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8년 첫 민선 서울시교육감을 뽑기 위한 선거에 공정택 당시 서울시교육감이 출마합니다. 따라서 교육감 권한대행이 선거 기간 잠시 서울의 교육을 이끕니다.
(2) 이후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당선돼 업무를 시작합니다.
(3) 하지만 취임 1년 만에 뇌물 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되면서 교육감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김경회 당시 서울시부교육감이 권한대행으로 나섭니다.
(4) 불과 4개월 뒤 김 권한대행은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성희 교과부 학교자율화추진관이 대신 권한대행을 맡습니다.
(5) 이 선거에서 곽노현 교수가 승리해 서울시교육감에 오릅니다.
(6) 곽 교육감은 1년 3개월만에 선거 당시 단일화 과정에서 상대 후보를 사후 매수했다는 혐의로 구속 수감됩니다. 그래서 임승빈 부교육감이 대행 체제를 이끕니다.
(7) 1개월 뒤 서울시 부교육감의 보직이 교체되면서 새로 이대영 부교육감이 권한대행에 부임합니다.
(8) 다시 3개월 뒤 곽 교육감이 2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고 일단 풀려나면서 자리로 복귀합니다.
(9) 하지만 올해 9월 결국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서 곽 교육감이 다시 물러났고 이대영 부교육감이 두번째로 권한대행을 맡습니다.
(10) 그리고 문용린 신임 서울시교육감이 취임했습니다.
채 5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10번이나 선장의 교체를 겪으면 그 배가 제대로 운항할 수 있을까요? 말 그대로 갈팡질팡, 우왕좌왕 행보를 보이며 산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일선 교육 현장은 수없이 바뀌는 지시와 요구 속에 더 헤맬 수 밖에 없습니다. 학생인권조례, 무상급식, 고교선택제, 이른바 일제고사 등등 수많은 이슈들이 회오리 바람이 돼 서울 학교들을 분란과 갈등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각각의 주제를 놓고 서울시교육청이 적색과 녹색 신호를 수없이 바꿔내놓는 통에 학교와 교사들은 어지러워 정신을 잃을 지경입니다.
그러니 문용린 교육감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년 6개월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임기 동안 부디 무엇을 할지 고민하기 보다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더 먼저 생각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먼저 변화를 위한 변화는 하지 마세요. 새로운 수장은 전임 수장이 남겨놓은 흔적을 지우기 위해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하죠. 전임자의 정책에 대한 평가나 판단 없이 그저 거꾸로 되돌려놓기에 혈안이 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처럼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다른 수장으로 교체될 경우는 더 심합니다. 하지만 문 교육감 스스로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듯이 모든 정책에는 좋은 점과 부작용이 함께 있습니다. 정책이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 방향 자체를 되돌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단 추진해온 과정과 노력을 존중해서 그냥 놔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만 취하면 됩니다.
교사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주는 정책은 하지 마세요. 대신 교사에게 가르치는 법과 내용에 더 많은 자율권을 주세요. 열정을 되살릴 분위기와 시간을 준다면 우리 교사들은 스스로 학생들을 더 좋은 방법과 더 충실한 내용으로 가르치기 위해 분발할 것입니다. 교육청이 한 마디하면, 지역 교육장은 열 마디로, 교장은 백 마디로 늘어납니다. 그냥 교사들을 놓아두시고 마음껏 창의적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유도한다면 우리 교육은 저절로 좋아질 것입니다.
하드웨어에만 신경 쓰지 마세요. 교육감에 취임한 뒤 가진 첫 기자 간담회에서 내년 예산을 언급하면서 시설비부터 챙기는 모습을 보고 조금 걱정스러웠습니다. 물론 지나치게 낡고 위험한 시설물은 고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은 하드웨어를 채울 소프트웨어입니다. 좋은 교실보다는 그 안에서 좋은 수업이 이뤄지는데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좋은 운동장보다는 그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더 즐겁고 씩씩하게 운동하고 뛰어놀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중요합니다. 시설은 눈에 띄고 오래 남기 때문에 많은 위정자가 치적으로 삼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개발 시대를 이미 끝냈습니다. 마을 길을 넓히고 초가 지붕을 없애는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는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을 살펴야 할 때입니다. 모든 종류의 배움에서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시스템부터 살피시기 바랍니다.
교육정책을 추진하면서 학생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고려하지 마세요. 선거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단체나 개인이 대단히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분들은 문 교육감의 교육적 이상과 신념에 동의해 그런 교육을 실현하기를 바라며 순수하게 도운 것이라 믿습니다. 따라서 그런 단체와 개인이 만약 크든, 작든 정책을 통한 반대급부를 요구한다면 호통을 쳐주세요. "그런 딴 마음이 있는 줄 몰랐다, 다시는 아는체 하지 마라"고요. 교육의 수장이 임기를 끝마치기 전에 불미스런 일로 줄줄이 감옥으로 가는 모습을 더 이상 봐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따져보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한두 가지이겠습니까. 하지만 적어도 위에 말한 것만큼은 절대, 절대 하지 말아주세요. 그러면 서울의 민선 교육감 가운데 처음으로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따뜻한 감사 인사와 박수를 받으며 당당하게 임기를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