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법 시행령 제 34조 6항
"심의회는 제5항의 금액을 결정하려는 때에는 그 결정의 적정성과 투명성을 위하여 공청회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여론조사기관을 통하여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절차를 거쳐야 하며, 그 결과를 반영하여야 한다"
2008년에 개정된 겁니다. 개정된 조항이라면 개정 이유가 있을 겁니다. 먼저 이유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1991년에 지방자치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지방의회도 함께 꾸려졌습니다. 이 시기 지방의회 의원들은 '무보수 명예직'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보수로 운영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젊고 능력 있는 일꾼들이 지방의회 의원직에 나서지 않은 겁니다. 따라서 지방의회 의원직은 지역에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이 목에 힘주는 도구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기 위한 자리로 왜곡됐습니다.
그래서 지방의회 의원들의 전문성과 책임감을 높이자는 취지로 2006년부터 유급제로 바꿨습니다. 이렇게 유급제로 바꿔놓으니 또 한바탕 태풍이 불었습니다. 지방의회들이 마음대로 자기들의 '월급'인 의정비를 막무가내로 올리기 시작한 겁니다. 정부가 나섰습니다. 그 시점이 2008년입니다.
이 때 마음대로 지방의회에서 의정비를 올리지 못하도록 규제를 한 게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가 인상 상한액을 산출하는 공통기준을 제시해 법정 기준 액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의무적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라고 한 겁니다.
그런데, 조항을 자세히 보면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주체가 '심의회'라고 돼 있습니다. 이 심의회는 의정비심의위원회입니다. 의정비심의위원회는 교육, 언론, 시민단체등에서 추천받은 10명으로 구성된 의정비를 결정하는 기구입니다. 의정비심의위원회는 행안부 산출기준에 따라 나오는 인상 기준액에서 ±20%이내에서 인상률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 인상률이 적절한지 여부를 시민들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의견을 반영해 최종 의회에 전달해주고 의회는 본회의를 통해 조례를 개정하는 의정비 인상은 마무리가 됩니다.
심의회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방식으로 '설문조사'를 사용합니다. 시민단체들은 바로 이 부분이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설문조사가 시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올해 경기도의 한 지방의회는 의정비심의위원회에서 10% 인상안이 결정돼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인상률이 '높다'라는 의견이 60%가 나왔습니다. 설문조사 결과 오히려 8%를 더 낮춰야 한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의회는 7.4% 올리는 것으로 결정해 의회에 통보했습니다. 다른 지방의회도 7% 인상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더니 '높다'라는 의견이 63.8%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적정 의정비도 지금 받고 있는 의정비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5.6% 인상안으로 결정해 의회에 통보했습니다.
이제부터 말싸움이 시작됩니다. 의정비심의위원회는 인상안이 높다는 의견이 많으니 처음에 제시한 인상안보다 좀 더 낮춰서 인상안을 결정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한편에선 오히려 의정비를 더 낮춰야 하는 의견이 많으니 내려야 하는데 왜 올리느냐고 따집니다. 의견을 반영하라고만 했지, 어떻게 반영하라는 건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보니 각자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모습입니다.
취재를 하다 보니 조금씩 속내를 보였습니다. 솔직히 이 설문조사는 법조항을 충족시키기 위한 '요식행위'라는 겁니다. 그리고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항상 높다고 나오니 처음 제시한 인상률에서 0.1%만 낮추면 행안부에서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겁니다. 행안부에서도 절차를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지적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꼼수'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설문지 자체도 좀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게 시민단체와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설문지는 행안부 표준안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표준안은 필수질문 3개로 구성돼 있습니다. 가장 먼저 의정비 인상률에 대한 의견을 높다, 낮다, 적정하다로 묻습니다. 다음에 높다고 대답한 사람은 얼마가 적정한지 물어보고, 낮다고 생각한 사람은 얼마가 적정한지 물어봅니다.
그런데, 설문지에는 인상률이 높은지 낮은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정보가 너무 부실합니다. 제시된 정보라고는 동일한 조건의 다른 지방의회의 의정비 평균이 고작입니다. 이게 표준안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자체는 표준안에다 숫자만 바꿔서 설문을 합니다. 제가 확보한 설문지들은 모두 그랬습니다.
그나마 몇몇 곳은 몇 년 동안 의정비를 올리지 않았다는 정보 정도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대놓고 왜곡됐다, 유도된 설문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왠지 찜찜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받았습니다. 통계학 분야 전문가들은 통계적인 설문 설계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꼭 한마디씩 붙였습니다. 인상에 대한 의도가 느껴지는 설문인 거 같다는 겁니다.
심지어 이런 이야기도 들립니다. 대체 이 설문을 왜 하냐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500명 표본에 95% 신뢰수준에서 4.4%의 표집오차가 발생한다고 하는 이 설문결과를 얼마나 신뢰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제대로 된 정보 제공도 없는 설문조사지와 신뢰수준도 낮은 설문조사 결과를 가지고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하는 거 자체가 '요식행위'이고 탁상공론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일선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산을 들여서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항상 결과는 높다로 나오고 심의회에서는 제시한 인상률에서 조금 낮춰서 올리는 반복적인 행태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시민들의 의견이라고 하기엔 다소 신뢰하기 어려운 자료를 바탕으로 심의회에서는 이마저도 임의로 해석하고, 이 결과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모습이 한심하다는 푸념도 나옵니다.
그렇다면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라는 조항이 문제인가? 아닙니다. 좋은 조항입니다. 그런데 이를 운영하는 주체들의 '안일함'이 폐단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조항을 보면 설문조사만 하라고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청문회도 있습니다. 하지만, 청문회를 하는 지방의회는 없습니다. 설문조사만 합니다.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설문조사 전문기관에 맡기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매년 하던 대로 알아서 해석해서 결정하면 그만입니다. 시민단체들은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시민의 의견을 반영해서 의정비를 올리라는 법의 취지를 살리자는 겁니다.
청문회.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시도해 볼 값어치는 충분히 있습니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얼마나 일을 했는지 알아야 의정비를 인상에 대해 시민들이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청문회가 필요합니다. 의원들도 청문회에 나와서 내가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그렇게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의정비를 조금 더 받아야 겠다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일부 의회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나옵니다. 자신의 세금으로 의정비 주는 건데 누가 올리는 데 찬성하겠냐고 물어봅니다. 이런 발상이 시민들을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전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아님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그리 우매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내 돈이니 주기 싫다고 떼쓰는 어린아이들이 아닙니다. 충분히 설득을 시키고 이해를 시키고 감동을 주면 알아서 올려주자고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동안 지방의회에서 시민들에게 이런 감동을 준 적이 있는지 자성부터 해야 할 겁니다. 그러면 자연히 의정비 인상에 대해 국민의 여론도 변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