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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강남 경비원, 강북 경비원

아파트 경비원의 사회학

[취재파일] 강남 경비원, 강북 경비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아파트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던 62살 민 모 씨의 사연, 뉴스에서 여러 차례 전해드렸습니다. 정년을 넘겨 해고된 경비원인데, 복직을 요구하며 굴뚝 위를 올라가 엄동설한 사흘을 버텼습니다. 이런 방법이 과연 그르냐, 옳으냐를 떠나 우리 집을 지키던 경비원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일했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이 아파트, 저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경비원 분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의 고민,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마다 고민의 방향은 달랐습니다. 경비원 분들이 몸담고 있는 아파트의 생활수준에 따라 차이가 뚜렷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경비원을 목 조이는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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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분들의 말을 들어보니, 경비원 목을 조이는 제도적인 문제는 총 3가지로 요약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최저임금 문제. 경비원들의 급여는 월 130만 원에서 160만 원으로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럼 노동법 위반이냐, 그건 아닙니다. 경비원과 같은 감시 단속적 근로자는 최저임금의 90%만 보장해주면 됩니다. 2010년엔 80%였는데 이것도 오른 겁니다. 최저 임금을 보장해주면 상당수 아파트가 경비원을 감축할 테고, 그러면 경비원 해고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15년부터 최저임금이 100% 적용됩니다. 일각에서는 지금 벌어지는 해고는 2년 뒤 대량 해고 사태의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경비원 분들, 내후년이 두렵습니다.

두 번째. 정년 문제. 아파트마다 규약이 달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인 경비원 정년은 60세입니다. 단, 60세가 넘으면 촉탁직이라고 해서 1년씩 재계약을 합니다. 행여나 밉보이면 재계약은 물거품입니다. 이번에 고공 시위를 벌이던 경비원도 1시간 순찰을 돌지 않았다고 경위서를 썼다가 해고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경비원 분들, 그럭저럭 몸도 건강한데, 나이 많다고 실직 위기에 내몰리는 게 억울합니다.

세 번째. 무인경비시스템 문제. 요즘 아파트에서 CCTV나 자동 개폐기와 같이 무인경비시스템을 활용하는 곳이 늘었습니다. 아파트마다 경비원이 지킬 필요가 없이 상황실 근무자 일부가 CCTV만 쳐다보고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그만큼 사람이 필요하지 않으니, 경비원을 해고시킬 명분이 생기는 거죠. 기계가 발전한 만큼 노동력이 중요치 않아진다는, 미국의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의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경비원 분들, 사람에 치이고 기계에 치이고 신세가 처량합니다.

부자 아파트, 가난한 아파트

대부분의 경비원은 이 3가지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보느냐, 이건 아파트마다 엇갈립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주민들은 ‘비용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경비원의 월급은 주민들의 주머니에서 나갑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주는 식입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월급을 부담하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경비원 감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2015년부터 최저임금 100%를 보장해줘야 하기 때문에, 경비원들은 요즘보다도 미래가 더 불안합니다. 무인경비시스템도 마찬가집니다. 비록 시스템을 처음에 설치할 때 목돈이 들어가긴 하지만, 이후에는 인건비가 거의 들지 않습니다. 비용절감을 원하는 아파트는 무인경비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경비원을 해고시킵니다. 최근 그런 사례도 많았고요.

하지만 생활수준이 높은, 이른바 강남 아파트의 경비원의 가장 큰 고민은 뭘까요. 이번에 고공시위가 있었던 서울 압구정동의 아파트의 사례를 들겠습니다. 이 아파트는 부유층이 많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처음 취재를 하러 갔을 때, 잘사는 사람들이 경비원 월급 덜 주려고 경비원을 해고한 것이 아닐까 각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막상 취재를 해보니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경비원 분들 말이, 이 잘사는 동네에서 경비원 인건비 더 나간다고 신경이나 쓰냐, 관리비 몇 만원 올려도 대부분 주민이 관심도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서비스를 말하면 얘기가 달라진답니다. 택배나 열쇠관리 등 일반적인 경비 업무 외에도, 경비원들이 주차를 직접 시켜주기도 하는데 경비원 수가 적어지면 이런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돈보다 서비스가 중요한 주민들 덕분에, 강남 아파트 경비원들은 최저임금제나 무인경비시스템은 큰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일반 아파트의 경비원들을 만나보니 “강남 경비원들은 살만해.”라고 부러워하더군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강남·북 문제가 경비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강남 경비원들이 마냥 마음이 편한 건 아닙니다. 문제는 나이입니다. 상당수 주민들이 나이 든 경비원의 서비스가 불만이라고 합니다. 빠릿빠릿하지도 않고, 건망증도 심하고, 주차시켜주다 사고도 많이 낸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부유층 아파트 특성상 외제차가 대부분이라 사고라도 나면 일이 커진다고 하더군요. 이 때문에 강남의 아파트에선 경비원의 수요가 노년층에서 중장년층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강남 아파트 경비원의 가장 큰 고민은, 돈 문제 보다는 정년 문제인 셈입니다. 고공 농성을 벌이던 경비원의 요구도 “나이 들어도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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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을 위해 희생되는 ‘사회적 보호망’

취재 중에 만난 한 전문가는 이런 현상이 새로울 게 없다고 말합니다. 좀 어려운 비유를 하자면,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대체효과’가 그대로 적용된 결과란 겁니다. 일반 아파트는 자본 생산성을 위해 ‘고용’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고, 고급 아파트는 서비스 생산성을 위해 ‘노년층’이 ‘중장년층’으로 대체시킨다는 분석입니다. 두 대체효과 모두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이라는 겁니다. 자연히 경비원에 대한 사회적 보호망은 열악해지는 거겠죠.

아파트마다 주민도 다르고, 경비원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다보니 경비원들의 고민이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파트의 위치에 따라 경비원의 고민 방향까지 결정되는 게 한편으로는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날 것 그대로 보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합니다. 분명한 것은 잘사는 아파트든 그렇지 않은 아파트든 경비원들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겁니다. 최저임금 때문에, 무인경비시스템 때문에, 나이 때문에, 이들은 항상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집에 들어가시면서, 경비원 아저씨께 따뜻한 인사 한마디 전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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