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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바보야! 문제는 민생이야!"

美 공화당,재정절벽 매달리다 샌디 잊어 역풍

[취재파일] "바보야! 문제는 민생이야!"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주 주지사를 아시나요? 올해 나이 50살, 뉴저지주 연방검사를 거쳐 3년전에 뉴저지 주지사가 된 사람입니다. 100킬로그램이 훨씬 넘어 보이는 육중한 체격으로 한 번 보면 쉽게 기억되는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후보 경선때 공화당 지도부가 출마를 권유했을 정도로 공화당 내부에서는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원칙적인 보수주의자가 민주당의 아성인 뉴저지주의 주지사가 것만 해도 크리스티 주지사의 경쟁력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크리스티 주지사는 지난 해 10월 뉴욕과 뉴저지 지역을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때 언론에 크게 부각됐습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피해지역을 방문하자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오바마 대통령을 현장에서 안내하고, 이후 각종 인터뷰를 통해  오바마에게 감사의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크리스티 주지사가 평소 오바마의 지도력을 문제삼으며 이른바 오바마 저격수였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 만남은 지난 미국 대선과정에서 두고두고 화제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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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크리스티 주지사가 오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정하고 독설을 쏟아냈습니다. 대상은 오바마도, 민주당도 아닌 공화당 지도부, 특히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었습니다. 화요일밤(미국 동부시각)재정절벽을 피하는 법안을 처리할 때 600억달러 규모의 샌디 피해복구 지원법안도 통과시키겠다고 해놓고 갑자기 존 베이너 의장이 이 법안 처리를 이달 말로 미룬 게 발단이었습니다. 크리스티 주지사의 말입니다.

"샌디로 인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 현 상황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몸담고 있는 공화당과 존 베이너 하원의장입니다. 이기적이고 이중적이면서 미국인들에게는 도대체 관심들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책임보다는 정치를 항상 앞세웁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옳을 수도 있습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우리는 미국인으로서 반응했습니다. 그런데 이 법안 처리를 연기하다니, 정말 지켜보는 게 역겹습니다. 샌디 피해자들은 카트리나 피해자들보다 6배나 더 긴 시간을, 애타게 간절하게 복구지원 법안이 통과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보기나 했습니까? 66일입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니 미국인들이 정치인 하면 외면하는 것 아닙니까? 어제 하룻동안 제가 4번이나 베이너 의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한 번도 받지 않았습니다"

직설적이고 과격한 크리스티 주지사의 기자회견 내용은 미국의 각 뉴스전문채널과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미국 전역에 퍼졌습니다. 간절하게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평범한, 그러면서 고통받는 미국인들을 외면한 정치인들에 대한 매서운 질타라는 해석이 덧붙여졌습니다. CNN은 아직도 피해의 흔적이 역력한 뉴저지주 피해주민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습니다. 한 할아버지는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 이 나쁜 놈들아, 니들은 동정심도 없냐? 니들 몸속에 피라는 게 흐르고 있는 거긴 하냐? 냉동인간들 같은 놈들..."

공화당 지도부의 위세에 눌려 제대로 말도 못했던 뉴욕과 뉴저지 지역 하원의원들이 존 베이너 하원의장에게 몰려갔습니다. "의장의 선택은 우리 등뒤에 칼을 꽂는 행위나 다름없다."면서 격하게 대들었습니다.

재정절벽을 피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자 바로 고향 하와이로 다시 겨울휴가를 떠난 오바마 대통령도 성명을 발표해서 베이너 의장을 압박했습니다. "미국 국민은 비극이 생길 때면 항상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기 위해 힘을 모은다. 하원의 공화당도 지체없이 당장 복구지원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존 베이너 의장은 당연히 구석에 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상원은 이미 지난 달 말에 604억달러 규모의 지원법안을 통과시켜 놓았기 때문에 하원만 처리하면 되는 상황인데, 그 것을 재정절벽 협상때문에 한 달 뒤로 미뤄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판단이 미국인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킨 것입니다. 결국 존 베이너 의장은 당장 이번 주 금요일에 90억달러 규모의 지원법안을 처리하고, 오는 15일에 510억달러규모의 지원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발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재정절벽이 중차대한 문제였기는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미국 정치권이 스스로 야기한 문제였고,그래서 그 것을 해결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당연한 책무였습니다. 따라서 재정절벽 협상을 이유로 샌디 피해 복구 지원법안 처리를 외면한 선택은 정치 때문에 민생을 외면한 무책임한 행동으로 비쳐진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두개골과 뇌 사이에 혈전이 발견돼 치료를 받았던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퇴원하는 모습이 뉴스에 나오고 있습니다.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소를 띠고 아내의 퇴원순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대선 토론때 했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뿐 아니라 미국의 모든 정치인, 아니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정치인들이 들어야 할 말이 떠올랐습니다. "바보야, 문제는 민생이야.!" 민생을 외면하는 정치가 민심의 외면을 받는다는 진리를 오늘 미국 정치권이 잘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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