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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바뀐 대입 전형…"제발 가만히 있어줘"

[취재파일] 바뀐 대입 전형…"제발 가만히 있어줘"
연인과 헤어져 본 분들은 그런 경험 있으시죠? 무슨 일을 해도 꼬이기만 하는 상황.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영화표를 샀더니 이미 본 영화랍니다. 그 영화를 봤다는 얘기를 다 했는데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냐며.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서 선물을 샀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답니다. 때문에 오히려 싸움만 크게 합니다. 도와주겠다고  일을 했는데 상대방을 더 곤란하게 만듭니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말만 듣습니다. 이렇게 선의의 노력이 일을 원치 않는 방향으로 몰고가기만 하면 정말 답답하죠.

그런데 우리 교육 당국이 대입 제도와 관련해 하는 일들이 바로 이처럼 느껴집니다. 무엇을 해도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죠. 좋은 목적으로 내놓은 정책이라는 건 이해가 가는데 현실에서는 부작용만 키웁니다. 내년에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대입 전형도 또 여전히 그렇습니다.

내년 대입 전형의 가장 큰 변화는 선택형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도입입니다. 말로 설명하면 조금 복잡해보이지만 사실은 간단한 내용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지금까지 수험생들은 수능을 두 가지 형태로 봤습니다. 인문계와 자연계 유형입니다. 탐구 영역을 제외하고 언어, 수리, 외국어만 놓고 보면 차이는 단 한가지입니다. '수리 가'를 보느냐, '수리 나'를 보느냐 입니다. 언어와 외국어는 인문계든, 자연계든 똑같은 수준의 문제를 풀고 수리만 자연계는 더 어렵게, 인문계는 보다 쉽게 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듭니다. 왜 자연계 학생들만 더 어려운 시험을 봐야하지? 인문계 학생들이 보다 쉬운 수학 시험을 보듯이 자연계 학생들도 좀 더 쉬운 국어 시험을 봐야하는 것 아니야? 나아가 영어도 모든 학생들이 다 똑같은 난이도의 시험을 봐야 하나? 영어를 많이 써야하는 학문이나 분야가 아니면 조금 덜 공부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래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런 방안을 내놨습니다. 수능에서 국어, 영어, 수학 모든 과목을 다 난이도의 차이를 둔 두 가지 유형, A·B형으로 나눠 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B형은 현재 수능 수준의 난이도로, A형은 지금보다 더 쉬운 난이도로 출제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대학과 학생들은 필요한 양만큼 합리적으로 선택해서 준비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수능 시험 준비에 들어갈 시간과 노력을 인성 발달이나 체육, 예술과 같은 다른 분야에 돌릴 수 있습니다.

좋은 의도입니다. 교육 당국이 왜 이런 정책을 내놨는지 이해가 잘 됩니다. 그런데 대학들의 입장에서는 이 정책의 목표대로 움직일 수만은 없습니다. 특히 중상위권 대학들은 되도록 우수한 실력의 학생들을 뽑고 싶습니다. 그렇다보니 A, B형 모두 허용하지 못하고 더 어려운 B형을 본 학생만 모집하겠다고 지정했습니다. 교육 당국도 대학들이 이렇게 반응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세 과목 가운데 B형은 최대 두 과목까지만 지정할 수 있도록 제한했습니다.

학생들도 수능의 세 과목 모두 B형으로 볼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한 과목은 A형으로 봐야 합니다. 이런 조건 아래서 유명 사립대를 포함한 중상위권 대학들은 인문계는 수학만 A형, 자연계는 국어만 A형으로 지정했습니다. 나머지 대학들은 B형 응시생으로 자격을 제한했다가는 정원을 채우기 힘들 수도 있다보니 A, B형 모두 허용했습니다. 다만 더 어려운 B형 시험을 본 학생들에게 최고 30%까지의 가산점을 주기로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바둑의 정석 마냥 당연한 반응이자 자연스런 흐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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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는 살짝 변칙 작전을 구사했습니다. 다른 상위권 대학과는 달리 인문계열, 자연계열로 나눠 국어나 수학을 A형으로 해라 이렇게 지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즉 인문계열 전 학과와 공대 가운데 건축학과와 산업공학과, 사범대, 생활과학대 등은 국어와 수학 가운데 임의로 A형을 선택해 치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좀 더 쉽게 얘기하면 자연계열 준비를 하느라 국어는 A형, 수학은 B형으로 수능 시험을 본 학생도 인문계열 학과에 지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거꾸로 국어를 B형, 수학은 A형으로 치른 인문계 학생들이 공대 일부 학과에 지원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교차지원을 더 용이하게 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좀 깊이 따져보면 수학 실력이 더 좋은 자연계 학생을 인문계 학과로 끌어들이겠다는 속내가 보입니다. 인문계열 학과는 모두 교차지원을 허락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더 문을 연 셈이니까요.

뭐, 어떻든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인 서울대일지라도 단 한 개 대학의 문제니까 대세에 큰 지장이 없을 듯 합니다. 인문계 학생은 과거에도 쉬운 수학시험을 본 만큼 별 차이가 없지만 자연계 학생은 상대적으로 국어 시험이 더 쉬워진 셈이니까 분명 공부 부담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학생에 따라 영어를 A형으로 선택하면 그 또한 준비에 들어갈 노력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입시 전문가는 일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고 전망합니다. 아니 단정합니다. 대부분의 수험생은 일단 B형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는 설명입니다. 왜냐고요? 모든 수험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중상위권 대학들이 B형을 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사 하위권 대학이라도 B형에 30%라는 어마어마한 가산점을 부여한 곳이 많습니다. 따라서 A형으로 준비하다 B형 시험을 볼 수는 없지만 B형에 맞춰 공부를 하다 A형 시험을 볼 수 있는 만큼 무조건 일단 B형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수능 원서를 접수하면서 자신이 갈 수 있는 대학과 학과의 지정 시험 형태와 가산점의 크기 등을 고려해 A로 할지, B로 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일선 고등학교도 대부분 B형을 대비하는 수업을 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A형이나 B형으로 학생들을 나눠 수준별 수업을 할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사 A형 반을 만들더라도 학생들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A형 반은 열등반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커서 학생과 학부모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애초에 수능 준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던 교육 당국의 의도는 허사로 돌아갈 전망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다 더해 학생, 학부모의 부담이 더 늘어나게 됐습니다. 가뜩이나 대학 전형이 복잡해서 고려해야 할 전형요소가 수십 가지에 이르는데 머리 싸매야 할 고려 대상이 추가된 것입니다.

이제 대학과 학과를 고를 때에는 수능 반영 방식을 A 또는 B로 지정했는지, 아니면 가산점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따라서 내게 가장 유리한 시험 조합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가고 싶은 대학, 학과 후보군이 비슷한 형태의 유형 조합을 요구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서로 다를 경우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안그래도 복잡하고 머리 아프다는 대입 전형이 간단해지기는 커녕 더 아리송해졌습니다. 수능의 준비 부담은 그대로인데 골치 아픈 선택 사항만 불어난 것입니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깊어지는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제발, 가만 있는 게 나를 도와주는 거야." 수십년 전 헤어지기 직전에 연인이 쏘아 붙이듯이 했던 그 말을 이제 교육당국에 해주고 싶은 건 저 뿐만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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