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안하는 위원회..예산만 꿀꺽
정부 산하 위원회 505개의 회의 개최실적을 분석해봤더니 2011년 기준 무려 156개 위원회가 1년 내내 회의 한 차례 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런 위원회들에 배정된 예산이 무려 63억원에 달한다.대부분 위원회가 열리지 않다보니 이 예산들은 위원회를 관장하는 지원부서들의 업무활동비로 쓰이고 있는게 현실이다. 위원회 지원조직을 별도로 두는 경우에는 사무실 임차료나 일반 운영비, 인건비 등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원조직도 위원회 개최의 필요성에 의해 구성된 조직이다. 위원회 개최를 위한 안건을 정리하고 회의개최 계획을 세우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1년 내내 회의 한 번 없는 위원회라면 당연히 위원회뿐만 아니라 지원조직의 필요성도 없는 것이다. 또 일부 위원회의 경우 회의를 열지 않고도 자문위원들에게 회의 참석수당을 주는 일도 있다. 새만금위원회의 경우 위원회 개최시 주도록 한 회의수당이지만, 주간업무보고도 회의로 쳐 2천만원이 넘는 수당을 지급했다가 국회예산결산과정에서 지적을 받았다. 녹색성장위원회는 예산집행 증빙서류를 제출하지 못해 지적을 받기도 했다.또 과도한 업무계획을 세웠다가 연말에 업무추진 실적이 저조해 예산을 미처 집행하지 못하고 반납하는 경우도 있다. 불용예산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필요예산이 적정하게 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정작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예산을 묵히게 되는 것이다.
◆ 정권 말에 '우후죽순' 난립
◆책임회피 수단 악용
행정학 학자들은 정부 산하 위원회들의 순기능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부작용이 더 크다는 점도 분명히 지적한다. 대부분의 위원회가 업무전문성, 업무다변화를 위원회 설치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나타난 위원회 운영 현황만 보더라도 이런 해명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부처들이 이토록 위원회를 갈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책임회피용'을 먼저 꼽는다. 정책이 실패하거나 부작용을 낳았을 때 비난의 화살을 피할 근거가 되는 것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전영한 교수는, "위원회 조직이 특정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의사 결정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 사람이 결정을 했으면 정책 결정 결과가 잘못되었을 때 책임소재가 명확하지만 위원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몸집불리용'이라는 것이다. 부처의 외연을 확장해 일 많이하는 부처로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처 입장에서는 위원회를 많이 두어서 굳이 나쁠 건 없다. 어차피 예산이 배정될 것이고 예산 배정이 안될 경우 운영을 안하면 되는 것이다.
◆'정부위원회법' 강화해야
이렇게 각종 위원회가 난립한데는 허술한 법규정도 한 몫했다. 2009년 만들어진 '위원회법'은 위원회의 설치 근거로 '부처의 업무 결정과정에 신중함을 기해야 할 때, 전문적 지식과 의견을 반영할 필요가 있을 때' 설치할 수 있고 기관장이 행정안전부 장관과 사전에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승인의 대상은 아니다. 위원회 설치는 사실상 부처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지는 것이다. '위원회법'은 또 행정안전부가 매년 부처 위원회들의 운영 현황을 파악하고 정비계획을 마련해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5백개가 넘는 위원회가 얼마나 심도 있는 논의를 하고 정책결정에 기여하는 지 일일이 살펴볼 수는 없다는 게 행안부의 설명이다. 때문에 위원회가 '혈세 축내는 주범' 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도정비가 시급하다. 위원회 설립을 심의해 필요성을 따져봐야 한다. 또 운영실적과 성과를 엄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부처 평가에도 반영해야 한다. 껍데기 위원회를 남발할 경우 과감하게 페널티를 물려야 한다. 새 정부도 위원회 정비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제도 정비 없이는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