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있던 기자들 사이에서는 높은 투표율 때문에 당사 방문이 취소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투표율이 70%를 넘으면 야권에, 그렇지 못하면 여권에 유리할 것이라고 예측해온 터였다. 선관위는 여야간 유불리의 경계선상인 투표율 70% 안팎을 예상했지만 실제 투표율은 이를 뛰어넘고 있었다.
◈ 높은 투표율에 속타는 새누리
오후 3시 현재 투표율이 59.3%로 이는 지난 2007년 제17대 대선 때 같은 시간대 투표율 48.0% 보다 높은 것은 물론 이번 대선과 같은 세대 대결 양상으로 박빙의 승부가 치러진 지난 2002년 제16대 대선 때 54.3%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16대와 17대 최종 투표율은 각각 70.8%, 63.0%였다.
선관위도 당초 예측을 바꿔 이런 추세대로라면 투표율이 16대 대선 때보다 확실히 높을 것이라며 최종 투표율이 70%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일부에선 오후 3시 현재 투표율 격차가 지난 2002년 대선 때보다 5%p나 높은 점을 감안할 때 최종 투표율이 75%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이런 긴박한 상황을 방증이라도 하듯, 몇몇 의원과 보좌진들이 박 후보의 자택을 드나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또 일부 선대위 관계자와 당직자들이 전화를 걸어와 높은 투표율을 어떻게 해석 하냐고 물어보는가 하면 혹시 방송사 출구조사의 중간 집계 결과가 나왔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투표 마감이 임박할수록 방송사 출구조사에 대한 문의 전화가 늘기 시작했다. 일반 여론조사와 달리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유권자들을 상대로 하는 방식이어서 신뢰도가 높았다. 그만큼 중간 집계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선거 시작 전부터 사상 유례없는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는 게 알려졌던 터라 보안은 철저했다. 행여 유출이라도 되는 날에는 선거 판세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 CIA 보고설까지… 유언비어 폭주
이런 와중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수치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오후 3시 현재 방송사 출구조사 중간 집계 결과 문재인 후보 50.8%, 박근혜 후보 48.6%로 문 후보가 근소한 수치로 앞서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작 방송사에 다니는 나조차 이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조사 주체인 방송사 기자들조차 모르는 수치가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지만 그 수치가 입소문을 타고 돌면서 적지 않은 동요가 일었다. 심지어 서울 미대사관주재 CIA가 오전에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당선이 유력하다는 보고를 백악관에 올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패색이 짙어가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박근혜 후보의 자택 앞은 을씨년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날이 워낙 추웠던 탓도 있지만 자택 앞에는 이웃이나 지지자들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10여 명 정도가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나타난 게 전부였다.
◈ 반전에 반전
오후 5시, 투표율이 70.1%로 집계됐다. 통상 마지막 1시간 동안 투표율이 6~7%p 정도 오르는 점을 감안하면 최종 투표율은 70% 중후반대에 이를 것이 확실해 보였다. 20대·30대와 50대 이상의 세대별 대결 양상이 뚜렷해 여야 어느 쪽의 지지층이 투표장에 더 나오느냐가 중요하지 단순 투표율은 중요하지 않다고 위안하던 새누리당 관계자들마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박 후보 자택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해 보였다.
하지만 방송사 출구조사가 마감되고 득표율 예측치가 집계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각 방송사들도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분주한 모습이 역력했다. 상당수 추가 취재진이 박 후보의 삼성동 자택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리고 오후 6시, 투표 마감과 함께 출구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 새누리, 지옥에서 천국으로
결과는 박근혜 후보 50.1% 대 문재인 후보 48.9%. 오차 범위 안이기는 했지만 생방송으로 이를 지켜보던 여야 당사의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새누리당 당사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온 반면, 민주통합당 당사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지옥과 천국을 오간 셈이었다.
한번 잡은 승기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는 3% 안팎의 표차를 유지하면서 문재인 후보를 계속 앞섰다. 방송사들이 "박근혜 후보 당선 유력"이라는 자막을 낸 데 이어 얼마 뒤 "박근혜 후보 당선 확실"이라는 자막까지 띄웠다.
몇몇 지지자들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고 있던 박근혜 후보의 삼성동 자택 앞은 어느 새 이웃 주민들까지 몰려들면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박 후보 집 담벼락에는 "민생 대통령 박근혜"라거나 "박근혜 대통령" 같은 문구가 나붙기도 했다. 몇몇 사람들은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이제 관심은 박근혜 후보가 언제 자택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느냐였다. 사람들은 첫 여성 대통령의 얼굴을 보고 싶어했다. 박근혜 후보 수행팀에서는 박 후보가 좀 더 개표결과를 지켜본 뒤 자택을 나와 여의도 당사로 향할 것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박 후보는 광화문에서 발표할 대국민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모습 드러낸 첫 여성 대통령
밤 10시 40분쯤, 마침내 박근혜 후보가 집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 골목은 이미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박 후보는 환하게 웃으며 환영나온 지지자와 이웃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박 후보는 한참을 걸어 다니며 사람들과 인사를 한 뒤 차량에 올랐다. 취재진은 수십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새 대통령 당선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담았다.
박 당선인은 당사에 들러 선대위 관계자들을 격려한 뒤 기자실에 들러 짤막한 인사말을 했다. 그리고 밤 11시 50분쯤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다. 박 당선인은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설치된 특별무대에서 "보내주신 신뢰와 뜻을 깊이 마음에 새기면서 국민행복 시대를 반드시 열겠다"고 힘줘 말했다.
박 당선인 주변에는 선거 기간 동안 경호를 맡아왔던 경찰 대신 청와대 경호처 직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전 6시 투표 시작에서부터 밤 12시 대국민 메시지로 선거의 종지부를 찍기까지, 피말리는 18시간의 숨가쁜 릴레이는 첫 여성 대통령 탄생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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