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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근혜와 김종인

[취재파일] 박근혜와 김종인
김종인 새누리당 선대위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김종인 전 청와대수석,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관철시킨 사람.

2011년 말,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 구성 문제를 놓고,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습니다. 다음 해 총선을 앞두고 대거 낙선 사태를 우려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특단의 조치로 박근혜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최고위원단의 줄사퇴와 홍준표 대표의 막판 사퇴로 당 지도부는 모두 물러났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책임지도록 했습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에 파격적인 인사를 영입해, 한나라당이 더 이상 한나라당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박 위원장의 판단이자, 한나라당 당시 의원들의 기대이기도 했습니다.

비상대책위원의 면면이 공개되던 날, 김종인이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당시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멘토로도 이름이 오르내렸던 인물이자, 우리 헌법에 '경제민주화' 개념을 도입했다는 사람. 그래서 김종인 비대위원은 늘 "경제민주화를 몰라~, 아는 사람이 없어~"라면서 자신만이 아는 경제민주화를 언젠가는 보여주겠노라고 공언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제목으로 하는 대선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나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행복추진위원회 산하 17개 추진단을 구성하면서도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은 자기 만큼 경제민주화를 아는 사람을 찾았으나 마땅한 인물이 없어 직접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면서 스스로 겸임을 맡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오늘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김종인 위원장과 박근혜 후보의 '밀당'은 만남 초기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김종인 위원장과 박근혜 후보의 인연은 5년 전 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하고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었습니다. 박 후보는 김종인 전 수석에게 한번 뵙고 싶다고 청해 만남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종인 위원장은 "당신이 이번에 대통령이 안 된 것은 잘 된 것이다. 당신이 98년 정치를 시작했으니 2013년이 되면 딱 정치경력 15년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를 봐라, 1990년에 하원의원 당선되서 2005년에 독일의 첫 여성 총리가 된다, 15년은 해야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박 후보에게는 매우 큰 격려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박 후보는 이후 김종인 전 수석과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김종인 전 수석은 우리 사회에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는 관점을 박 후보에게 강조합니다. 박 후보는 이에 공감했고, 새누리당 비대위원 중 한 명으로 김종인 전 수석을 영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경제민주화 정책을 만들어 내겠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었어도 '경제민주화'라는 다른 방향의 이념적 정책을 소화해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당내에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의원들은 '성장론', '기업 자율성 강화' 쪽에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는 영화관에 간판은 떡하니 걸려 있는데, 내용이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과 이한구 원내대표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양 측의 설전이 이어졌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이한구 대표냐 나냐, 선택하라는 얘기도 꺼냈습니다. 그때마다 '김종인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띄우기 위해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것인가?' 하는 추측이 초반에는 많았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나갈란다'라는 말을 할 듯 말 듯 하면서 '노이즈 마케팅'을 극대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늘 박근혜 후보와 만남이나 전화 통화로 자신의 완강한 입장을 굽혔기 때문입니다. '성장론'과 '경제민주화론'이 팽팽히 맞서면서 긴장감이 유지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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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나고 경선 기간은 휴지기였습니다. 그리고 대선 선대위가 꾸려질 무렵, 김종인 위원장과 박 후보 측의 미묘한 신경전은 다시 시작됐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내심 선대위가 꾸려지면 자신이 명실상부하게 대선 정책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리라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대위 인선안은 김종인 위원장을 서운하게 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국민행복추진위원회'라는 선대위의 정책 파트만을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정책과 전략을 함께 진두지휘하는 자리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박 후보는 자신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공약 위원회'라는 것을 신설합니다. 박 후보의 취지는 '공약은 직접 챙겨서 꼭 지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만, 김종인 위원장은 이 공약위원회의 존재로 인해, '자신이 공약조차 총괄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경제민주화 하러 왔는데 뭐~'라는 말로 김종인 위원장은 활동을 이어갑니다. 경제민주화 공약은 만들어졌고, 박 후보에게 보고가 됐습니다. 그런데, 박 후보 측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김종인 위원장 측은,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 공약에 부정적이라는 해석을 하고, 언론을 통해 미리 알림으로서 박 후보를 밖에서 압박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박 후보 측은 후보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공약을 점검하려 했던 것인데, 기다리던 김종인 위원장이 '바람직하지 않은' 공약 유출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박 후보는 어차피 공약은 후보가 책임을 지는 부분인데, 자신이 최종적으로 결정하지 않은 공약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박 후보가 자신이 제안한 공약들을 다른 분야의 공약과 마찬가지로 생각해 빼고 넣고 하는 부분을 탐탁치 않아 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경제민주화 공약이 발표된 오늘 '어차피 이제 내가 당 회의에 나갈 일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선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결별'은 부담이고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박근혜 후보와 김종인 위원장, 두 사람은 그동안 밀고 당기면서 새누리당의 정체성을 변화시켜왔습니다. 발표된 경제민주화 공약도 살펴 보면, 기존 한나라당의 시각과 매우 많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대에는 주연배우만 있고, 연출자는 표표히 떠난 것 같은 허전함은 어쩔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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