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다 보면 고민스러운 순간이 있습니다. 꽉 밀린 정체구간에서 교차로에 진입할 때입니다. 분명 주행신호입니다. 하지만 앞 차가 꽉 밀려 있습니다. 직진 신호만 믿고 교차로에 진입을 했을 때 교차로를 통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운전자의 판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성과 감성이 싸우는 순간일 겁니다. 아무리 직진 신호지만 내가 교차로에 들어가면 통과를 하지 못할 거 같다는 판단에 멈춰야 한다는 이성도 분명 작용을 할 겁니다. 하지만, 좁은 차안에서 앞 차 꽁무니만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너무 답답하고 짜증나 있을 겁니다. 어떻게든 이 순간을 빨리 탈출하고 싶은 게 인간의 당연한 심리일 겁니다. 그러면 감성이 이성을 이기는 경우가 생길 겁니다.
그래서 앞 차 뒤에 붙어서 계속 앞으로만 앞으로만 가게 됩니다. 결과는 자명합니다. 차는 교차로 한 중간에 덩그러니 서 있을 겁니다. 다른 방향의 차들은 내 차때문에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성난 경적을 울려댈 겁니다. 그제서야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겁니다. 반대로 내가 판단을 해서 주행신호인데도 교차로에 진입을 하지 않으면 또 뒤에서 성난 경적이 나를 공격해 옵니다. 정체에 짜증이 난 운전자들이 주행신호인데 왜 안가냐며 난리를 부립니다.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고 차는 밀려서 화나고, 정체시 교차로 차 속에 있는 운전자들의 현실입니다.
이 상황은 흔히 이야기 하는 교차로 '꼬리물기'입니다. 꼬리물기 차량이 교차로를 막으면서 다른 방향의 차들의 흐름을 막습니다. 그러면 그 뒤로 길게 정체가 이어집니다. 이 정체는 이전 교차로까지 영향을 줍니다. 그러면 그 교차로에서 또 꼬리물기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또 정체가 생깁니다. 꼬리물기가 정체의 주범이라는 불리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경찰은 이 꼬리물기에 대한 강력한 단속에 나섰습니다. 교차로마다 교통경찰을 배치해서 교차로를 정리하고 위반차량을 단속도 합니다. 그리고 꼬리물기를 하지 말자는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그 효과는 크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퇴근시간에 몇 몇 교차로를 가봤습니다. 물론 정지선을 잘 지키면서 꼬리물기를 하지 않는 차량의 모습도 볼 수 있었지만, 매우 드물었습니다. 여전히 꼬리물기는 현실이었습니다. 경찰의 단속과 운전자들의 양심에만 맡겨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경찰들의 단속을 더 강화해야 할까? 아니면 꼬리물기에 대한 처벌 기준을 높여야 할까? 어느 조직이든 인력이 부족하겠지만, 경찰도 마찬가집니다. 경찰이 추정하고 있는 상습 꼬리물기 교차로는 서울에만 100곳 정도입니다. 한 교차로에 단속하고 정리하려면 3명~4명의 경찰이 필요합니다. 그럼 최소한 300명~400명의 경찰들이 매일매일 교차로에 나와서 단속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 합니다. 그럼, 꼬리물기 처벌을 강화해야 할까요. 얼마나 강화해야 할까요? '형평성'이라는 부분에서 설득력이 없습니다. 우리라나 도로교통법에 규정된 중앙선 침범이나 신호위반 등 10대 중과실의 규제 범위를 넘길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꼬리물기를 11대 중과실의 범위에 포함시키자는 주장도 과연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까요. 당장 과도한 규제라며 반발이 클 겁니다. 그리고 한계효용의 법칙에 따라 생활에서 일어나는 규제 범위의 한계에서 지금보다 벌금을 높인다고 해서 그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꼬리물기를 했다고해서 현행범으로 구속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대안을 찾아봤습니다. 우선, 단속의 효율성을 높이는 대안부터 이야기해 봐야 겠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교차로에는 CCTV가 설치돼 있습니다. 방법용이든, 단속용이든 CCTV보급율은 매우 높습니다. 이 CCTV를 통해 꼬리물기 단속을 활성화 시키는 방안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CCTV로 꼬리물기 단속을 해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꼬리물기는 과태료 부과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CCTV에 단속이 된 적발건은 과태료라는 행정절차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직 꼬리물기 위반, 다시 말해 교차로 주정차 위반은 과대료 부과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찍어도 운전자에게 강제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시행규칙만 수정하면 간단합니다. 과속이나 불법 주정차와 같이 교차로내 점선 안에 주정차하는 꼬리물기에 대해서 과태료를 부과하면 훨씬 단속의 효율성이 높아질 겁니다.
단속이외에 근본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간단한 것 부터 알아보겠습니다. 교차로 신호등 위치를 바꾸는 겁니다. 주행방향의 신호등은 대부분 교차로 건너편에 설치돼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운전자들은 건너편 주행신호를 보고 차가 앞에 밀려 있어도 계속 꼬리를 물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신호등을 정지선으로 이동시켜 놓으면 어떨까요. 정지선을 지나면 신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함부로 교차로 안으로 진입할 수 없을 겁니다. 현재 종로일대에 시범운행중입니다. 어느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고 경찰은 설명합니다.
조금 더 근본적인 방안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신호주기를 좀 줄여보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이 신호주기가 선진국보다 조금 깁니다. 아무래도 대로가 많다 보니 교통흐름을 고려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호체계는 순간순간의 교통흐름에 따라 주기를 전산으로 간단히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놨습니다. 다시말해 출퇴근 시간 같이 정체시간에는 신호주기를 조금 줄여보자는 게 전문가들의 제안입니다. 신호주기를 줄이면 교차로에 진입하는 차량의 수를 억제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같은 교통량일 경우 직진 신호가 60초일 경우 교차로에 진입하는 차량이 50대라고 가정해봅니다. 건너편 정체로 교차로를 빠져나갈 수 있는 차량의 수는 20대입니다. 그럼 30대는 꼬리물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신호주기를 절반으로 줄여보겠습니다. 그럼 25대가 교차로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그럼, 교차로를 지나지 못하는 차량은 5대입니다. 꼬리물기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겁니다. 단순한 산술적 비교이지만, 한국교통연구원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도 꼬리물기가 줄어드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신호주기 변경은 정확한 교통량 실태조사와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이 신호주기를 줄이는 작업은 전체 교통량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그런데 당장 이 신호주기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방안이 있습니다. 현재 시범운행하고 있는 '앞 막힘 제어용 검지기'를 확대하는 방안입니다. 이 검지기는 교차로를 지난 차량의 속도가 시속 5km미만이면 정지신호를 자동으로 바꿔주는 장치입니다. 다시말해서 교차로 반대편이 밀려 있으면 그 방향만 정지신호를 미리 줘서 더이상 교차로에 차량 진입을 아예 막는 장치인 겁니다. 이 장치는 정체로 꼬리물기가 발생하는 방향만 정지신호를 주는 겁니다. 강남역 사거리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신사역에서 양재역으로 가는 방향의 정체가 돼 꼬리물기가 생기면 검지기가 작동해 이 방향만 정지신호를 줍니다. 하지만 양재역에서 신사역으로 가는 방향은 정상운행이라면 이 방향은 계속 주행신호가 유지되는 겁니다. 결국 전체적인 교통흐름에도 방해를 주지 않는 겁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의 도움으로 시범현장을 직접 가봤습니다. 정체가 심한 구간이었는데도 검지기가 작동을 하니 교차로 안 꼬리물기가 줄어들면서 교차로 운행은 별 차질이 없었습니다. 약 6개월정도 시범운행중인데 경찰은 효과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검지기 시행전과 후를 비교해 보면 약 60%정도 꼬리물기 현상이 줄었다고 합니다.
이 검지기 하나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천 500만 원입니다. 서울시가 추정하고 있는 상습 꼬리물기 교차로는 약 100곳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5억 원만 있으면 일단 검지기를 통해 꼬리물기를 사전에 상당부분 제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적은 돈은 아닙니다. 그리고 유지관리까지 하려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정연구소 연구결과에 따르면 꼬리물기로 인해 한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751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투자해 볼 만도 하지 않을까요.그런데, 올해 책정된 검지기 관련 예산은 1천700만 원에 불과합니다.
시스템으로 꼬리물기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이 있습니다. 물론 보완해야 할 내용이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효과는 시범운행을 통해 조금씩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또 예산이 문제입니다. 본격 시행을 하던, 그 전에 연구를 하던, 돈이 필요한데 예산이 없어서 그냥 몇 년을 그냥 낭비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급한 불을 끄는데 필요한 예산이 강남의 고가 아파트 한 채 가격입니다. 강남의 고가 아파트 한 채면 서울시내 상당부분 교차로에서 꼬리물기가 많이 줄어들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그 돈이 없어서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참 씁쓸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