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왜 그는 구청 옥상에서 투신했을까?

[취재파일] 왜 그는 구청 옥상에서 투신했을까?
가을비 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린 지난 22일 오전, 서울 은평구청에서 60대 남성이 투신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개인의 죽음은 분명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런 아픔과는 달리 기사를 쓰느냐 마느냐 문제는 다릅니다. 철저하게 기사 측면에서 이야기하면 유명인이 아니라면 사연과 주변 상황이 보도 가능성에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예상대로 사연을 취재해 보라는 지시를 받고 구청으로 향했습니다.

구청에서 확인한 정보는 단편적이었습니다. 투신한 사람의 나이와 이름, 가족과는 떨어져 혼자사는 기초생활수급자로 구청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 등 이었습니다. 혹시 구청에 민원하러 왔다가 공무원과 말다툼을 벌이다 순간적으로 목숨을 끊은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담당자는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CCTV를 확인해보니 투신하기 한시간 전 구청에 찾아왔고 아무런 충돌이나 제지 없이 옥상으로 올라간 것이 확인됐습니다. 민원 담당자도 투신한 남자를 본적도 없었고 자주 찾는 민원인도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 남자가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살고 있던 집으로 찾아가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결과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징조였는지 집을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구청에서 주소를 받아 가봤는데 산비탈을 오르고 동네 주변을 돌다가 간신히 발견했습니다. 다세대 주택이었는데 우편물을 통해 투신자 집을 확인하고 들어가봤습니다. 문은 잠겨있었지만 창문을 통해 그의 단출한 살림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웃과 대화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길가던 주민들에게 물어봤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미지

그 순간, 그가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주민센터에 가면 그에 대해 들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마침 주민센터는 그가 살던 집 근처였습니다. 주민센터에서 만난 사회복지 담당자는 대뜸 절대 그럴 분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민센터에도 자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해 반찬 제공 서비스도 받고 있었고, 일주일에 한번 집으로 찾아가는데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투신하기 전날에는 집주인과 통화해 날씨가 추워지고 있으니 방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들어봐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복지 담당자와 좀 더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이씨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해보였지만 그 안에는 깊은 외로움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겁니다. 오래 전부터 가족과 떨어져 산 탓에 전화로 자꾸 찾아와 달라고 졸랐다고 합니다. 정신 상태도 불안정해 갑자기 큰 소리를 내다가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알고보니 그는 두달 동안 정신 불안 증세로 병원 치료까지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제적 어려움도 그를 짓눌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가 살던 집은 보증금 천 만원에 월세 5만원. 보증금은 지원받은 것이었습니다. 지체장애까지 있어 제대로된 일도 못하는 그는, 정부 지원을 받으며 살았고 월 48만원이 수입의 전부였습니다. 경찰이 조사해보니 그는 상해 혐의로 100만원 정도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벌금을 내지 못해 수배까지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를 불안하고 힘들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가 투신할 당시 입고 있던 옷 주머니에 작은 수첩이 발견됐습니다. 일종의 유서 형식의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돈없는 세상 등지고 싶었다는 말, 떨어져 사는 자신들에게 잘 살라는 당부의 말 등 짧은 6줄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경찰과 구청에서 가족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하지만 서류상 배우자였던 사람도, 자식들도 그의 시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젊었을 때 본인이 잘못해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그는 결국 떠나는 길까지 외롭게 됐습니다. 참고로 이런 경우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돼 위탁 업체를 통해 '행정 장례'가 치러진다고 합니다.

취재가 끝났지만 왜 그가 구청까지 찾아가 옥상에서 투신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홧김에 그럴 수도 있고,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구청에 불만을 갖고 일부러 투신 장소를 구청으로 택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등진 사람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지 않고 정확한 이유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경찰도 이번 사건을 단순 변사 처리 했습니다. 타살 혐의점이 없다는 겁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투신했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사연도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라는 판단에 보도는 되지 않았습니다.  

기자 생활 첫 시작하면서 취재한 것이 한강 대교에서 누군가 투신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주식 투자에 실패한 회사원. 당시 한창 금융 위기 국면이어서 외부 상황과 연결돼 소위 말해 기사 거리가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한동안 투신자가 발생하면 사연 찾기에 열중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끔은 기사 가치 판단에만 매몰돼 한 사람의 죽음을 단순하게 보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자살 기사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