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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없어진 택배, 누구 책임일까?

[취재파일] 없어진 택배, 누구 책임일까?
 "ㅇㅇㅇ동 ㅇㅇㅇ호 택배 온거 있죠?"

제가 가끔 퇴근길에 경비실에 들려 경비원에게 건네는 질문입니다. 경비원은 질문이 받기 무섭게 택배 수령 목록을 펼쳐들고 확인하기 시작합니다. 택배 목록표에 받았다는 걸 확인해도, 택배가 제 손에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경비실에 가득 쌓여 있는 택배물품 중에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저도 경비원가 함께 쌓여 있는 택배물품속에서 제 택배물품을 찾기도 합니다.

비단, 제가 사는 아파트만의 풍경은 아닐 겁니다. 항상 경비실에는 택배물품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명절이 되면 택배물품은 경비실을 넘쳐 아파트 현관 입구를 점령하기도 합니다. 택배물품은 주로 낮시간에 배송되는데, 그 시간에 집에 받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택배물품들은 경비실로 향하게 되는 겁니다. 

아파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경비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한결같았습니다. "택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택배와 매일 전쟁이다." 순찰도 돌아야 하고, 주차관리도 해야 하고, 재활용 쓰레기도 분류해야 하고, 이상한 사람들 들어가나 단속도 해야 하는데, 정작 택배물품 받고 지키느라 하루종일 자리를 뜰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넋두리로 넘기기엔 좀 이상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배송된 택배를 잃어버렸다고 경비원에게 물어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궁굼했습니다. 배송이 완료된 택배가 분실되면 누구 책임일까? 택배회사의 책임? 택배 기사의 책임? 아니면 경비원의 책임일까. 택배물품을 하나를 놓고 연관된 주체들은 서로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만 할 듯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가장 힘없는 경비원들만 울며겨자먹기로 혼자 다 책임을 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알아봤습니다. 택배분실의 본질은 '분쟁'입니다. 택배를 보냈다는 사람과 받지 못했다는 사람간의 갈등 구조입니다. 소비자원에 확인해 봤습니다. 소비자원에서는 택배 분실 관련해서 매년 100건에 달하는 피해구제신고를 접수한다고 합니다. 서류를 꾸며서 정식으로 접수한 건수가 100건이지, 사실상 그냥 넘어가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분쟁 건수 중에는 상당히 많은 편이라는 게 소비자원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소비자원은 나름의 분쟁조정 기준을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소비자원에서는 택배회사의 면책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해 놨습니다. 택배기사가 물건 수령인에게 경비실에 맡기는 것에 대해 '동의'를 구하고, 경비원에게 '인수증'을 받아서 맡긴 것이 확인된다면 택배회사는 책임이 없다고 조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택배기사가 전화통화를 하지 않고 '경비실에 맡겨놓겠다'는 문자만 보냈다면 택배기사의 책임입니다. 수령인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인 통보만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무리 경비실에 맡겼다고 주장해도 인수증과 같은 물증이 없으면 이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준수했다면 경비원이 분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소비자원은 분쟁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비자원의 이런 분쟁조정 기준도 권고사안에 불과합니다. 강제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원에서 아무리 조정을 해줘도 당사자가 받아들이거나 합의가 안되면 결국 잃어버린 소비자만 냉가슴을 앓아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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