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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막으로 변하는 바다…물고기·해초가 사라진다

전국 연안 갯녹음화 심화

[취재파일] 사막으로 변하는 바다…물고기·해초가 사라진다
바다 속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기자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농림수산식품부 자원환경과의 공무원으로부터 바다 숲을 서둘러 조성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바다가 어떻게 사막으로 변할 수 있을지 의아해 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확인해본 결과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취재를 위해 청정 제주를 방문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맑고 바다가 반갑게 취재진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수중 카메라를 들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자 청정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죽은 바다 속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암반이나 자갈들로 이뤄진 제주의 거의 모든 연안이 하얗게 변하는 갯녹음 현상을 목격한 겁니다.

원래 제주 연안은 현무암으로 뒤덮여 검은 색을 띠어야 하는 게 보통이지만 암반 지대가 하얗게 변해버린 겁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렇게 하얗게 변한 바닷물 속엔 그 흔한 해초도 물고기도 자취를 감춰버렸다는 점입니다. 제주 연안에서는 전복과 소라, 성게 등 해산물이 풍부했습니다. 하지만 허옇게 변한 바다 속에는 작은 물고기 몇 마리와 가시돋힌 성게만 몇 마리 보일 뿐 다른 수중 생물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석회 조류의 번식이 원인...갯녹음 전국 연안으로 확산

바다 속 암반지대가 하얗게 변하는 갯녹음 현상을 백화현상이라고도 부릅니다. 하얗게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석회 조류입니다. 홍조류의 일종인 석회 조류는 본래 분홍색이지만 죽으면서 석회질을 내뿜으며 하얗게 변해버리는 겁니다. 석회 조류도 해조류의 일종이지만 딱딱하고 석회질을 함유해서 물고기나 해초가 먹지 않습니다. 또 석회 조류가 암반과 자갈을 뒤덮으면 감태나 미역, 다시마 등 다른 해조류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해 살 수 없게 됩니다. 

해조류가 없는 바다는 사막이나 다름없습니다. 당연히 소라, 전복은 물론 물고기도 살 수 없게 되는 것이죠. 갯녹음 현상은 깊은 바다 속이 아닌 5~6m 내외의 얕은 연안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주 서귀포 남쪽 해상에서 1998년에 처음 관찰된 갯녹음 현상이 점점 위쪽으로 북상해 지금은 제주의 거의 모든 해역으로 확산됐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강원과 경북 일대 동해 연안과 남해, 서해 연안으로까지 바다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실태조사에서 사막으로 변한 연안 면적이 7천ha였던 데 반해 2010년 조사에서는 이 면적이 여의도의 16배로 불어난 1만4천ha로 악화됐습니다.  한반도 전 연안의 갯녹음화가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석회 조류의 번식에는 다른 원인이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상승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현상을 계속 연구해온 한국수자원관리공단 김대권 제주지사장은 “계속되는 수온상승으로 온대성 해조류들이 북반구로 이동한 원인이 가장 크고, 다음으로 해조류를 먹는 성게 같은 동물들이 급증한 것도 한 원인이다”라고 설명합니다.

또 연안 해역에 밀집해 있는 양식장들로부터 약품과 오염물질 등이 흘러나오고 비가 온 뒤 담수가 지하로 스며들지 않고 곧바로 연안으로 흘러들어가는 것도 갯녹음을 악화시킬 수 있는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런 추론을 뒷받침 하는 건 갯녹음 현상이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연안, 일본 연안도 비슷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직 갯녹음이 왜 확산되는지 뚜렷한 원인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사막화되고 있는 연안...인공 해초 숲 조성으로 되살려야

갯녹음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원인규명에 앞서  최소한 사막화를 지연시켜야 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주목받고 있는 기술이 바로 ‘바다 숲’ 조성입니다.  바다숲이란 콘크리트 구조물에 감태 등 해초를 심어 인공적으로 해초 숲을 만들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취재진이 서귀포 앞바다를 수중 촬영한 결과 갯녹음으로 하얗던 바다 속이 다시 해초들로 무성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해초가 자란 주변에서는 자리돔이나 쥐치 등이 떼를 지어 헤엄치니는 등 떠났던 물고들이들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망가졌던 수중 생태계가 다시 복원된 겁니다. 주무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는 내년에 전국 연안 9개 연안에 모두 1,377ha의 바다숲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또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식목일을 전후해 바다 녹화사업을 전개해나가기로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2030년까지 전국 연안에 3만5천ha의 바다숲이 조성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숲을 조성한다고 해서 기후변화의 대세를 막을 수 있을까?’... ‘생명의 발생지인 바다를 망가뜨리고 해양 생태계를 훼손한 인간들이 바다를 다시 되살릴 수 있을까’. 이미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를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해양 생태계를 복원해야겠다고 예산을 투입하는 정부를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 바다는 현 세대뿐만 아니라 후손들도 함께 누려야 할 지구 어머니인 것입니다. 복원은 그야말로 땜질에 불과합니다. 훼손되고 오염된 바다를 정화하고 되돌리는 데는 수백~수천 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복원도 중요하지만 더 이상 바다 생태계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오염원을 차단하는 동시에 정부와 어민, 국민들이 보존 대책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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