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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노인 요양원 나가! 노인은 어디로 가란 말이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취재파일] 노인 요양원 나가! 노인은 어디로 가란 말이요?
노인이 주제지만 어린이 얘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어린이집이 부족해서 난립니다. 그래서 요즘은 새로지어지는 아파트는 아예 단지마다 어린이집을 함께 짓습니다. 얼마나 편합니까? 자녀 맡길때 간단히 걸어서 갈 수 있고, 보고 싶을때 손쉽게 가서 볼 수 있고, 동네에 있으니 선생님들이 아이들도 더 잘 보살펴 주실 것 같고.

그런데 이게 과연 아기들만 그럴까요? 부모님 요양원에 맡겨야 하는 자녀들도 입장은 똑같습니다. 맞벌이다 뭐다 해서 몸 불편하신 부모님을 시설에 맡기긴 맡겨야 하는데, 기존 요양원은 저 멀리 외곽에, 커다란 병원의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들어가는 순간 환자복을 입어야 하고, 입소자가 많다보니 제대로 보살핌은 받으시는지 항상 걱정이 앞서죠. 노인 인구는 갈수록 늘어나고.. 그래서 나온 게 '가정형 노인 요양원', 이른바 노인 그룹홈입니다.

아파트 단지나 빌라촌 같이 우리가 사는 보통 주택가에 방을 하나 빌려서 요양원을 차리는 겁니다. 규정상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9명까지 수용할 수 있습니다. 노인분들 돌봐드릴 직원은 한 5명 정도 근무하게 되고요. 뭔가에 새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어르신들에겐 이게 그렇게 좋답니다. 내가 살던 집과 비슷한 환경에서 그냥 평소 입던 옷 입고 지낼 수 있지,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을 만나 친구처럼 가족처럼 지낼 수 있지, 게다가 입소인원이 적으니 보살핌도 더 잘 받을수 있지, 무엇보다 거리가 가까우니 자녀들도 자주 찾아올 수 있지. 이래서 이른바 선진국형 복지시설이다 하면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대안처럼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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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노인 요양원이 들어온다.' 평소엔 별 생각 없다가도 정작 이게 내 집 옆에 생긴다고 하면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 곳이 있어서 취재를 갔습니다. 아파트 입구부터 분위기 살벌하더군요. 평온하던 단지 곳곳엔 시뻘건 글씨로 쓴 '노인 요양원 결사 반대'와 같은 현수막이 내걸렸고요, 가정형 요양원이 들어서기로 한 동 앞에선 경비 3명이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노인들이 기습적으로 입소를 할까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랍니다. 심지어 휠체어 못들어가게 막는다고 아파트 현관엔 컨테이너 상자까지 갔다 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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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상 참 보기 안좋았지만 주민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노인 요양시설의 입주를 막는단 의지가 강했습니다. 이유는 이랬습니다. 노인들이 모여있으면 역한 냄새가 나고, 기저귀와 약품같은 쓰레기가 많이 나오고, 무엇보다 가족이다 자원봉사자다 방문객이 너무 많아져 조용하던 아파트가 시끄러워진다 등등의 이유였습니다. 가스총을 찬 용역까지 등장을 해서 요양소 입주를 못하게 감시를 하다보니 요양원을 차리려던 원장은 자비 4억 원을 들여 60평 형 아파트 한 채 사고, 실내에 수천만 원을 들여 스프링클러 시설까지 해 놓고도 문도 못 열고 있었습니다. 시청에 운영 신청까지 했는데도 말이죠. (가정형 요양원은 신청제도입니다.)

새로 문을 열려는 곳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몇년 간 운영 잘 하던 요양시설도 곳곳에서 퇴출되고 있습니다. 빌라에 70평형 대 집을 사 몇 년 간 가정형 요양소를 운영하던 한 원장은 두 달 전 결국 주민의 반대로 시설을 폐쇄했다고 합니다. 입소했던 노인 9명은 뿔뿔이 흩어졌다는데요, 씁쓸해 하는 원장님을 인터뷰하러 갔습니다. 이미 요양원은 텅 비었지만 아직 시설은 그대로 있는 모습이 더 황량해 보이더군요. 그 곳에서 인터뷰를 하러 의자에 앉았는데, 채 5분도 되지 않아 누가 벨을 누르는 겁니다. 방송국 차량이 주차된 것을 보고 주민들이 혹시 노인 시설 다시 들어오는건 아닌가 걱정을 해 관리사무소에 신고를 한 거였습니다.

빼꼼히 연 문 사이로 관리소장이 주민들 민원이 계속 들어와 확인하러 왔다고 하더군요. 취재진이 도착한지 채 5분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죠. 주민들이 노인 요양시설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이 빌라에도 얼마 전까지 요양원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각종 현수막이 걸렸었는데, 그 내용은 참 아팠습니다. '당신은 주민이 싫다는데도 부모님을 여기에 꼭 모시고 싶은가', '여기에 부모님 맡기는 사람도 싫고 장사하는 사람은 더 싫다'. 이런 자극적인 내용의 현수막은 요양원 바로 문 앞에 내걸렸습니다.

요양원을 드나들며 이런 현수막을 본 노인들도, 운영자도, 보호자들도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운영자는 그 마음의 상처를 안고 스스로 폐업을 결정 한 거고요. 이 곳 주민 한 분에게 물었습니다. '노인 인구가 갈수록 느는데 이런 시설이 주택가에 하나 쯤 들어오면 오히려 편하지 않겠느냐'고요. 돌아온 답변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면 누구나 죽는데 뭐하러 멀리 소각장에 가느냐. 차라리 아파트 단지마다 소각장 지어놓지. 돼지고기 먹는데 뭐하러 복잡하게 농장에서 사다 먹느냐, 그냥 단지 안에 움막 짓고 돼지 키워 잡아먹지. 되는게 있고 안되는 게 있다." 이런 답변이었죠. 이 곳에서도 더이상 접점을 찾긴 힘들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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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요, 이 주민들을 무조건 '집단이기주의'로 규정하고 욕할 수 만도 없는 게 현실이더군요. 왜냐하면 가정주택에 차려진 요양원 때문에 실제 피해가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피해를 무조건 참으라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주민들이 호소하는 불편사항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주거를 목적으로 4~5명 적정 인원에 맞게 설계된 가정집에 직원을 포함헤 10여 명이 기거하는 요양원이 들어서게 되면 아무래도 불편이 따를 수 밖에 없단 거죠. 음식을 할 땐 대량으로 요리를 하기 때문에 음식냄새가 진동을 하고, 노인을 위한 풍물놀이 같은 레크리에이션을 할 땐 온 동네가 시끄럽단 겁니다. 무엇보다 각지에서 몰려드는 면회객과 자원봉사자들 때문에 불안감 마저 생긴다는 거였습니다. 충분히 수긍은 됐습니다.

어찌보면 선뜻 누구 한 쪽 편을 들기에 힘든 이 요양원 문제. 한 요양원 원장은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로 가는 과도기에 놓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발생하는 마찰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얘기합니다.

현행 가정형 요양원은 지자체에 신청만 하면 차릴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요양원 한다고 대단한 이윤이 남는 건 아니고, 2008년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의해 입소 노인당 일정금액의 요양보험금을 지급받는 정돕니다. 시설 운영자는 대부분 좋은 취지에서 비영리 목적으로 사업을 하는건데, 문제는 도입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제도이다 보니 운영자들에게 노하우가 없단 겁니다. 기존 주택가에서 노인분들을 돌보려면 주민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을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컨데 치매에 걸린 노인분들의 경우 한밤중에 괴성을 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분들은 면접을 통해 받지를 않는다든가, 음식을 할 땐 딱 정확히 먹을 분량만 요리를 해서 잔반을 최소화 하고, 최소한의 면회자 외엔 자원봉사자 같은 손님은 받지를 않고요, 레크리에이션도 너무 시끄럽지 않은 것으로만 고르고.. 이런 정교한 대책이 필요한데 처음 요양원을 세우는 분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겁니다. 그러면 이 역할을 정부가 해 줘야 합니다. 현행엔 그저 '아파트 단지에 요양원을 설치해도 된다' 정도로 국한된 법규를 '노인들은 휠체어를 타는 분이 많으니 아파트 단지에도 1층에만 설치를 해야 한다'거나 '이러이러한 점은 금지를 해 주민 생활 환경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와 같은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이 요양원과 주민 사이 마찰이 생길 경우 그냥 수수방관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중재를 해 줄 기관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규칙이 만들어져야지만 가정형 노인요양원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겁니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얼마 전 봤던 영화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선진국형 복지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놓인 우리나라가 이 위기를 현명히 넘기지 못하면 정말 그 나라가 우리나라가 될 수도 있겠단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노인과 젊은이가 상생할 수 있는 나라.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요? 모두 고민해봐야 할 문제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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