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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학생인권조례, 득일까 실일까

[취재파일] 학생인권조례, 득일까 실일까
교육 분야를 담당하면 학교를 자주 방문하게 됩니다. 서울시교육청을 출입하면서 요즘 졸업 이후 거의 찾지 않았던 학교를 수시로 방문하는데 정겹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기분이 참 묘합니다.

10여 년 전 학교와 요즘의 학교는 참 많이 다릅니다. 가장 다른 건 학교 분위기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참 자유롭습니다. 인터뷰를 부탁하면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힙니다. 때로는 너무 자유로워서 버릇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학생들의 변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교육과정이 변하고 학생의 인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변화는 서서히 조금씩 일어났다고 봅니다. 그런 변화 속에서 탄생한 아주 혁신적인 결과물이 '학생인권조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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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는 서울 시민의 손에서 시작됐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그동안 존재해도 의식하지 못했던 학생 인권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공론화하는 장을 만들었습니다. 여성 인권, 장애인 인권, 노인 인권처럼 학생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선언한 것이 학생인권조례입니다. 과거 학교 현장에서 학생과 교사가 가장 많이 충돌했던 체벌과 소지품 검사를 금지한 것은 상징성이 큽니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의 주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교사들은 학생인권조례에 불만이 많습니다. 조례 시행 이후 교사들의 설 자리가 좁아졌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인권을 보호하라며 교사의 지도를 거부하고, 이 과정에서 교사는 교권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교권침해 피해 사례가 시행 전보다 2~3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그래서 다수의 교사들로 구성된 교원단체 한국교총은 학생인권조례는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생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담론과 교육현장의 인식제고를 이끌어 낸 점은 인정하지만, 시행 과정에서 충분한 여론을 수렴하지 못했고 학교인권조례가 사실상 학교현장에서 외면받고 있는 점을 지적합니다.

또 다른 교원단체인 전교조는 생각이 다릅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정착도 하기 전에 누더기 조례가 돼서는 안된다고 반박합니다. 이제 첫걸음을 뗀 만큼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나타났던 폭력적인 모습이 사라지고 인권친화적인 학교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인권교육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생활지도의 어려움만 학생인권조례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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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는 이렇게 교사들 사이에서 평가가 엇갈리고, 학생들의 평가도 제각각입니다.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학교가 좀 더 편해졌다고 말하는 학생이 있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학생도 적지 않습니다.

생각이 다른 건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만든 교육청과 시의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감이 바뀐 이후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를 손질하려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시의회는 인권조례를 수정하는 주체는 의회라며 교육청의 움직임을 저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첫 돌을 맞은 학생인권조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시행한 지 1년 밖에 안된 조례를 두고 문제가 많으니 지금 바로 없애자는 주장은 성급하고, 한번 만들어 놓은 것은 절대 손댈 수 없다는 주장은 무책임합니다. 학생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만큼, 인권보호의 취지는 유지하면서 학생과 교사 모두 만족할 만한 대안을 찾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 아닐까요?

학부모들은 소지품 검사 금지에 불만이 많고, 교내 집회의 허용은 학생들을 정치적으로 내몬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차별 금지 조항은 동성애와 임신 및 출산을 방조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조항은 교사와 학생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학생인권조례의 주체는 학부모도 아니고 교육청도 아니고 의회도 아닙니다. 학교의 주인공이 학생과 교사이듯 인권조례의 주인공 역시 학생과 교사입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진보와 보수의 대결 구도로 변질되고 더이상 정치화 돼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학교 현장에서 폭력이 억압이 사라지고 교사는 학생을 존중하고 학생은 교사를 존경하는 건강한 학교가 될 수 있도록 학교인권조례의 두 주체가 스스로 해법을 찾아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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