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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다시 보는 역대 대통령 취임식 ①

초대 이승만 대통령∼제9대 박정희 대통령

[취재파일] 다시 보는 역대 대통령 취임식 ①
다음 달 25일이면 우리나라의 18번째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다. 박근혜 당선인은 지금까지 관례를 깨고 대형 광고기획사 대신 중견 업체에 대통령 취임식 준비를 맡기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민주화와 대·중소기업 상생의 시대적 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 취임식은 당시 정치상황을 그대로 반영해왔다.

◈ '건국의 감동'…초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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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7월 24일,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중앙청 (옛 조선총독부) 광장에서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취임식은 개회선언과 애국가제창 및 국기에 대한 경례, 취임선서, 대통령 취임사, 부통령 취임사, 축사 및 축전 낭독, 만세삼창, 폐회 등의 식순으로 진행됐다.

이어 1948년 8월 15일 0시를 기해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그날 오전 11시 20분에는 중앙청 광장에서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성대한 경축식이 열렸다. UN은 대한민국을 한반도에서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공식 승인했다.

◈ '6·25 전쟁'…제2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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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대통령 취임식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가을에 열렸다. 직접 선거로 1952년 9월 5일 제2대 대통령에 선출된 이승만 대통령은 그해 9월 15일 중앙청광장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인 절차에 의해 취임식이 진행된 것은 이때부터라고 한다. 대통령기를 건네는 프로그램도 도입되었다.

제2대 대통령 취임식은 개회선언과 애국가 제창 및 국기에 대한 경례, 취임선서, 취임사, 기념사, 대통령기 진정, 광복절노래, 만세삼창, 폐회 등의 식순으로 진행됐다. 2대 대통령 취임식은 제7주년 광복절 경축식과 동시에 진행됐다.

◈ '장기 집권'…3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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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대통령취임식은 1956년 8월 15일 중앙청광장에서 거행되었으며, 이때의 초청 명의는 수석국무위원으로 되어 있다. 취임식은 제2대 취임식순과 거의 동일하나, 취임선서 직전에 국회개회를 선언하고 직후에 폐회를 선언한 것이 특이하다.

당시 헌법상 대통령은 양원합동회의에서 취임선서를 해야 했기 때문에 임시로 개회를 한 것이다. 제3대 대통령 취임식 역시 제11주년 광복절 경축식과 동시에 진행돼 광복절 노래가 제창되었다. 또 대통령기를 건네는 프로그램이 없어진 대신 대통령 찬가가 부활했다.

초대에서 3대까지의 이승만대통령의 취임식은 향후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한 대통령 취임식이 광복절 경축식과 함께 진행되어 광복절 노래가 제창된 것이 취임식의 특징이다.

◈ '4·19 혁명'…제4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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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난 뒤 국회는 윤보선 민주당 후보를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윤보선 대통령 취임식은 1960년 8월 13일 당시 국회의사당(지금의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당시 헌법에 따라 국회양원 합동회의에서 거행됐다. 초청인원의 규모는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윤보선 대통령의 취임식은 국회 양원 합동회의의 개회선언과 취임선서, 대통령 인사, 폐회선언의 순으로 진행됐으며 과도 정부의 대통령 취임식인 만큼 취임사를 비롯하여 취임행사 전반이 간소하게 치러졌다. 대통령 취임사를 '대통령 인사'로 명명한 것도 취임식의 간소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 '5·16 쿠데타'…제5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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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직접선거로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 중앙청 광장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 명의의 초청으로 각계 인사 3,400여 명이 취임식에 참석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식은 개회선언과 국기에 대한 경례, 묵념, 식사, 취임선서, 취임사, 축가, 폐식의 순으로 진행됐다. 식순 중에서 무궁화대훈장(대통령에게 수여되는 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이다) 수여는 이 제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만 진행되었다.

또한 취임식 행사에서 대통령 취임식과 경축 연회는 총무처가, 경축예술행사는 공보부가, 만찬회는 외무부가 각각 주관하고, 초청은 총리가 담당하는 등의 역할분담을 통해 각 행사를 진행했다.

◈ '재선 성공'…제6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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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그해 7월 1일에 대통령 취임식을 거행했다. 취임식은 당시 국무총리 명의의 초청으로 약 2,800여 명의 각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중앙청 광장에서 열렸다. 선거방식은 5대 때와 동일한 직접선거였다.

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일협정의 졸속한 처리와 베트남전쟁 파병으로 인한 학생과 재야세력의 거센 저항이 쟁점이었다. 현직 대통령인 공화당 박정희 후보와 신민당 윤보선 후보가 맞붙어 568만 8666표를 얻은 박 후보가 452만 6541표를 얻는데 그친 윤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박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 뒤 장기집권을 위하여 1969년 3선개헌을 감행한다.

◈ '장기집권의 시작'…제7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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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정희대통령의 취임식은 1971년 7월 1일 약 2,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청 광장에서 거행되었으며, 6대 취임식과 거의 동일한 순서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69년 6월 대통령 박정희의 3선출마를 위한 개헌 움직임이 진행되자 이를 반대하는 대규모 학생시위가 시작되었고 다음 달 17일에는 '3선개헌 반대투쟁위원회'까지 결성되었다. 하지만 개헌안은 9월 14일 새벽 민주공화당 소속 의원만이 모인 가운데 국회 제3별관에서 변칙 통과됐고 다음달 17일 국민투표로 가결됐다.

제7대 대통령 선거는 1971년 4월 27일, 국민이 직접 선거에 참여해 최다수 득표자를 당선인으로 선출하는 직접선거 방식으로 치러졌는데 3선개헌을 통해 출마한 공화당 박정희 후보와 당내 경선에서 40대 기수론을 제창하며 세대교체 바람을 몰고 온 민주당 김대중 후보의 대결로 압축됐다.

부정 선거 논란 속에 634만 2828표를 얻은 박정희 후보가 539만 5900표를 얻은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돼 이듬해 유신체제의 출범과 함께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 '체육관 선거'…제8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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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대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 선거에 의해 선출되었다. 8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식은 1972년 12월 27일 장충체육관에서 옥내 행사로 거행되었다. 약 3,300여 명의 각계 인사가 참석하였다. 이른바 체육관 선거의 시작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고 정치체제를 개혁한다는 미명 아래 1972년 10월 17일 초헌법적 국가긴급권을 발동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동시에 전국적인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어 10일 이내에 헌법개정안을 작성하여 국민투표로써 확정하도록 하였는데, 이 헌법이 바로 유신헌법이다. 박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23일 이 유신헌법에 의거해 제8대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였다. 선거 방식은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하는 간접선거 제도를 채택하였다.

박정희 후보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진행된 체육관선거에서 대의원 등 515명의 추천으로 단독 입후보해 전체 대의원 2,359명이 참석한 가운데 2,357표 (무효 2표)라는 절대적인 찬성으로 제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때부터 대통령 임기가 4년에서 6년으로 늘어났다.

◈ '18년 장기 집권의 끝'…제9대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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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제9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식은 1978년 12월 27일에 거행되었다. 8대 취임식과 마찬가지로 장충체육관에서 거행되었으며, 약 3,000여 명의 각계 인사가 취임식에 참석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앞서,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임기가 1978년 6월 30일로 끝나게 되자 제9대 대통령 선거에 대비해 같은 해 5월 18일,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실시했다. 박 대통령은 그해 7월 6일 장충체육관에서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 단일 후보로 출마해 압도적 득표로 당선됐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야당의 개헌투쟁과 부마사태, 이에 따른 계엄령 발동 등 잇단 혼란 속에, 제9대 대통령 취임 이듬해인 1979년 10월 26일 저녁,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피살되면서 18년 장기집권을 끝내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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