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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노승열의 좌충우돌 PGA투어 적응기

[취재파일] 노승열의 좌충우돌 PGA투어 적응기
세계 랭킹 1위 로리 맥길로이에 버금가는 장타를 휘두르고, 우승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펼쳐 '참 멋있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 한국 골프의 영건 노승열. 아직 얼굴에 여드름 자욱이 채 가시지 않은 21살의 청년이지만 그의 '골프 내공'은 꽤 깊다. 14살에 최연소 국가대표를 지냈고 16살에 프로로 전향해 아시안투어와 유럽투어에서 외국 선수들과 경쟁했다. 그런 그도 최고수들의 경연장인 미국 PGA투어에서 신인으로 보낸 올해 1년은 쉽지 않았다. 많은 것이 바뀌었고 많은 것을 경험했다. 좌충우돌하며 PGA에 적응한 노승열의 1년을 들어봤다.

캐디의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절감했다. 한 시즌을 뛰면서 캐디를 3번이나 바꾼 사연이 재미있다. 첫 번째 캐디는 2010년 유럽투어 시절 고용했던 영국인으로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 PGA 무대를 같이 시작했다. 둘 다 낯선 무대였다. 선수도 초보, 캐디도 미국 무대는 초보여서 둘 다 정신이 없었다. 더구나 이 캐디는 가끔 영국 집에 들러야 한다며 직장(?)을 비웠고 체력적인 문제까지 노출됐다. 헤어졌다.

두 번째 캐디는 더스틴 존슨이라는 선수의 캐디를 통해 소개 받았다. 더스틴 존슨 캐디의 절친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너무 다혈질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경기가 안 풀리면 티박스에서 혼자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육두문자를 내뱉기 일쑤였다. 주인(?)인 노승열이 무서움을 느낄 정도였다. 같이 동반 플레이하는 선수들도 화들짝 놀라기 일쑤였단다. 그 캐디의 '욱 증상'이 도진 어느 하루는 경기위원이 조용히 노승열에게 다가와 "하루 빨리 캐디를 바꾸는 것이 좋겠어" 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단다. 또 헤어졌다.

워낙 독특한 캐디를 만난 이후여서 다음 캐디의 선택 조건은 실력 보다는 착한 인성이었다. 세 번째 캐디를 만났는데 정말 착하긴 했다. '예스맨'이었다. "조금 길게 치는 것이 나을까?" 라는 질문에 "예스". "바람이 부는데 조금 짧은 게 나을까?"라는 질문에도 대답은 "예스". 이래도 예스, 저래도 예스, 무조건 예스만을 연발했다. 조언을 하고 같이 작전을 논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그냥 '가방만 들고 다니는 사람'에 불과했다. 이 캐디와는 4개 대회를 같이 했는데 이 가운데 세 번이나 컷 탈락하는 쓴맛을 봤다. 어쩔 수 없이 또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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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3월말인데 벌써 세 번의 이별이라니... 불안해졌다. 다음 캐디는 이전에 위창수와 양용은의 골프 가방을 멘 적이 있는 마이크 베스트라는 친구로 위창수의 소개로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세 번의 아픈 경험 끝에 드디어 제 짝을 만났다. 첫 대회인 텍사스오픈에서 공동 13위에 올랐고 이후 17개 대회 연속으로 컷을 통과하며 호흡을 과시했다. 내년에도 출발을 같이 할 계획이다. 10년 넘게 골프를 하면서 선수와 캐디의 오묘한 관계를 모르지 않았지만 노승열은 세 번의 실패를 통해 다시 한 번 캐디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왜 톱스타 옆에는 톱스타 못지 않게 유명한 캐디가 있는지도 알게 됐다.

코치 선임도 쉽지 않았다. 많은 선수가 그렇듯이 노승열에게도 가장 가까운 코치는 아버지였다. 워낙 어릴 적부터 천재성을 보였기에 예전에는 노승열에게 전담 코치의 중요성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노승열은 다른 선수의 샷을 보고 혹은 동영상을 봐가며 아버지와 함께 나름대로 연구하고 분석하며 샷을 교정해보고 다듬는 스타일이었다.

그렇지만 PGA에서는 곧바로 한계를 느꼈고 전담 코치를 물색했다. 이전부터 레슨을 받아오던 세계적인 레슨 프로 부치 하먼 코치가 있긴 했지만 여러 면에서 맞지 않았다. 우선 뭘 배우려고 해도 워낙 바쁜 명사(?)이어서인지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대회장에 와도 필 미켈슨 하고만 얘기를 나누고 노승열에겐 신경도 써주지 않기 일쑤였다. 레슨비를 주머니에 넣고 기다려도 만나기 힘들었다. 레슨 스타일도 토론형이라기 보다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모든 스윙을 고집스럽게 바꾸는 스타일이어서 노승열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이후 인연이 닿은 코치가 타이거 우즈를 슬럼프에서 건져낸 것으로 유명한 션 폴리 코치다. 폴리는 하먼과 달랐다. 선수의 고유 스윙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데이터를 통한 분석으로 고칠 것만을 조금씩 고쳐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노승열은 캐디 마이크 베스트를 만난 것처럼 안도감이 들었고 자신감이 생겼다. 노승열은 주로 드로우샷 구질(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구질)인데 폴리와 함께 하며 페이드샷도(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구질)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됐다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노승열은 하먼에게는 시간당 레슨비를 지불했지만 폴리와는 아예 연간 우리 돈 1억5천만 원 정도로 전담 계약을 맺었다.

캐디도 코치도 여러 차례 바뀌고 집 없이 대회마다 숙소를 옮겨다니면서도 노승열은 페덱스 랭킹 37위, 현재 상금 랭킹 48위로 기대 이상 선전했다. 이제 약 두 달 뒤 1월이 되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바뀌는 것이 또 있다. 우선 매니지먼트사를 바꿀 예정이다. 지난 4년간 국내 모 업체와 같이 했는데 주 무대가 미국으로 바뀌다 보니 현지에 매니저가 나올 수도 없는 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노승열은 세계적인 매니지먼트사인 ISM이나  IMG를 고려하고 있다.

타이틀 스폰서 계약도 올해로 끝이다. 더 나은 타이틀 스폰서를 찾아 안정된 PGA 도전을 이어가기 위해 노승열 측은 국내 기업이나 외국 용품업체 등 다양한 업체들과 만남을 갖고 있다. 댈러스에 아파트를 렌트해 미국에 보금자리도 마련할 계획이다. 올해 1년간 PGA라는 큰 바다에서 허우적대며 노승열은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배웠고 골프가 더 소중해졌다. 무엇보다 자신감을 키운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자평한다.

"이제 내년엔 성적도 생활도 훨씬 더 좋아질 겁니다. 내년엔 제 목표인 맥길로이와 격차도 조금 더 줄어들 거구요, 기자님, 내년 이맘 때엔 PGA 챔피언 자격으로 인터뷰 하시죠..." 큰 무대에서 노는 대한민국 젊은이 노승열의 밝은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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