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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들은 왜 인공호흡기를 달고 떠돌아야 할까? ①

병실 전전…갈 곳 없는 난치병 환자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 등, 이른바 4대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을 100%까지 해주겠다는 공약을 내놓으면서, 중증질환 보장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당선 후 인수위에선 “기존에 보험이 되지 않던 상급 병실(1~2인실 등 비급여 병실)이나 간병인까지 지원한다는 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죠. 하지만 실제로 그런 부분까지 모두 지원하려면, 재원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할 겁니다. 대선 과정에선 연간 1조 5천억원이 추가로 필요할 거라는 계산이 나왔지만, 최근 복지부는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연간 2~3조는 들어갈 것이라고 보고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진료비 상승률을 감안하면, 앞으로 몇 년 뒤만 해도 연간 5조는 추가로 필요할 거라는 국책 연구기관의 분석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현실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닙니다.



1월 20일 8뉴스에 방송된 '병원 전전.. 갈 곳 없는 난치병 환자' 리포트는 이 4대 중증질환 중에서도 희귀난치병 질환, 특히 근육병 환자들의 케이스를 다뤘습니다. 이번 취재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건, 중증질환에 대해 현실적으로 재원 마련도 어려운 무조건적인 보장 강화를 약속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한 맞춤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병의 종류와 특성에 따른 환자들의 처지를 고려해서 맞춤 정책을 수립하는 노력만 한다면, 현실적으로 무리 없는 비슷한 비용을 사용하고도 상황을 훨씬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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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취재했던 근육병 환자들의 경우를 볼게요. 재작년 여름 갑작스러운 폭우로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컸죠. 강남역 일대가 마치 영화에서처럼 물에 잠겨, “강남역 워터파크 개장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 때입니다. ‘강남역 워터파크’와 달리 어디에도 보도되거나 알려지지 않고 묻혀버린 일인데, 전북 정읍시의 한 면에서 척수근위축증이란 희귀 근육병을 앓던 27살 청년이 숨졌습니다.

이 청년은 근육 위축으로 인공호흡기 없인 생명 유지 자체가 되지 않는 중증 환자였는데, 큰 비에 정전이 되자 전기제품인 인공호흡기가 꺼져버린 겁니다. 정전은 찰나였지만, 집에서 외롭게 인공호흡기 한 줄에 생명을 의지했던 청년은 숨을 거뒀습니다. 청년이 병원에만 있었어도 이렇게 어이없이 목숨을 잃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인공호흡기 잠깐 꺼지는 것으로 생사가 갈릴 정도의 중증환자가 왜 집에 있다 이런 변을 당했을까요.

큰 병일수록 큰 병원에서 잘 진료받아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희귀 난치성 질환자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난치성 질환이란 다시 말해, 현대의학으로는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란 말입니다. 그렇다 보니, 치료보다는 –치료는 잘 안 되니까- 환자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게, 합병증 등으로 환자가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지 않게, 잘 유지하고 관리해 주는 게 관건입니다. 전문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일인데, 이런 환자들이 한 병원에 오래 있지 못하고 이곳저곳 ‘떠돌이’해야 하는 이중의 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전국적으로 1만 9천명 가량의 10대 희귀 난치 근육병 환자가 건강보험공단에 등록돼 있는데요. 이중 약 10%인 1천 4백명 가량의 중증환자가 찰나의 정전에 숨진 정읍의 27살 청년처럼 집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투병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투병하다 갑자기 합병증이 도지거나 호흡이 멎으면 손쓰기가 어려운 데도요.

전문가가 아닌 가족들이 돌보는 데도 한계가 있고, 가족들도 정말 고통이 큽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나마 병원에서 계속 버티는(?) 환자들은 두세달에 한번씩 병원을 옮겨다니는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합니다. 쫓겨나면서 마음을 많이 다치고, 새로 받아줄 병원을 찾는 것도 힘들고, 무엇보다 병원을 옮기느라 인공호흡기가 달린 특수 구급차를 타고 거동 한 번 하는 것 자체부터 생명에 위험부담이 따르는 일인데 말이죠.

희귀 근육병 환자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따님 한 분을 취재 과정에서 만났습니다.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습니다. 직전에 있던 병원에서 거의 내몰리다시피 나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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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매달 떠도는 거예요. 엄마가 목숨이 붙어있을 때까진 계속 떠돌아 다니는 거예요. 그렇다고 엄마더러 집으로 가라고 하면 죽으라는 얘기밖에 안 돼요. 응급상황이 오면 갑자기 옮길 수도 없고... 옮기는 과정에서 흔들리는 것부터 위험해요. 그리고 집에 있다 가면 먼저 응급실부터 가니까, 검사를 다 다시 해야 돼요. 절차를 또 밟는 거예요. 두번째 병원에 갔을 땐 엄마가 거의 넋이 빠졌어요. 오자마자 막 피 뽑고 검사하고... 그러니까 엄마가 호흡이 막 힘들어지는데... 엄마 어떻게 되는 줄 알았는데..."

2년 전까지 한 집안의 가장으로, 택시기사로 열심히 살아오시다 갑자기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이제는 호흡기 없인 살지 못하는 한 환자분과도 얘기를 나눴습니다. (별안간 숨이 멎을 때의 공포를 반복적으로 겪고 계신 그 분과 잠깐 얘기를 나눌 때는, 만에 하나 혹시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의사의 모니터 아래 심박측정기를 달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제 겨우 만 59세. 전에 있던 병원에서 호흡이 정지되는 난리를 겪은 바로 다음날 그 병원을 나와야 했습니다. 힘들게 해드려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자, 오히려 제게 "난치병에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다"고 여러 번 힘겹게 말씀하셨습니다.
  
"숨이 멎고 돌아오고 반복할 때마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의사분들이 열심히 치료법을 찾고 계시니까,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리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병원에 있어야 합니다. 저희 루게릭병 환자들이 갈 곳이 있도록... ” 한 말씀 한 말씀 이어가시던 그 분도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 고통의 깊이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입장에서 염치없는 일이지만, 처음 보는 이 분들이 발병 이후 겪어온 삶에 대해 잠깐 듣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참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투병의 고통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이 분들이 도대체 왜, "갈 곳이 없다"는 불안까지 느껴야 하는 걸까요. 인공호흡기 없인 생명유지 자체가 어려운 이 분들이 흔들리는 차 안에서 위험부담을 안고, 간신히 찾아낸 다음 병원 그 다음 병원을 전전하거나 결국 집으로 가야 하는 데는, 희귀 난치성 질환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복지정책의 맹점이 있었습니다. 다음 편에서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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