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앞 바닷가에 역한 냄새와 함께 기름띠가 밀려들어 주민들과 함께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앞이 캄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이런 일이 다시 생겨선 절대로 안됩니다."
5년 전 충남 태안 앞바다에 '검은 재앙'을 몰고 왔던 기름유출 사고 당시를 회고하는 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 어촌계장 이충경(41) 씨는 아직도 당시의 충격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5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마을이 어느 정도 안정됐지만 굴과 바지락 등 싱싱한 수산물을 따올리던 사고 이전의 풍요로운 시절로 돌아오지는 못한 상태"라며 "주민들이 바지락을 채취하며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 사고경위와 피해상황 = 2007년 12월 7일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 해수욕장 북서쪽 5마일 해상에서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선과 정박중인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충돌하면서 빚어진 이 사고로 유조선에 실려 있던 원유 1만 2547㎘가 쏟아지면서 이 일대 바다는 완전히 초토화됐다.
태안군, 서산시, 보령시, 홍성군, 당진시, 서천군 등 충남 6개 시·군의 해안 70.1㎞를 포함해 전남과 제주도 등 전국 3개 시·도12개 시·군의 해안 375㎞와 101개 섬이 기름띠로 뒤덮였다.
사고로 유출된 원유는 1995년 전남 여수에서 발생한 씨프린스호 사고 당시의 5035㎘의 2배가 넘는다.
어선, 양식업, 맨손어업 등 수산분야 5만 7천 건과 음식, 숙박업 등 비수산 관광분야 1만 5천 건 등 모두 7만 2천여 건의 피해를 낸 것으로 추정되면서 피해액도 씨프린스호 사고보다 5배 이상 큰 것으로 추산되는 등 국내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로 기록됐다.
사고 직후인 12월 11일 태안군과 보령시 등 충남도내 6개 시·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가운데 엄청난 충격에 망연자실해 있던 주민, 정부, 지자체에 재앙 극복의 힘을 불러일으킨 것은 전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 123만 명이었다.
서해안 청정해역이 검은 기름띠로 뒤덮인 것을 가슴 아파하며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몰려들어 흡착포로 바다 위의 기름을 떠내고 해안의 자갈을 일일이 닦아낸 자원봉사자들의 희생적인 방제활동으로 태안지역 바다가 이른 시일 내에 옛 모습을 찾은 것은 '서해안의 기적'으로 불린다.
이듬해인 2008년 3월 피해지역 및 주민에 대한 지원, 지역경제 활성화, 주민건강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유류오염사고지원특별법'이 제정됐고, 자원봉사자 123만 명을 포함해 인력 207만 명과 장비 3만 5천 대가 투입된 가운데 8월 말까지 기름찌꺼기를 제거하는 긴급 방제작업이 마무리되면서 태안은 외관상 사고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 험난한 배상과정 = 사고로 삶의 터전인 바다를 빼앗긴 주민들은 그해 겨울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의 극심한 생활고를 겪을 수 밖에 없었고, 정부는 피해 주민 6만 7757가구에 긴급 생계안정자금 993억 원을 지원했다.
2008년에는 피해지역 주민 연 인원 16만 5천 명이 참여한 특별공공근로사업이 실시돼 153억 원이 지원됐고, 2009년에도 143억 원 규모의 희망근로 프로젝트 사업이 실시돼 주민들의 생활안정을 도왔다.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펀드)의 피해 사정이 장기화함에 따라 배상을 청구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충남에서 1만 9419건, 486억 원의 대부금도 지원됐다.
지지부진한 피해 사정은 5년이 지난 현재 대부분 마무리돼 가고 있지만 국제기금의 피해인정액은 주민들의 배상청구액에 턱없이 못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말 현재 전국적으로 청구된 피해배상 건수와 금액은 2만8천951건, 2조 7751억 1300만 원에 달하지만 국제기금의 피해 인정건수는 4762건, 금액은 1798억 8800만 원에 불과한 형편이다.
주민들이 신청한 배상금액 대비 피해사정 결정 금액의 비율은 3.5%에 불과한 것이다.
맨손어업 등 배상 청구를 위한 증빙자료가 부족한 경우가 많은 데다 사고에 따른 조업중단 기간 등을 놓고 국제기금과 정부간 견해차가 크기 때문이다.
'유류오염사고지원특별법' 개정으로 국제기금의 사정과 별도로 대전지법 서산지원에서 진행되는 유류오염손해배상 책임제한 절차 관련 제한채권 조사를 위한 사정재판 결과에 따라 피해주민이 피해사실을 인정받을 경우 정부가 직접 배상을 해주게 된다.
피해배상 신청은 12만 7483건, 청구금액은 4조 2273억 835만 308원이다.
서산지원은 제한채권자의 신고서와 증빙자료, 국제기금의 사정결과, 법원에 구성된 검증단의 검토 결과 등을 종합해 사정재판을 진행해 가급적 연말을 전후해 사정 결정을 내릴 방침이다.
사정재판으로 확정된 채권은 1천500억원 범위에서 유조선사인 허베이스피리트사가 부담하고, 이를 초과하면 국제조약에 따라 3480억 원의 한도 내에서 IOPC펀드가 책임을 부담한다.
사정재판으로 확정된 손해액이 이 한도를 초과하면 유류오염사고지원 특별법에 따라 정부가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주민들은 국제기금의 사정결과가 배상신청액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것으로 나온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서산지원의 사정재판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자신들의 희망대로 충분한 배상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충경 어촌계장은 "마을 주민 대부분이 사고 후 생업의 터전을 잃어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는데 아무래도 보상금이 얼마 안될 것 같아 걱정"이라며 "지금까지야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 먹고 살기 위해 작은 사업이라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별도로 지원을 해주기만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주민들은 사고를 야기한 당사자인 삼성중공업과 삼성그룹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삼성중공업이 지역사회발전기금으로 출연을 약속한 1천억 원을 5천억 원 이상으로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국회에 태안유류피해대책특별위원회가 구성돼 피해배상과 피해지역 생태계 복원사업 등의 조속한 추진을 독려하고 있다.
◇ 생태계 복원·주민건강 조사는 장기과제 = 태안지역이 겉보기에는 사고 이전의 청정해역을 회복했지만 사고의 직격탄을 맞은 일부 지역에는 여전히 유류오염으로 파괴된 생태계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 주민은 "눈에 보이는 바다는 깨끗해졌지만 아직도 바닷속 갯벌을 파보면 기름의 흔적이 배어 나온다"며 "가리비와 바지락 등 패류의 개체수도 사고 전에 비해 턱없이 줄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9년 7월 기름피해를 본 12개 시·군을 특별해양환경 복원지역으로 지정해 2019년까지 4786억 원을 들여 생태계 및 어장환경 복원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사고 당시 수개월간 기름방제 작업에 투입된 주민들의 건강상태 모니터링과 지원도 장기과제다.
태안군과 태안환경보건센터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소원면과 원북면 등 해안가 주민 566명을 대상으로 정밀건강검진을 실시한 결과 28.2%인 160명에게서 이상징후가 발견돼 조직검사를 의뢰했다.
이 중 2명은 조직검사 결과 각각 대장암과 식도암에 걸린 것으로 확진됐다.
지난해에도 유류피해 주민 614명을 대상으로 정밀검진을 실시한 결과 230여 명이 이상징후가 진단돼 조직검사를 받았으며 이중 5명이 암 판정을 받았다.
태안환경보건센터의 한 관계자는 "해안가 주민들에 대한 건강검진 결과 조직검사 의뢰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유류피해 주민들에 대한 장기적인 건강영향 추적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태안=연합뉴스)
태안 기름유출 5년…배상 본격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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