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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랑스 국민배우의 세금 망명…부자증세 때문일까?

[취재파일] 프랑스 국민배우의 세금 망명…부자증세 때문일까?
프랑스의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의 세금망명으로 프랑스 정가와 언론이 시끄럽습니다. 지난해 말 벨기에로 주소지를 옮기면서 벨기에 국적을 신청했는데, 이번에는 러시아에도 신청을 해서 국적을 받은 것입니다.

드파르디외의 세금망명은 지난해 사회당 정부 출범 이후 대선 공약이었던 부자 증세를 구체화하면서 불거졌습니다. 사회당 정부는 100만 유로(우리 돈 약 14억 원) 이상의 소득자에 대해 75%의 세금을 물리기 위해 입법을 추진했습니다. 지난 연말에 헌법위원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주춤해지기는 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계속 부자 증세를 추진하겠다고 올랑드 대통령은 밝혔습니다.

드파르디외가 바로 이런 사회당 정부의 부자 증세 방침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입니다. 파리의 아파트를 내놓고 프랑스 국경에서 불과 1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벨기에의 소도시에 아파트를 매입해 주소지를 옮기면서 벨기에 국적을 신청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평소 친분이 각별하던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로 오라고 했고, 실제로 드파르디외가 파리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 국적신청을 하면서 지난 3일 러시아 여권이 발급됐습니다. 또 지난 5일에는 내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러시아 휴양지 소치에서 푸틴 대통령이 직접 드파르디외와 식사를 함께 하며 이 러시아 여권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중부 모르도비야 자치공화국의 경우 고급 아파트 열쇠와 거주 등록 허가증을 증정하고 현재 공석인 문화장관 자리를 맡아 달라고 제안 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는 소득세율이 일률적으로 13%이기는 하지만, 드파르디외는 그런 실리적인 측면보다는 사회당 정부에 대한 과시 효과를 더 크게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경우 평소 드파르디외와 절친한 사이라는 점도 있고, 프랑스 좌파 정부의 정책에 모욕을 줌으로서 또 한 명 막역한 사이였던 사르코지 전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것은 벨기에의 존재입니다. 드파르디외가 벨기에로 거주지를 옮기기 이전에 이미 지난해 9월 프랑스 최고의 부자인 루비뷔통 그룹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벨기에 국적신청이 논란이 됐습니다. 아르노 회장이나 드파르디외 말고도 지난해 사회당 정부가 출범한 뒤 벨기에 국적을 신청한 사람이 모두 126명으로, 2011년의 63건에 비해 정확하게 두 배였습니다. 전체가 다 세금 망명을 위한 것은 아니겠지만, 사회당 정부의 부자 증세 방침에 대한 반발이 큰 요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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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프랑스 부자들이 벨기에로 몰려가고 있는 것에 대해 정작 벨기에 정부는 뜨뜻미지근합니다.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나 드파르디외 모두 쉽게 국적을 내줄 것 같지 않은 상황입니다. 드파르디외의 경우 그래서 러시아 국적까지 신청한 것이고요.

벨기에 정부의 유보적인 태도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벨기에 국적을 신청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벨기에를 경유지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최종 목적지는 모나코이고, 모나코에 정착하기 위해 벨기에 국적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소득세가 따로 없는 모나코는 프랑스와 세제 협정을 통해 프랑스 국적으로 거주할 경우 프랑스 세제를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스포츠 스타들이 상당수가 벨기에 국적을 취득한 뒤 모나코로 옮겨간다고 합니다. 그 경우 벨기에 정부는 국적만 내줄 뿐 아무런 실익이 없는 것입니다.

특히 작년에 문제가 됐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경우는 사실 75% 과세가 문제가 아니라 상속 때문이었다는 해석이 유력합니다. 아르노 회장은 프랑스 최고의 부자로, 자산 규모가 포브스 지 발표 기준으로 410억 달러, 우리 돈 45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규모입니다. 올해 만 64살이 되기 때문에 상속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래서 상속세가 없는 모나코를 최종 거주지로 정하고 벨기에에 국적 신청을 했다는 것이죠.

벨기에 정부는 그런 속내를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드파르디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적신청에 적극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 프랑스 부자들의 경우 세금을 피해 다른 나라로 가는 관행이 예전부터 있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회당 정부의 75% 과세 방침이 하나의 계기는 될 수 있겠지만, 본질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얘기죠. 드파르디외의 경우도 부자증세가 ‘몰수’나 다름없다며 사회당 정부를 비난하고 있기는 하지만, 부자증세가 아니더라도 벨기에를 경유해 세금이 없는 다른 나라로 빠져나갈 소지가 충분히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흔히 사용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지’가 프랑스어 표현이라는 점이 참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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