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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외면받는 전통 한의학…폐업 속출

전통 한의학에 대한 관심과 지원 늘려야

[취재파일] 외면받는 전통 한의학…폐업 속출
내년이면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동의보감’이 발간된 지 꼭 4백 년을 맞습니다. 동의보감은 백성들의 질병 치료와 예방을 위해 조선 선조가 허준 등에게 편찬을 명한 의학서적으로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약재들을 이용해 질병 치료에 이용하게끔 한 동양 의학 백과사전입니다. 지난 2009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기록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동의보감은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의 의서 40여 종을 집대성한 것으로 중국, 일본 등에도 소개돼 지금까지 많은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는데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전통 의술이 세계적인 수준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특히 동의보감은 단순한 병 치료보다는 병으로부터 몸을 방어하는 것을 중시해 쓰여진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전통 한의학은 예전과 비교하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아시아에서 가장 큰 한약재 유통, 판매 시장이었던 서울 경동 약령시장의 경우 20년 전만 하더라도 주변에 350곳이 넘는 한의원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1995년 서울시가 약령시장으로 지정할 당시 영상을 보니 시골장터를 연상케 할 정도로 활기가 넘치고 호황을 누렸습니다.

17년이 지난 지금 기자가 시장을 둘러보고 느낀 소회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끈켰다는 점입니다. 한의원 수는 개장 당시보다 4분의1 수준인 90여 곳으로 줄었고, 폐업으로 문이 굳게 닫힌 한의원이나 약방 점포가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경동 약령시장에서 20년 넘게 한의원을 해온 한 한의사는 “20년 전에 이 곳에서 한의원을 개원하려면 당시 돈으로 권리금 1억 원을 주고 들어와야 했지만 지금은 권리금은 커녕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한의원이 폐업하다 보니 약재상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 약재상은 예전에 시장 거리에 10명의 손님이 걸어다녔다면 요즘은 6~7명으로 줄었고, 그나마 약재를 구하러 오는 손님들이 아니라고 푸념을 늘어놨습니다. 실제로 통계를 보니 지난해 폐업한 한의원 수는 863곳으로 최근 3년 간 줄곧 느는 추세였습니다. 우리 전통 한의원들이 왜 외면 받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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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기능식품 시장 급성장이 한의원 위축 불러

가장 큰 원인은 건강기능성 식품 시장의 급성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40대 이후 가장이나 어린이들은 보약을 지어 먹었습니다. 질병 치료보다는 예방 목적으로 몸의 기를 충만하게 만들기 위해 한의원이나 한약방에서 달여 준 보약을 먹었던 거죠. 하지만 지금은 보약을 거의 먹지 않습니다. 대신 홍삼 등 건강기능성 식품이 급증해 지난해에만 1조3천6백억 원 규모로 커졌습니다. 1년 만에 28%나 성장했습니다. 반면 보약 원료로 쓰이는 한약재 매출은 30% 가까이 줄어 5천5백억 원 시장이 3천억 원 대로 위축됐습니다.
 
처방을 받아야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이 보약을 대신하고 있는 겁니다. 특히 한의원에서 질병 치료 목적으로 약을 지어먹어도 보험급여 적용이 안 돼 첩약이 수십만 원이나 된다는 점도 환자들에겐 큰 부담입니다.

한의원이 위축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치료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겁니다. 한의원에서 보험급여가 적용되는 대상은 침, 뜸, 부황 등인데 이런 치료 방법으로는 허리나 무릎, 관절병 등을 고치는 데 주로 이용될 뿐입니다. 실제로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 가운데는 근골격계 질환자들이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침 1번 맞는데 5천 원이면 되니 한의원으로서는 비싼 임대료, 인건비 빼면 남는 게 거의 없는 겁니다.

또 뼈가 부러져 한의원을 찾아도 환자는 해당 병원에서 X-ray나 초음파 등을 사용하지 못하다보니 다시 양방 병원에 가야하는 번거로움과 이중으로 비용이 드는 것을 감수할 수 밖는 상황입니다. 이런 점 등이 전통 한의학에 등을 돌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통계를 보면 전체 보험급여 지금액 가운데 지난해 한방에 지급된 비율은 고작 3.6%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머지 96%는 양방 병원에 지급된 금액입니다.

정부의 한의학 홀대 정책도 문제입니다. 세계보건기구 WHO에 따르면 세계 전통의학시장 규모는 2009년 2,500억 달러 규모로 IT 시장을 뛰어 넘었으며 오는 2050년에는 약 5조 달러(한화 약 6천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나라의 세계 전통의학시장 점유율은 1.5%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중국의 경우 헌법에 ‘발전 아국 중의학’이라고 명기해 중의학 우대정책을 쓰고 있으며, 2010년 제11차 중의학 발전 5개년 계획을 성공리에 수행하고 현재 제12차 계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요? 보건복지부에서 2015년까지 5년간 1조99억 원을 투자해 한의약산업을 새로운 유망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제2차 한의학육성 발전계획’을 발표한 바 있지만, 1차 계획 때 예정됐던 7천억 원의 지원 금액이 3천9백억 원으로 54%에 불과할 정도로 실적이 미미한 상황입니다.

한의학 의축을 외부 요인으로 돌릴 때만은 아닙니다. 작금의 한의학계를 보면 똘똘 뭉쳐도 시원치 않을 한의사들이 분열될 조짐마져 보이고 있습니다.  '천연물 신약'의 처방권을 양의사들에게 준 식약청에 항의하기 위해 3천명의 한의사들이 집회를 벌이고 지도부를 불신한 백여 명의 젊은 한의사들은 협회 건물을 점거하며 밤샘 농성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무너져가는 한의원들이 많아질수록 내부 분열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한의학계는 정부 정책이나 지원을 촉구하기 전에 스스로 반성해야 합니다. 서양의학은 근거중심의 학문으로 끊임없는 혁신,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의료 소비자들인 환자들도 눈부신 의술 발전에 혜택을 입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의학계는 수천 년의 임상으로 확인된 '동의보감'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게 말이 되냐며 안주해온 게 사실입니다. 보약 팔아서 잘 나갈 때 한의학계는 더욱 수요자 중심의 연구개발을 했어야 합니다. 동의보감만 잘 연구하고 과학화 했어도 지금의 위기는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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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의학의 과학화가 필수…정부, 전통 한의학에 지원 늘려야

지난 1월 보건복지부에서 우리 국민의 한방의료이용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결과를 보면 한방의료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의 76.5%는 한방의료를 ‘신뢰한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만큼 환자들이 느끼는 만족도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통 한의학을 살리자는 것은 단순히 우리 것을 되찾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서양의학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수록 과잉 진료와 오진, 항생제 남용에 따른 내성균 출현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전통 의학은 치료 중심이 아닌 예방과 자연 치유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현대 의학의 부작용을 보완하고 심각한 의료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전통 한의학에 대한 재조명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화약약품이 아닌 천연 약재를 사용해 질병을 고친다는 점에서 몸에 부작용이 거의 없고 병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한의학은 미래 성장 동력으로 키워야 합니다. 한의학이 우대받으면 약초나 약재 산업 뿐만 아니라 약재에서 추출한 물질로 신약 등도 충분히 개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장밋빛 청사진에는 뒤따라야할 과제도 있겠죠. 먼저 한의학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우선돼야 하고, 자기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는 양방, 한방 의료계가 충분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상생을 도모해야 합니다. 양.한방의 상생은 비단 의료계 발전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환자를 위한 맞춤형 통합 진료의 시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을 발간한 허준 선생은 질병으로 고통 받는 백성을 긍휼히 여겨 10년이 넘는 방대한 자료를 종합해 ‘동양 의학 백과사전’을 완성했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인류 봉사에 헌신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양방, 한방이 조속히 한자리에 모여 상생의 의술을 펼칠 수 있도록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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