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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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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지 일주일만에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이 일정은 지난 주말 일찌감치 공지됐습니다. 당면한 재정절벽 문제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서 야당인 공화당을 압박하려는 계산이 다분한 기자회견이었죠. 당연히 시작도 재정절벽이었습니다. 오바마는 "기자 여러분들이 나한테 질문할 게 있다는 것을 잘 안다"고 웃음을 자아낸 뒤 "그래도 내가 먼저 할 얘기가 있다"면서 자신의 소신인 '연 소득 25만 달러 이상 부유층 중과세' 정책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기자들의 궁금증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바로 '별들의 불륜 파문'이었죠? 오바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불륜 파문을 통해 국가기밀이 누출됐느냐? 대선 전에 대통령이나 미국인이나 알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직설적인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오바마 역시 예상했던 질문이었던 만큼 대답도 바로 나왔습니다. "지금 이 시점까지는 기밀이 유출됐다는 정보는 없다. 그리고 연방수사국 FBI도 나름대로의 절차가 있는 거니까... 또 조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 내가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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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미국 뉴스전문채널에는 "퍼트레이우스 전 CIA국장과 불륜관계에 있는 브로드웰의 컴퓨터에 기밀정보가 있다"는 기사들이 보도됐습니다. 오바마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사이에 새로운 증거들이 발견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이번 불륜 파문의 불똥이 오바마 쪽으로 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기자들의 질문은 다양하게 이어졌습니다. 시리아 사태와 반군세력들에 대한 오바마의 인식, 이란 핵문제 해결방안, 그리고 이민개혁과 기후변화 등등... 그런데 인상적인 대목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수잔 라이스 유엔주재 미국 대사에 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관 피습 사건과 관련해 공화당의 존 매케인, 그레이함 상원의원이 워터게이트 스타일의 청문회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피습사건을 우발적인 공격이라고 했던 수잔 라이스 유엔주재 미국 대사를 국무장관에 임명되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겠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오바마 대통령은 이 질문이 나오자 가장 공세적인 답변을 했습니다.

"우선 2기 내각 구성문제는 지금 논의 중이다. 그러니 수잔 라이스 대사 얘기만 해보겠다. 라이스는 유엔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왔다. 두 공화당 의원이 누군가를 흠집내고 싶다면 차라리 나를 공격해라. 내가 기꺼이 대응해 주겠다. 라이스는 자신이 받은 정보를 갖고 얘기한 것 뿐이다. 또 벵가지(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관이 있던 곳)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런데 라이스를 그런 식으로 중상모략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들에게 라이스 대사는 손 쉬운 타겟일 거다. 그 다음에는 나일 것이고. 만약 라이스 대사가 국무장관에 적임이라는 판단이 들면 당연히 그녀를 선택할 것이다. 아직 결정난 것은 없다."

이 답변을 지켜보면서 라이스 대사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오바마가 이렇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오바마 입장에서 일을 참 잘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거기에 적(혹은 경쟁자)들이 모질게 공격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어느 나라든 최고 지도자가 특정 공직자를 이렇게 완벽하게 감싸안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오바마 대통령이 오늘 라이스 대사를 옹호한 발언은 대단히 이례적이고 이색적으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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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국무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상황에서 오바마의 선택이 라이스가 될지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듯 싶습니다. 물론 공화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오바마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그레이함 상원의원은 "벵가지 사건에 관해 오바마 대통령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벵가지 사건 이전이나 당시나, 그리고 그 이후나 최고 사령관으로서 오바마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라이스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할 테면 해봐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막을 것이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의 첫 시험대가 재정절벽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라이스 국무장관 내정 여부가 하나 더 추가된 것이죠.

한 시간 남짓한 기자회견이 끝날 무렵 오바마 대통령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자리를 떠나려는 데 한 기자가 마이크 없이 큰 소리로 질문을 하나 더 했습니다. 재정절벽에 관한 질문이었는데 오바마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참 좋은 질문이다. 그렇지만 당신이 소리를 질러가며 질문을 했다고 내가 대답한다면 백악관 기자회견의 끔찍한 전례가 되지 않겠나?" 여유와 유머가 섞인 답변에 기자회견장에는 웃음이 터져 나왔고 오바마 역시 웃음을 머금고 백악관 기자실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백악관 기자회견이 백악관과 기자단 사이에 완벽하게 사전에 조율된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단 질문할 기자들의 명단은 대통령에게 미리 전달됐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나의 질문에 대답하고 나면 메모를 보면서 다음 질문할 기자의 이름을 자신이 불렀습니다. 하지만 질문의 내용은 전적으로 기자의 몫이었습니다. 앞선 기자의 질문을 받아 보강하기도 했고, 완전히 다른 질문을 하기도 하고 말이죠. 질문할 기자의 이름과 순서는 물론 질문 내용까지 사전에 정하는 우리 청와대의 기자회견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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