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청 직원의 말입니다. 식약청이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비판조의 기사가 나가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는 건 라면 스프 발암물질 사건을 뜻합니다. 지난 해 지하수 수질검사를 받지 않고 술을 만든 것으로 드러난 주류업체 142곳의 명단을 요청하러 식약청에 간 것이었는데,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며 마음대로 하라고 하니, 귀를 의심했고,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이 첫 만남을 계기로, 저는 주류 위생을 대하는 식약청의 기본 태도에 대단한 불신을 갖게 됐습니다.
그 불신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는 말에서만 비롯한 것이 아닙니다. 식약청은 그날 이후 수질검사를 받지 않은 142곳 주류업체의 명단을 취재진에게 일절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142곳 전부가 안 되면, 두세 곳이라도 찔끔 알려달라고 부탁했고, 식약청에 다시 찾아갈 테니 열람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제 나름 협상 카드를 여러 장 준비한 것입니다. 그런데 식약청은 단 하나의 카드도 받지 않았습니다. 결국 애주가는 말할 것도 없고, 취재를 시작한 저도 대체 어느 업체가 수질검사를 안 받았다가 식약청에 걸렸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그냥 부어라 마셔라밖에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식약청을 못 믿게 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식약청은 142개 업체 명단을 일절 공개하지 않으면서, 수질검사 미실시가 “불법이 아니라서” 못 알려준다고 했습니다. 지하수 수질검사를 안 해도 불법이 아니다? 좀 이상하죠. 사실 수질검사 안 하면 당연히 법령 위반이고 제재를 받았습니다. 2010년 6월까지요. 이게 원래 국세청 업무였는데, 식약청이 가져왔거든요. 원래 있던 과태료 규정은 국세청이 2010년 7월 바로 없앴습니다. 그럼 식약청이 당연히 수질검사 의무화, 과태료 등 제재 규정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이걸 지금 2년 반째 끌고 있습니다. 즉 식약청이 법령 정비를 끝내지 못했으니, 결과적으로 불법이 아닌 것입니다. 정리하면, ‘식약청 법령 정비 미비 → 2년 반째 법적 공백 → 수질검사 안 해도 불법 아님 → 업체 명단 공개 불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황당한 논리입니다.
작년에 적발된 142곳의 목록은 못 받았지만, 올해 초 적발된 21곳의 목록은 결국 입수했습니다. 식약청 감독 기관인 국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수도권의 대형 막걸리 업체도 있었고, 지방에서 소규모로 운영하는 양조장도 있었습니다. 국산 와인 업체도 있고, 전통주 업체도 있습니다. 식약청은 올해 상반기에 적발된 업체들인데, 지금은 수질검사를 실시해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질검사 성적서를 팩스로 제출받았다고 했습니다. 생산량이 많은 막걸리 업체 두 곳을 골라 현장 취재했고, 지난 주 방송했습니다. 술 못 먹겠다는 내용이 아니라, 식약청과 국세청의 엇박자로 주류 위생 관리 업무에 공백이 생겼다는 내용입니다.
식약청은 식품위생법에 근거해 지하수 수질검사 미실시 업체를 적발하고, 언론에 적발 사실과 업체 명단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언론은 국민 건강이라는 공익을 위해 업체 이름을 실명 보도하고, 애주가들은 수질검사 없이 만든 술을 안 마시고, 해당 업체는 매출이 하락해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고, 너도나도 수질검사를 철저히 실시해 주류업계 전반의 위생 수준이 높아지고, 이런 자연스러운 선순환을 내년에는 볼 수 있을까요? 아직은 식품위생법 개정이라는 첫 단추조차 못 끼웠으니, 지금으로서는 까마득한 일입니다.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