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 기사를 뒤늦게 본 어느 중학생 시청자께서 “돼지도 독감에 걸리나요?” 이런 제목으로 제게 메일은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한때 수의사였다는 걸 보고 연락을 주셨다고 합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뭐? 돼지가 독감에 걸린다고?’ 뭔가 어색합니다. ‘아무래도 독감은 사람이 걸리는 게 아니야?’ 이런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돼지도 독감에 걸립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새, 개, 고양이, 말 등도 모두 독감에 걸립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독감의 원인체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종류가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사실은, ‘동물이 걸리는 독감 바이러스가 이 사람에게도 옮겨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3년 전 ‘신종 플루’ 파동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신종 플루’로 불렀던 병의 원래 명칭은 ‘Swine Influenza(돼지 독감)’입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돼지가 걸렸던 독감이 사람에게 옮겨온 것입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누구냐 넌?
이렇게 ‘묻지마(?) 감염’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인플루엔자(Influenza)란 단어는 ‘이탈리아어’에서 나왔습니다. 그 뜻은 '영향을 미치다.'란 influence와 동일한 뜻이라고 합니다. (줄여서, 플루(flu)라고도 표현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독감(毒感)’이나 ‘유행성 독감’이라는 명칭을 쓰기도 합니다.)
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종류는 크게 5가지가 있습니다. Influenza A, Influenza B, Influenza C, Isavirus, Thogovirus. 이 바이러스들은 대부분 척추동물에서 감염을 일으키는데, 이 가운데 사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플루엔자 A, B, C 3가지 종류입니다.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는 주로 조류와 일부 포유류에만 감염을 일으킵니다. 특히, 일부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는 조류에 치명적인 감염을 일으킵니다. 흔히 얘기하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그것입니다. 이 바이러스는 불행하게도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서도 같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가장 독성이 강하고,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발생했던 최근 ‘신종 플루’도 여기에 속합니다.
인플루엔자 B 바이러스는 A보다 감염되는 숙주가 적습니다. 대상은 특이하게도 사람과 물개(seal) 두 종류뿐입니다. 포유류와 조류에 ‘무차별 감염’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에 비해 전염력이 약해, 상대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인플루엔자 C 바이러스도 비교적 드물어서 그 존재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원성이 강하고, 한번 유행하면 세계적으로 번질 가능성도 큽니다.
문제는 바이러스의 ‘가시 돌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돼 있습니다. 유전물질을 가진 핵이 가운데 있고, 그 주변에 헤마글루티닌(Hemagglutinin), 뉴라미니데이즈(Neuraminidase)로 불리는 2종류의 가시돌기가 나와 있습니다. (참고로 Hemagglutinin은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로 침투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Neuraminidase는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두 종류의 가시에 따라 H1N1, H5N1 같은 세부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지금까지 H는 15종, N은 9종이 발견됐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산술적으로 모두 144종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묻지마 감염’이 가능한 이유입니다.
게다가, 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전파되기도 매우 쉽습니다. 바이러스가 체내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는 곳은 주로 폐와 인후두, 코의 점막의 상피세포입니다. 그렇다 보니, 주로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바이러스가 밖으로 많이 유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이러스 입장에서 보면, 자손(?)을 퍼트리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바이러스가 호흡기 쪽에 자리 잡다 보니, 감염되면 오한과 발열 인후통, 몸살 같은 감기증상을 보이게 됩니다. (예외적으로 어린 아이들은 설사와 복통 등 장염 증상도 일으킬 수도 있는데, 이런 증세는 B형 인플루엔자에서 주로 나타납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적
우리 인간은 ‘백신’이라는 무기를 만들어 이에 대항해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종류가 워낙 다양한 데다, 감염되는 동물도 많아 모든 바이러스에 적합한 백신을 만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이 바이러스의 유전자는 이중나선이 꼬여 있어 상대적으로 튼튼한 DNA 대신, 한 가닥으로 된 RNA를 갖고 있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종류의 바이러스가 생길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매년 유행하는 바이러스 종류가 다르다 보니, 우리 인간이 바이러스를 이기는 건 매우, 매우 어렵습니다. 냉정히 말하자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서상희 충남대 독감 바이러스연구소장은 “인류의 가장 강력한 적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다.”라고까지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욕심’이 부른 비극
하지만, 정말 위험한 문제는 이렇게 탄생하는 ‘신종 바이러스’가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원인을 우리 ‘인간의 욕심’에서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고기와 달걀을 얻기 위해 동물들을 좁은 공간에 밀집 사육을 시킵니다. A4용지 크기의 감옥(?)에 갇혀, 한평생 알만 놓다가 생을 마감해야 하는 닭. 좁고 더러운 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밀집 사육되는 돼지. 과연, 이런 동물들이 건강할 수 있을까요? 이런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동물들은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동물들 체내에 들어온 바이러스들은 공장에서 ‘신제품’을 만들어 내듯, 새로운 종류의 바이러스를 끊임없이 생산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제품 바이러스’는 다시 돌고 돌아 우리 인간을 공격하게 됩니다. 결국,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 우리가 애썼던 일들이 다시 우리를 위협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다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맞춤식 예방백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겨울에는 또 어떤 바이러스가 ‘백신’이라는 방어막을 피해 우리를 공격해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과 동물이 모두 건강한 세상, 그래서 굳이 ‘백신’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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