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를 겨냥한 미국의 반(反) 이민법이 의료계에 진료공백 사태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반이민법 때문에 의사 면허 갱신이 지연되면서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와 면허 없이 진료하는 의사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조지아 등 공화당이 득세하는 일부 주에서 잇따라 도입한 반이민법은 의사, 간호사, 약사에 대해서도 의료면허 갱신 때 미국 시민권자임을 입증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법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주 웹사이트에 접속해 클릭 몇 번이면 갱신이 이뤄졌지만 올해부터는 시민권자임을 증명하는 공증서를 떼고 신분증과 함께 주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등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졌다.
미국의 엉성한 행정 시스템도 혼란을 더하는 요인이다.
행정 등 법 체계가 연방, 주, 카운티, 시 정부마다 제각각인 미국은 이들 행정 기관 간의 협조 체제가 탄탄하지 않고 대민 업무를 맡는 하위직 공무원들의 손놀림마저 더뎌 '행정 후진국'이란 오명을 갖고 있다.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조지아주같이 외국인 이민과 체류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강한 지역에서는 외국인이 운전면허증 하나 발급받는데 몇 달이 소요되고 있다.
미국에서 거의 유일한 신분증인 운전면허증을 제때 발급받지 못한 외국인이 불가피하게 무면허 운전을 하거나 신분증을 제시하지 못해 구속되고 처벌받는 황당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침체로 세수난에 시달리는 주정부들이 행정 요원을 대폭 줄인 것도 무면허 의사를 양산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
23일 WSB 방송에 따르면 조지아주의 경우 의사면허 갱신을 신청한 의사 가운데 3분의 1이 면허 발급 지연으로 적어도 열흘 이상 '정식 의사' 신분으로 진료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방송은 조지아주에 등록한 의료 전문직 종사자의 80%가 내년에 면허를 갱신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최악의 의료대란이 다가오고 있다고 전했다.
졸지에 무면허로 전락한 의사들이 의료단체에 전화를 걸어 불만을 쏟아내고 있지만 완고한 공화당 주정부와 의회가 이들의 원성을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의사에게 예외를 허용하면 다른 업종에서도 예외를 요구하고 나서 결국 불법체류자 추방이란 입법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게 강경론자들의 주장이다.
조지아의료협회 관계자는 지금까지 약 2천800건의 의료면허 갱신 서류를 처리했지만 단 한 건의 불법체류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융통성 없는 행정에 분통을 터트렸다.
(애틀랜타=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