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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다시 보는 역대 대통령 취임식 ②

10대 전두환 대통령∼17대 이명박 대통령

[취재파일] 다시 보는 역대 대통령 취임식 ②
최규하 국무총리는 재임 중 대통령이 시해되는 10.26사건으로 1979년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해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불과 6일 만에 12·12사태를 일으킨 신군부 세력에게 권력을 빼앗기면서 사실상 통치권을 잃게 된다.

◈ '역대 최단기'… 제10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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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대 최규하대통령의 취임식은 1979년 12월 21일 장충체육관에서 거행되었다. 약 2,800여명의 인사가 참석한 취임식은 개회 선언과 식사, 대통령 선서, 대통령취임사, 폐식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대통령찬가는 생략됐다. 최규하대통령의 취임식은 당시의 정국 상황에 따라 검소하고 엄숙하게 진행됐다.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본인도 그해 8월 16일 대통령을 사임함으로써 역대 최단기 대통령이 되는 비운을 겪었다. 이 때문에 최 대통령이 이끈 정부는 '과도정부' 또는 '위기관리정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 '신군부의 등장'… 제11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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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의 18년 장기집권이 비극으로 막을 내린 뒤 정권을 잡은 사람은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이었다. 그는 1979년 12월 12일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자격으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하며 신군부가 12·12 군사정변을 일으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5·17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와 함께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강제로 진압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그해 6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상임위원장이 되었다. 두 달 뒤인 8월에는 군복을 벗고 그달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으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취임식은 1980년 9월 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되었다. 취임식에는 약 8,800여 명의 인사가 참석하였고, 취임식 식순이나 장소는 그 이전과 비슷하게 거행되었다. 취임식은 개회 선언과 묵념, 식사, 취임선서, 취임사, 폐식의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그간 생략되었던 대통령찬가가 다시 등장하였다.

11대 전두환대통령 취임식부터 초청인원이 크게 증가했다. 8,800여명이 초청되면서 취임식 장소도 장충체육관에서 잠실실내체육관으로 바뀌었다. 다만 취임식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 보다는 역대 대통령 취임식의 전통을 존중해 변화를 거의 주지 않았다.

◈ '7년 단임제 개헌'… 제12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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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은 취임 반년 만에 통일주체국민회의 폐지와 7년 단임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8차 개헌을 실시했다. 전 대통령은 이 제5공화국 헌법으로 새롭게 구성된 대통령 선거인단의 간접선거로 제12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취임식은 1981년 3월 3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거행되었으며, 약 9,000여명의 인사가 취임식에 참석하였다.

◈ '6.29 선언'… 제13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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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사태의 주역이었던 노태우 대통령은 1987년 6월 전두환 대통령에 이어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다 결국 1987년 6월,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는 '6·29선언'을 발표했다. 그해 8월 민정당의 제2대 총재, 12월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1988년 제6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직접선거로 선출된 노태우 대통령의 취임식은 1988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2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제9차 헌법 개정에 따라 1988년 2월 25일 0시 부터 신임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는 점을 감안해 취임식은 여건상 가장 이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당일 오전 10시에 열렸다.

취임식은 개회 선언과 국민의례, 식사, 취임선서, 취임사, 폐막의 순으로 거행되었으며, 취임선서와 취임사 사이에 예포 발사와 합창이 도입되었다. 이후 예포 발사와 합창은 대통령 취임식의 전통이 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행사 진행을 위한 음악이 종전 까지는 주로 서양음악 위주로 진행되었으나,13대 취임식에서는 국립국악원의 협조를 받아 처음으로 국악이 국가의식에 도입되었다.

◈ '군정종식·문민정부'… 제14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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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화 동지였던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와 단일화에 실패해 신군부 세력에게 다시 한번 정권을 내줬던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는 1990년 민주정의당 노태우 총재,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와 이른바 3당 합당에 합의했다.

신군부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비판 속에 민주자유당을 창당하고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그리고 1992년 12월,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이듬해 2월 취임함으로써 32년간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종식시키고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14대 대통령의 취임식은 1993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약 38,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취임식 식단은 국회의사당 앞 계단에 마련되었다. 취임식의 주제는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와 각계의 협의를 거쳐 다음과 같이 정해졌다.

▲ 주제 : ‘신한국 창조- 다함께 앞으로’
▲ 취임식 테마
    - 식전행사 : 기쁜 아침
    - 취임식 : 대통령께 축복을
    - 식후행사 : 국민과 더불어
   
취임식의 진행 순서는 개회 선언과 국민의례, 묵념, 식사, 취임선서, 취임사, 합창단의 '코리아 환타지' 합창, 폐식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초청장을 재생용지로 제작하고 풍선날리기와 꽃가루 뿌리기를 중지해 친환경적인 취임식을 추구했다. 또한 자연스러운 행사 정착 을 위해 연도 시민동원 행사를 중지하고, ‘경축’이라는 직접적인 용어의 사용을 자제하기도 하였다.

◈ '첫 평화적 정권교체'… 제15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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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건너갔던 김대중 전 평화민주당 총재는 1994년 귀국한 뒤 이듬해 7월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총재가 됐다. 1997년 10월 자유민주연합과 야권 후보단일화에 성공한 김 총재는 그해 12월 치러진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돼 한국 정치사상 최초의 평화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룩하였다.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은 1998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취임식은 아키노 필리핀 전대통령 등의 외빈과 각계 인사 4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 55분간 진행되었다. 취임식단은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를 형상화한 것으로 약 1,000여명을 수용 할 수 있도록 제작되어, 일반국민도 단상인사로 참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식단의 지붕을 없애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나타냈다.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의 주제는 다음과 같이 정해졌다.

▲ 주제 : '화합과 도약의 새출발'
▲ 취임식의 테마
    - 식전행사 : ‘국민의 소리’ 화합과 도약을 향해
    - 취임식 : ‘국민의 시대’ 21세기 위대한 한국
    - 식후행사 : ‘국민과 함께’ 민주와 번영을 향한 전진

제15대 대통령의 취임식은 개회 선언과 국민의례, 묵념, 식사, 취임선서, '동방의 아침나라'의 독창과 합창, 대통령 취임사, '내 나라 내 겨레'의 독창과 합창, 국민화합대 행진, 폐식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취임식에는 꽃동네 주민과 독도 경비대, 마라도 주민 등이 특별 초청됐으며 대학생과 GP소대장, 젊은 근로자 등이 초청돼 참석자의 폭이 대폭 확대됐다. 또한 고위직 위주의 초청관행을 개선해 직급별로 고르게 초청했다.

또한 행사 진행의 전반에 관한 자문을 구할 '전문가 소위원회'를 구성했으며, 행사에 대한 기획사를 선정해 각 단위행사별로 전담할 이벤트 전문가를 뽑는 등 역할분담을 통해서 행사준비가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국민화합 대행진'과 식전행사로 진행된 합토·합수제를 통해 전 국민의 화합을 중시하는 정부의 이미지를 나타내고자 하였다.

◈ '낡은 정치 청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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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은 2002년 초 당내 경선을 통해 새천년민주당의 제16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2002년 11월 18일에는 국민통합21의 대통령 후보인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국민 여론조사를 거쳐 단일 후보가 되었다.

이후 '낡은 정치 청산,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 등을 내걸고 선거운동을 펼쳐 같은 해 12월 19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은 2003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취임식에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을 비롯한 주변 국과 우방국의 축하사절, 해외교민, 각계 국민 등 49,000여명이 참석하였다. 제16대 대통령 취임행사의 기본 추진방향은 다음과 같이 정의되었다.

▲ 새 시대를 열어갈 신임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비전을 국내외에 선포하는 계기로 활용한다.
▲ 각계각층의 국민참여를 통한 범국민적 축제의 장을 마련하고, 개혁과 통합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 우리나라 대통령 취임행사의 전통과 전형을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노무현대통령의 취임식은 개회 선언과 국민의례, 묵념, 식사, 취임선서, 취임사, 폐식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은 참석인원의 절반에 가까운 2만 여명이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취임식 참석 희망자를 받아 초청하여, 취임식에 대한 국민의 참여를 확대하였다. 또한 단상 인사에 국회의원과 주요외빈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국민대표 50인을 단상인사로 배치하기도 하였다.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는 일반국민의 취임식 아이디어 접수를 통해 제안된 콘셉트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이와 함께 민간인 자원봉사자 200여명이 배치되어 봉사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취임식을 통해 참여정부의 국민참여 이미지 제고에 기여하고자 했다.

◈ '또 한 번의 정권교체'… 제17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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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2007년 8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치열한 당내 경선 끝에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해 12월 19일 치러진 선거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530만표차, 역대 최다 표차로 물리치고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은 2008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취임식에는 각국 정상급 인사, 외국기업인, 재외동포 등 을 포함하여 약 60,000여 명이 참석하였다.17대 대통령취임식에는 국민참여를 확 대해 45,000여 명으로 계획하였다. 또한 처음으로 가족참가 신청을 받아 3,885가족 10,244명이 참석하였다.

이명박대통령의 취임식은 개회 선언과 국민의례, 식사, 취임선서, 취임사, 폐식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취임식 공식행사가 진행되기 전 '시화연풍(時和年豊)'의 주제로 식전 문화공연을 진행하였다. 식전행사의 주제인 시화연풍은 '나라가 태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 는 뜻으로, 행사는 '전 국민의 희망을 모아', '대한민국 비전을 세우며', '새로운 미래를 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의 세부 순서로 진행됐다.

17대 대통령 취임식은 '섬기는 정부'를 구현하기 위해 무대 단상을 국민과 국민의 대표, 외빈을 우선적으로 배치하고 관례적으로 단상에 자리하던 새 정부 장관내정자, 청와대 수석 내정자 등은 모두 무대 아래에 앉도록 좌석을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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