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중순 어느날,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경기도의 한 동사무소 앞에 동네 주민 100명 정도가 모여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아파트 재건축 문제 때문에 조합원들이 모였고 시공사들이 고용한 용업업체들과 물리적 충돌이 우려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현장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물리적 충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는 늦은 밤이었지만 퇴근한 직장인, 공무원, 장사를 마치고 온 아저씨와 아주머니, 집에서 청소하다 밥하다가 뛰어나온 주부까지 많은 주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은 재건축조합과 시공사를 상대로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도 그 모임을 이어가면서 누군가와 싸우고 있습니다. 누구와 왜 이들이 이렇게 싸우고 있는 걸까.
이들은 동네 이웃들이었습니다. 1040세대로 구성된 주공아파트가 그들의 집이었습니다. 오래된 낡은 아파트였는데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재건축 바람을 타고 재건축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재건축 사업은 부동산 열풍을 타고 진행됐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형건설사도 시공사로 선정됐습니다. 사업은 별 차질 없이 진행됐습니다. 조합원들은 2007년에 살던 집을 비우고 이주까지 마쳤습니다. 이제 내년 초 입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조합원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추가 부담금을 가구당 평균 약 1억 4천만 원씩 부담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추가부담금은 시공사가 시행사에게 추가로 발생한 공사비용을 청구하는 겁니다. 돈을 청구 받은 시행사는 조합원들이 만든 재건축조합입니다. 결국, 조합원들이 시공사가 요구하는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시공사가 요구한 추가비용은 총 1천 400억 원입니다. 1,040가구인 만큼 한 가구당 평균 약 1억 4천만 원정도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대부분 서민인 조합원들에겐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22평에 살던 조합원 A씨는 25평형 새 아파트를 분양받았습니다. 2007년 이주 당시, 시공사는 A씨에게 재건축사업이 끝나면 25평형 새 아파트를 주고, 2억 5천만 원을 더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추가부담금이 생기면서 A씨는 6천 600만 원을 받게 됐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A씨는 받기로 기대했던 금액이 줄었으니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25평에 살던 B씨는 좀 더 넓은 평수인 44평을 분양받기로 했습니다. 2007년 당시 B씨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4천 700만 원이었습니다. 하지만, B씨는 이제 2억 3천만 원을 부담해야 44평 새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주비용을 받았지만, 이 금액이 부족해 대출까지 받았던 B씨에게 2억 3천만 원은 상상 조차할 수 없는 금액입니다. B씨는 지금 연금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이들에겐 평생 피땀 흘린 결과로 남은 건 집 한 채가 전부입니다. 이 집이 재건축이 되면서 이들에게도 꿈이 생겼습니다. 남들처럼 돈도 벌고, 깨끗하고 넓은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꿈을 꿨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금액의 추가부담금이 발생하면서 이 모든 꿈이 날아갈 처지에 놓였습니다. 얼핏 보면 시공사가 나빠 보입니다. 게다가 돈 많은 대기업 계열사이기에 더 악독해 보입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대놓고 시공사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가 없습니다. 냉정하게 따져보겠습니다.
재건축사업의 주체는 시행사입니다. 즉, 재건축조합, 조합원들이 시행사입니다. 다시 말해 주민들이 '사업'의 주체인 겁니다. 이 주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스스로 결정해 '사업'을 한 겁니다. 자신의 집의 지분을 바탕으로 사업을 벌여 시세차익이든 넓은 아파트든 이익을 얻고자 자발적으로 시작한 '사업'입니다. 그런데, 이 사업의 주체들인 주민들이 처음 예상보다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업이 기대처럼 잘 안 됐기 때문입니다.
재건축 사업은 기존에 있던 아파트보다 세대수를 늘려 지은 아파트를 좀 더 비싸게 팔아서 이익을 남겨 조합원과 시공사가 이익을 나눠가지면서 서로의 이익을 실현시키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부동산 경기 침체’라는 강력한 외부변수가 등장했습니다. 시행사에게 공사 의뢰를 받은 시공사는 이미 아파트를 지었는데 부동산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미분양이 속출했습니다. 55평 이상 대형평수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미 돈을 들여 아파트는 다 지었는데 아파트가 팔리지가 않으니 당연히 적자인 사업이 된 겁니다.
그럼 재건축 사업의 적자를 조합원들이 모두 부담해야 하는 걸까. 시공사인 건설사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걸까. 계약구조를 따져봐야 합니다. 이 재건축 단지의 계약 조건은 '도급계약'입니다. 시공사인 건설사는 공사만 하고 나머지 분양을 비롯한 모든 책임은 시행사가 지는 계약입니다. 이런 계약 구조 속에서 건설사는 미분양에 따른 손실이 예상되는 만큼 이미 돈을 들여 공사를 했으니, 손실에 대해서는 시행사가 보전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요구에 시행사는 대의원회의의 합의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시공사가 요구한다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 아니지만, 조합원들과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는 바로 시행사인 재건축조합인 겁니다.
그런데, 조합원들이 재건축조합마저 불신하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은 대형건설사와 자신들의 대표기구인 재건축조합을 상대로 싸우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합원이 상대적 약자임은 확실합니다. 약자는 당연히 보호받아야할 대상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벌인 사업의 결과에 대해서 우리사회가 어디까지 보호해야할 지 혼란스럽습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대기업 건설사가 한 건설사업의 시행사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중소 건설사가 이 대기업건설사와 도급계약을 맺고 공사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사업이 잘 안됐습니다. 미분양이 속출했습니다. 게다가 공사비용도 증가해 공사대금이 예상보다 늘었습니다. 중소 건설사는 손해를 볼 수가 없어서 대기업 건설사를 상대로 자신이 받아야 하는 도급비용, 즉 공사대금을 좀 더 올려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업의 주체인 대기업이 무조건 처음에 약속한 이윤을 보장하라며 중소건설사의 요구를 묵살합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아마도 중소기업 등치는 대기업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손가락질을 받을 것 같은 대기업이 지금의 재건축 조합과 비슷한 입장인 겁니다.
결국, 건설사가 요구한 추가부담금이 적절한지가 핵심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조합원들이 주장하는 부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조합원들은 건설사가 조합원들에게 추가부담금 내역을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확히 공사비가 얼마가 들었고, 미분양이나 조경사업 등에 얼마가 더 들었기 때문에 추가부담금을 얼마를 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계약조건 변경의 시점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조합과 건설사는 확정지분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확정지분계약은 재건축 사업 경험이 많은 건설사가 시공부터 분양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사업을 진행하는 겁니다. 조합원들은 자신의 지분에 따른 이득만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계약조건이 2007년 이주가 모든 끝난 시점에 변경됐다고 조합원들은 주장합니다. 결국, 이미 돌릴 수 없는 벼랑 끝에서 건설사가 마음대로 계약조건을 바꿨다는 주장입니다. 바뀐 계약은 현재의 '도급계약'입니다. 이 도급계약은 시행사인 조합이 모든 사업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공사는 말 그대로 공사만 해주고 도급비용, 공사대금만 받는 계약입니다. 조합원들은 이 계약변경에서 조합원 대의원 총회에서 대형건설사인 대기업의 압력이 있었고, 의결과정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의결과정에서 의결정족수도 제대로 충족시키지 않았다는 겁니다. 또, 조합원들에게 받은 서면동의서도 절차상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미 서면동의서를 돌릴 때는 이주까지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계약조건을 바꾸면서 시공사는 조합원들에게 추가 부담금은 몇 백만 원 정도 늘어나는 것에 그칠 것이란 약속도 했는데 이런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다고 항변합니다. 게다가 조합원들은 핵심 문제인 미분양도 모두 시공사의 책임이라고 주장합니다. 조합원들은 대형평수보다는 소형평수를 많이 짓자고 주장했지만, 시공사가 일방적으로 대형평수를 지었고 지금 그 대형평수들이 분양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시공사는 '안타깝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입장을 전한 담당자는 자신도 기업의 관계자이기에 앞서 서민인 만큼 조합원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수익이 지난해 절반이하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기업의 생존 자체가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조합원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지원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해한다는 말이, 강구한다고 하는 대책이 당장 1억 4천만 원이라는 빚을 떠안아야 하는 서민들에게 어떤 위로가 될까요.
답답합니다. 항의하고 따질만한 대상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부동산 열풍으로 너도 나도 시작한 부동산 투자,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재건축 사업. 그런데, 갑자기 식어버리다 못해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또 어려운 서민들에게만 집중되는 현실이 안타깝고 답답할 뿐입니다. 부동산이 오르거나 토지 보상을 받아서 갑자기 펑펑 돈을 써대며 거들먹거리는 졸부들의 이야기가 묵묵히 열심히 살고 있으면서 한 번의 사업시도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 서민들의 모습과 겹치면서 마음이 더 불편해지는 현실입니다. 평생을 모은 돈, 남편의 목숨 값으로 받은 보험금으로 마련한 전 재산인 집 한 채. 이 집 한 채를 바라보며 살던 서민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이 공사를 함께 한 시공사도 망하겠다고 아우성칩니다. 문제는 2000년대 후반 재건축 열풍으로 여기저기 시작된 재건축 사업이 서서히 공사가 마무리 되면서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재건축 단지가 등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중재에 나선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일반 국민들의 세금으로 펀드라도 만들어 그들을 구제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책임져야 할 부분은 있겠지만, 대외변수가 워낙 강했기에 경기침체와 부동산 경기하락을 정부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도 이 부동산 문제에 끙끙대고 있는 게 눈으로 확연히 보이는 현실입니다. 서민들만 그냥 답답하고 억울하고 화가 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