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북한의 인연은 애증으로 점철되어 있다.
박 당선인이 20세였던 1972년 7월4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 박성철 부수상 사이의 특사 접촉을 통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개 항을 골자로 하는 7·4 남북공동성명은 남북 간 합의의 대헌장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다.
당시 7·4 남북공동성명이 사회적으로 환영을 받았고 남북관계 변화에 대한 기대를 수반했다는 점에서 박 당선인도 그때 냉전 해체를 향한 기대를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2년 뒤인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북한과 지울 수 없는 악연을 맺게 된다.
기념행사 중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재일 한국인으로 요시이 유키오라는 이름의 일본 여권을 소지한 문세광에게 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 당선인은 당시 사건을 겪었을 당시의 느낌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수만 볼트의 전기가 훑고 지나가는 충격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아마도 북한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경험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겪은 비참한 이 사건을 계기로 박 당선인은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곁에서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 경륜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현재의 정치인 박근혜 당선인이 만들어지는 출발점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북한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뒤로한 채 2002년 5월11일부터 3박4일간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만났다.
당시 김 위원장은 1·21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해 "극단주의자들이 일을 잘못 저지른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다. 그때 그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응분의 벌을 받았다"며 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또 박 당선인과 김 위원장은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합의한 7·4 남북공동성명이 결실을 보도록 평화통일을 위해 힘을 합치자고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특히 박 당선인은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와 6·25전쟁 때 행방불명된 국군의 생사 확인, 금강산댐 공동조사, 북한 축구국가대표팀 초청 등 남북간 현안에 대한 입장을 김 위원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북한 방문을 마친 뒤 박 당선인은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서 밝힌 방북기에서 "일부에서 아웅산 테러, 문세광 사건 등에 대해 북한의 사과를 받지 않고 김 위원장의 말만 듣고 왔다는 말도 들리지만 나의 방북은 사과를 받으러 간 것이 아니다"라며 단호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박 당선인은 지난 달 외교·안보·통일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남북 간 교류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서울과 평양에 각각 `교류협력사무소'를 설치하고 북한 지도자와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공약이 실현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박근혜 당선인은 애증이 점철된 북한과의 인연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박근혜 당선인과 북한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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