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서방파 두목으로 폭력 세계에 악명을 떨친 김태촌 씨가 지난 5일 새벽 사망했습니다. 향년 64세. 사인은 패혈증에 의한 심장마비입니다. 재작년 12월부터 감상샘 치료를 위해 입원 치료를 받아오던 그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대개 부고가 기사가 되는 경우는 세상을 등진 이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거나 재능이 특별했던 사람일 때 입니다. 시청자나 독자는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게 되고, 기사 역시 그런 사람들의 감정을 고려해 문장을 선택합니다. 장례식은 대개 ‘엄수’됐다고 쓰고,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거나, 추모한다는 묘사도 이럴 때 가능합니다.
그러나 김태촌의 죽음이 기사가 된 이유는 이런 것과는 다릅니다. 그의 죽음으로 과거 주먹세계의 사람들이 조문을 올 테고, 이 사람들 사이엔 풀지 못한 앙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고인의 영정 앞에서 입씨름이 주먹다짐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 때문에 빈소가 차려진 서울아산병원 관할 송파경찰서엔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의 사망소식, 정확히 말씀드리면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진 그의 빈소가 아산병원에 차려진다는 소식이 확인된 직후부터 말입니다.
경찰은 강력계 형사와 방범순찰대 등 150여 명의 경찰력을 배치했습니다. 발인이 있던 8일 새벽까지 숫자는 줄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인지 1천여 명의 조문객이 오가는 동안 우려했던 폭력 사건은 없었습니다. 김태촌의 죽음은 많은 이들이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할 뉴스는 아닙니다. 경찰이 빈소 주변 경계를 강화하며 지상파 메인뉴스의 기사가 된 것입니다.
재작년 12월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린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타계 소식과 비교해 볼까요. 당시 저희 8뉴스에 따르면, 당시 조문객들은 ‘민주화 운동에 바친 고인의 삶을 떠올리며 조문객들은 눈물을 흘렸고, 안철수 서울대 교수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기렸습니다.’ ‘고인의 장례는 민주사회장으로 엄수되고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라고 맺음을 했습니다.
반면 이달 김태촌의 사망 소식엔 ‘심장마비로 숨졌으며, 과거 폭력세계에서 활동했던 조문객들이 늘면서’ 라는 구절을 마지막으로 그의 마지막에 대한 묘사는 없습니다. 우리 공동체와 이웃에 어떤 사람이었는가가 그의 마지막 문장을 결정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원로의 타계, 많은 사람이 존경할 만한 사람의 영면 소식 뒤엔 고인의 삶은 요약하는 기사가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이 슬퍼하는 이유도, 그 이유를 궁금해 하는 시청자도 운명을 달리한 사람의 인생을 잠시나마 반추하고픈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짧은 방송기사를 써야하는 기자 입장에선 네다섯 문장으로 고인의 삶을 요약하라는 책무가 생기는 겁니다. 2013년 1월 5일의 SBS 8뉴스는 김태촌의 인생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김씨는 1975년, 전남 광주 서방파의 행동대장을 시작으로 암흑세계에 발을 들인 이후, 서울로 활동 무대를 옮겨 군소 폭력 조직들을 제압하며 세력을 키웠습니다. 신민당 각목 전당대회 주도, 호텔 나이트클럽 사장 살해사건 등으로 악명을 떨치다 검거됐습니다. 김 씨는 수감기간에도 영향력을 유지했고 출소 후, 범 서방파를 결성해 양은이파, OB파와 함께 80년대 폭력 세계를 주름잡았습니다. 2009년까지 20여 년을 징역형과 보호감호로 복역했던 김 씨는 한때 교회 집사로 개과천선한 듯 보였으나 배우 권상우 씨 협박 혐의, 기업인 청부 협박 등 범죄와 인연을 끊지 못하다 64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야심을 가진 젊은 폭력배가 흉악한 사건을 일으키며 세상을 떨게 만들었고, 한 때 선인의 삶을 사는 줄 알려졌지만 본성을 간직한 채 눈을 감았다는 얘기입니다. 성선설이나 성악설처럼 ‘본성이 어디가냐’는 관점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조폭도 나쁜 역사가 있기에 창궐하고 소멸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소도 갈아야 할 밭이 있기에 가축으로 불리듯, 조폭도 그들을 이용한 정치권력과 재벌이 있었기에 그들이 사주하는 사건을 일으키며 연명해 온 건 아닐까요. 그런 생각에 그의 연대기를 다시 써 봅니다.
1975년 전남 광주에서 폭력 세계에 발을 들인 김 씨는 이듬해 신민당 각목 전당대회를 주도하며 정치 깡패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80년대 신군부에 의해 투옥한 김 씨는 86년 출옥 직후 3백여 명 규모의 전국 조직 범서방파를 결성했고, 87년 조직원들을 시켜 호텔 나이트클럽 사장을 잔인하게 살해해 악명을 떨쳤습니다. 양은이파, OB파와 함께 전국 3대 폭력조직으로 손꼽히던 시기입니다.
마흔 살에 폐암 수술을 하며 수감과 가석방을 반복한 김 씨는 2009년까지 22년을 징역형과 보호감호로 복역했습니다. 숨지기 4년 전 자유의 몸이 된 김 씨는 교회 집사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배우 권상우 씨 협박 사건으로 구설에 올랐고, 지난해 5월 기업인을 협박한 혐의로 또다시 재판에 부쳐진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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