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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더 헌트', 두 개의 믿음과 하나의 진실

[리뷰] ‘더 헌트', 두 개의 믿음과 하나의 진실
시작은 소녀의 한 마디 말이었다. 어른의 무관심에 심통이 난 아이가 무심코 던진 거짓말이 한 남자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이혼 후 고향으로 내려온 유치원 교사 루카스(매즈 미켈슨 분)는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며 아들 마커스와 함께 사는 행복한 삶은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딸이자 유치원생인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 분)는 루카스를 향한 사소한 거짓말을 하게 되고, 이 거짓말은 삽시간에 전염병처럼 마을에 퍼진다. 생각지 못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의 불신과 집단적 폭력 속에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외로움 싸움을 시작한다.

'더 헌트'는 집단 사회 속에서 거짓이 어떻게 진실을 묵살하는가에 잔인한 풍경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특히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다수의 사람이 한 사람에게 행하는 마녀사냥의 충격적 모습이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맹신 아래 한 사람에 대한 거대한 불신을 키운다. 하루 아침에 성추행범으로 몰린 루카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딱히 없다. 그저 아니라고 항변하고, 이마저도 지칠 때는 암흑으로 뒤덮인 폐허 같은 집에서 칩거할 뿐이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는 불신의 화염에 사로잡은 사람들은 집 인근 어딘가에서 그를 감시하고, 그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가족과 애완동물에게도 가차 없이 해를 가한다.  

이같은 풍경이 섬뜩한 것은 집단적 마녀사냥이 비단 이 마을에서만 일어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는 '넷카시즘'(Netcarthism : 인터넷과 매카시즘의 합성어로 인터넷에 부는 마녀사냥열풍)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마녀사냥을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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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헌트'에서는 단 하나의 진실 아래 두 개의 믿음이 충돌한다. 진실의 실체나 증명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다수가 확신하는 믿음은 어느새 진실이 되어버린다. 윤리의 잣대까지 가해진 거짓된 믿음은 광기가 되고, 순식간에 폭력으로 변질하는 모습을 감독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그린다.

1998년 '셀러브레이션'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던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은 주인공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폐쇄적 공포감을 선사한다. 황량한 마을의 풍경과 어둠이 짙게 깔린 루카스의 집을 교차로 보여주며 상황의 비극을 묘사하고, 영화의 제목이자 집단적 광기를 비유한 사슴사냥 신들도 효과적인 장치로 사용한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불신의 벽이 해소된 것과 같은 착각이 들게끔 한다. 그러나 감독은 안일한 화해가 남길 수 있는 불신의 찌꺼기에 대한 경고도 놓치지 않는다. 강렬한 총성과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루카스를 통해 불신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더욱 공포스럽다는 서늘한 메시지를 던진다.

'루카스'를 연기한 덴마크 출신의 배우 매즈 미켈슨은 심연의 눈빛으로 극을 장악한다. 특히 후반부 성당 신에서의 절규는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의 분노와 관객의 분노가 하나 되는 감정적 동화를 일으킬 만큼 강렬하고 애잔하다. 그는 이 작품에서의 열연을 통해 2012년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러닝타임 115분. 15세 관람가. 24일 개봉.

ebada@sbs.co.kr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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