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영화 '레미제라블'(감독 톰 후퍼)이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다. 영화의 수입사나 홍보사가 들으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시사 후 기자는 "잘 만들기는 했지만,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긴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묵직한 메시지가 무려 2시간 40여분에 걸쳐 시종일관 무겁고 진중하게 펼쳐지는 탓에 젊은 관객들을 사로잡긴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또 아무리 뮤지컬 영화라지만 러닝타임의 90% 이상이 노래로 채워져있어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이런 얄팍한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레미제라블'은 개봉 일주일 만에 전국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이같은 흥행이 대작 '호빗:뜻밖의 여정'과 한국영화 '타워'를 보기 좋게 누르고 거둔 결과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8년 개봉해 전국 450만 관객을 동원한 '맘마미아'도 있었는데 '웬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뮤지컬 영화라도 '레미제라블'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스웨덴의 전설적인 그룹 '아바'의 히트곡으로 채워진 '맘마미아'는 대중적인 요소가 뚜렷했다.
이야기 자체가 밝고 유쾌해 전 세대의 관객을 아우를만한 가족극적인 요소가 강한 '맘마미아'와 달리 장발장의 인생역경이 주요 이야기인 '레미제라블'은 시종일관 무겁다. 쉽게 말하자면 '맘마미아'는 희극인데 반해 '레미제라블'은 비극에 가까운 이야기다.
이런 장중한 성격의 뮤지컬 영화일 경우 무대에서는 관객에게 엄청난 감동을 선사할 수 있지만, 현장감을 배제된 스크린 안에서는 자칫 지루한 인생 드라마로 여겨질 위험이 컸다.
그러나 '레미제라블'은 관객을 사로잡았다. 배우들의 열연과 열창은 관객들을 눈물짓게 했고, 관람 후에도 그 여운은 관객들이 가슴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레미제라블'의 흥행은 작품의 내적 요인만큼이나 외적 영향도 적잖이 받은 것은 것으로 보인다. 탄탄한 완성도와 더불어 사회적 분위기를 탄 것도 결정적인 흥행 요인이다.
단순히 대선 특수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보다 영화 속 배경과 주인공이 처한 상황, 작품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관객들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봤다.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빈부 격차, 노동자 문제 등 우리 사회의 병폐로 지적되고 있는 사회악의 모든 요소가 '레미제라블'에 축소판처럼 투영돼있다.
영화의 역사적 배경은 1830년대 초반이다. 영화 후반부 등장하는 민중 봉기 장면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프랑스 대혁명(1789년)도 아니고 7월 혁명(1830)이나 2월 혁명(1848년)도 아니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을 찾아보면 배경으로 등장한 혁명은 7월 혁명과 2월 혁명 사이에 일어난 '6월 항쟁'(June Rebellion, 1832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최초로 민중이 주체가 돼 타락한 왕조를 몰아낸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민중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혁명을 주도했던 로베스 피에르는 공포정치를 시행했고, 소득 불평등은 여전했으며 마찬가지로 빈부의 격차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 결과 부르주아가 주도한 7월 혁명이 일어났고, 그 혁명의 성공 끝에 루이 필리프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부르주아들은 자신의 이속을 챙기기 바빴고 노동자들과 서민의 삶의 질을 전혀 개선되지 못했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의 주도하에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6월 항쟁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이 항쟁은 성공하지 못했다. 비록 실패한 혁명이지만, 영화 속에서 전달한 자유와 평등의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레미제라블'은 장발장의 드라마틱한 인생역경만큼이나 기형적 사회 구조와 불합리한 체제를 타파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열의에 찬 움직임이 큰 감동을 선사한다.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해있는 관객들에게 '레미제라블'은 절망속의 희망과 같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것이다.
실제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영화 속 배경을 우리 사회에 빗대 이야기한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단순히 영화를 관람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네 현실 투영함으로써 그 의미를 곱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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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영화 스틸컷>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