성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습니다. 지금도 맵 메이커에 구글 아이디로 접속하면 북한 지역의 지도를 스스로 작성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작성한 오류를 수정할 수도 있습니다. 도로명이나 건물명을 모르시면 길을 따라 그대로 그리고 보통명사로 적는 것만으로도 참여가 가능합니다. 불분명한 정보는 언젠가는 분명한 정보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텅 빈 위성 사진에 나와 다른 사람들의 정성이 모여 무언가가 점점 채워지는 순수한 참여의 기쁨을 누리실 수 있습니다. 저도 이번 주말에 시간을 내서 북한 지도 작성에 한 땀을 보태볼 생각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 함께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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