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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주차장 불 타는데 스프링클러 '먹통'

지난 10일 새벽 경기도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불이 나 차량 39대가 모두 탔습니다. 화재 당시 CCTV 화면을 확인해 봤습니다. 한쪽 구석에서 작은 불꽃이 일고, 그 쪽에서 걸어온 남성이 자기차에 올라타더니 주변을 배회하다가 유유히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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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차장은 3분 만에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플라스틱 쓰레기통에서 시작된 불이 주차된 수십 대의 차에 옮겨 붙으면서 불길이 커진 것입니다. 한 피해 주민은 “쾅쾅하는 어머어마하게 큰 소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고 당시를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방화범은 공익요원으로 복무 중이던 아파트 주민으로 밝혀졌습니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주차장 대부분이 불에 탔다는 점은 의아했습니다. 2천4백여㎡ 규모의 대형 주차장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일까. 소방관이 출동한 후에 1시간 40분여 만에 겨우 불길이 잡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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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소방관과 함께 다시 찾았습니다. 불에 탄 주차장은 화재조사를 하는 관할 소방서와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로 밤늦게까지 분주했습니다. 천정을 살펴보니 새까맣게 타긴 했지만 분명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2시간 가까이 불이 타오르는 동안 스프링클러가 먹통이었다는 것인데, 왜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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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관리사무소 직원은 “불이 났을 때 스프링클러에 화재 신호를 보내는 전기배선이 불에 탔기 때문에 스프링클러가 먹통일 수밖에 없었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직원과 함께 현장을 함께 돌아보니 주차장에 설치돼 있던 전기배선들이 불에 타 녹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파트 측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습니다. 화재를 가장 먼저 감지해서 불길을 초기에 잡으라고 있는 감지기인데, 전선이 불에 다 탈 때까지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학과 교수는 “당초 감지기가 고장났든지 스프링클러로 연결되는 수도밸브가 잠겨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지하 주차장의 스프링클러는 특수합니다.  지하 주차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와 연결된 배관은 동파 우려 때문에 평소에는 물이 채워져 있지 않습니다. 대신 불이 나면 감지기가 바로 작동해 배관에 연결돼 있는 물탱크에 신호를 보낸 후 스프링클러로 물을 보내서 뿜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그만큼 화재 감지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재차 CCTV를 확인해봐도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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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해 12월 초 서울 천호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 때도 차량 석 대가 완전히 탈 때까지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소방당국의 화재 조사 결과 감지기로 연결되는 회로가 고장 났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현장 화재 조사를 담당했던 한 소방관은 “감지기 자체가 화재 신호를 보내지 못해 화를 키웠다”며 “아파트 측에 시정 명령을 내렸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달이 지난 12일, 이 아파트의 먹통 스프링클러는 제대로 작동할까. 아파트관리사무소 직원은 “21일까지 시정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 때까지만 고치면 된다”며 대답을 피했습니다. 주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습니다. 한 아파트 입주민은 “12층 창문에서 연기가 보일 정도로 연기가 자욱했다”며 “불 끄라고 있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으니 불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감지기가 오작동해 물이 쏟아질까봐 아예 스프링클러 밸브를 잠가 놓는 아파트도 많습니다. 물 피해가 발생하면 번거롭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스프링클러 등 소방 설비의 관리도 중요하지만 잠깐이라도 경계심을 늦췄다가는 큰 화를 불러 올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설마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는 순간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언제든 화재 무방비 지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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