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는 시청자나 관객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쉽게 만나기 어려운 배우다. 1990년대 충무로의 르네상스를 이끌며 한국의 대표배우로 군림했던 그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작품 선택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더욱이 친언론 성향의 배우도 아니었기에 작품이 아닌 외부에서 한석규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화 '이층의 악당' 이후 '베를린'으로 약 3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한석규를 지난 21일 미디어 데이 행사를 통해 만났다.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가족이 있는 미국에 머문다는 한석규는 ‘베를린’의 언론 시사회에 맞춰 급하게 귀국했다. 이 자리에서 한석규는 자신이 배우로서 가지는 고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한석규는 영화 '쉬리'(1998), '이중간첩'(2002)에 이어 '베를린'까지 세편의 남북 첩보물에 출연했다. 약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한번 첩보물에 도전한 한석규는 안정된 연기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보였다.
영화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그는 "스스로에게 가혹한 편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보였다"고 말했다. 이는 작품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었다. 스스로의 캐릭터를 100% 이끌고 연기를 해나갔느냐에 대한 자조적인 고민이었다.
2011년 SBS 사극 '뿌리깊은 나무'로 안방극장에 돌아오기까지, 또 ‘베를린’으로 충무로에 컴백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작품 선택의 기준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에 따르면 과거에는 다양한 장르, 다양한 캐릭터 등 도전을 부르는 작품에 폭넓게 출연코자 했자면, 요 근래에 들어서는 자신의 역량을 100%를 끌어낼 수 있는 작품을 위주로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석규는 "내 연기가 스스로 꼴 보기 싫을 때가 많다. 내 연기가 공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 너무나 무섭다"면서 좋은 연기, 스스로 만족할만한 연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에 대해 말했다.
그는 어느 순간 들어서 연기에 대한 가치관을 재정립하게 됐다는 고백도 했다. 한석규는 "한때 영화만 하면서 스스로 우쭐될 때가 있었다. '난 영화를 하기 위해서 연기를 한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분명히 알았다. 나는 연기를 하기 위해 영화를 했던 것이었다. 이제는 직업란에도 영화배우가 아닌 배우라고 적는다"고 밝혔다.
배우로서의 오랜 고민은 단 하나라고 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서 연기를 안 할까를 늘 생각했다"면서 연기 같지 않은 연기를 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말했다.
한석규는 본능적으로 연기하기 보다는 고민하고 연기하는 배우였다. 이같은 뿌리깊은 고민이 배우 한석규를 농익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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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