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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광개토대왕이 보내준 선물 - 1600년 전 고구려비 발견

[취재파일] 광개토대왕이 보내준 선물 - 1600년 전 고구려비 발견
2012년 7월, 중국 지린성 지안시 마셴촌의 한 주민이 마을을 흐르고 있는 마셴하 다리 아래 100미터 지점에서 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이 주민은 비석을 지게차에 싣고 집으로 가져갔다. 부인과 함께 비석을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그냥 모른 척 하고 있을 물건이 아니’라고 느껴 바로 당국에 신고를 했다. 전문가들의 검증 결과, 이 비석은 바로 고구려 비석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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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비석 출토 당시 모습)

중국은 비석 발견 사실을 6달 뒤인 2013년 1월 4일, ‘중국문물보’를 통해 알렸다. ‘문물보’는 우리로 따지면 ‘문화재청’이 펴내는 소식지이다. 문물보는 이 비석을 ‘고구려비’라고 판단했다. 광개토대왕비, 충주 고구려비에 이어 세 번째 고구려비의 발견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비석이 발견된 지안 지역은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였던 국내성이 자리 잡았던 곳이다. 광개토대왕릉, 장수왕릉도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비석이 있었던 마셴하강 유역은 고구려 고분군 중에서도 비교적 큰 무덤군인데, 강 양쪽엔 7~800기에 달하는 고구려 적석총(돌무지무덤)이 분포하고 있다.

지안 고구려비는 1.7미터의 높이로 464킬로그램에 달한다. 형태로는 중국 후한대에 유행한 규수비 모양이다. 비석 머리 부분은 삼각형 모양을 띠고 있고, 몸통 부분은 네모난 장방형을 ‘규수비’라고 한다. 비석은 1600년의 세월을 거쳐 온 만큼 위아래 부분이 깎여있다. 앞면에는 고구려 예서체로 적힌 218자의 글자가 있었지만, 뒷면은 반들거렸다. 글자가 적혀 있었더라도 바람과 물에 씻겨 사라졌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건 비석에 적혀 있는 비문 내용이다. 중국에서도 전체 글자 가운데 절반 정도만 판독이 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우리 학자들의 판독은 더더욱 힘든 상황이다. 공개된 것은 탁본 한 장인데, 그마저도 글자가 희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이는 대로 판독을 해 본 결과, 광개토대왕비를 압축한 듯한 내용 때문에 ‘고구려비’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전체 비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고구려의 개국과 왕위 전승, 수묘제에 관한 것이다. 광개토대왕비가 건국설화, 왕위전승, 업적 치하, 연대기, 수묘연호 등으로 구성된 점으로 미루어볼 때 상당히 유사한 구성이다. 특히 수묘제(왕릉 관리에 관한 부역제도) 내용은 광개토대왕비보다도 상세하다. 지금까지 폭넓은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던 수묘제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쓰일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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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의 시기도 비문 내용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무0(戊0)’라고 건립연도를 의미하는 글자가 있지만, 0 부분은 희미한 상태다. 하지만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글자 모양은 ‘자(子)’ 아니면 ‘오(午)’일 가능성이 크다. 만약 ‘무자년’이라면 광개토대왕 집권기인 388년 비석이 세워졌다는 얘기이고, ‘무오년’이라면 358년이거나 418년이란 것이다. 여기서 좀 더 힘이 실리는 쪽은 ‘무자년’이다. ‘무자년’이 맞다면 지안 고구려비는 414년 장수왕 때 세워진 광개토대왕비보다도 시기적으로 앞선 것이 된다. 현재 전하고 있는 고구려 비석 가운데 최고(最古)로 인정받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 비석 3점의 형태 변화를 통해서도 지안 고구려비가 광개토대왕비와 충주 고구려비보다도 앞선 것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지안 고구려비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삼각형 머리 모양의 규수비이다. 하지만, 414년 세워진 광개토대왕비와 충주 고구려비는 사각기둥형이다. 사각기둥형 비석은 중국에는 없는 독창적인 모양이다. 처음에는 외국 문물을 수용했지만, 점차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

물론 중국에서 유행하던 비석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는 ‘동북공정’에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지안 고구려비 연구팀을 꾸려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에 동북공정을 주도하고 있는 학자들이 포함됐다고 한다. 또, 비석을 지안박물관에 보관한 채 공개를 하지 않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2012년이 광개토대왕이 태어난 지 1600년이 된 해였다. 한 학자는 지안 고구려비 발견이 탄신 1600주년을 맞아 광개토대왕이 우리에게 보내준 선물이라고 일컬었다. 그만큼 지안 고구려비는 우리 고대사 연구에 획기적인 발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학계는 더더욱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자꾸 동북공정을 운운하면 중국이 민감해져 더 폐쇄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우리 고대사 연구에 획기적인 발견인 만큼, 긴밀한 협조와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계 뿐 아니라 양국 정부의 노력도 중요할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선물, 조심히 풀어 소중히 보관하는 것이 선물에 대한 보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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