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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죽어서도 편치 못한 '황장엽'

수양딸의 '부관참시' 취재기

[취재파일] 죽어서도 편치 못한 '황장엽'
죽은 자의 무덤을 파헤쳐 송장의 목을 베는 형벌을 부관참시라고 합니다.

이미 숨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사건에 개입된 정황은 전혀 없지만, 모든 방송과 신문이 수양딸인 당사자 대신 황 전 비서의 이름을 거론했고, 시청자와 독자들로 하여금 2년 전 숨진 황 전 비서를 좋지 않은 일로 다시 떠올리게 했으니 아비에게 부관참시의 형벌을 받게 한 것과 다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막 자식을 얻어 열심히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새삼 자식 농사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사기 사건을 취재할 때면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사기를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세상에는 참 달콤하고, 그럴듯한 건수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더 믿을 놈이 없는 세상인 거죠. 이번 일도 만약 저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을 때, 돈이 없어서 그렇지 한 번쯤은 고민했음직한 건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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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전 비서의 수양딸 김모 씨가 제안한 사업은 '탈북자 지원기금 조성을 위한 미군과의 공동사업'이었습니다. 미군 측이 탈북자를 돕는 차원에서 미군기지 내 매점 운영, 고철 처리 등 각종 용역사업을 일괄로 자신에게 맡겨왔고, 독점 사업인만큼 큰 수익이 보장된다는 얘기였습니다.

당시에는 황 전 비서도 살아 있었고, 투자자들은 황 전 비서에게 정치철학 강좌를 듣던 사이인지라 큰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수시로 사무실에 드나들고, 각종 행사 때마다 유수의 정치인들이 황 전 비서와 그 수양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회지도층, 재력가들이 대부분이었던 투자자들은 1인당 몇 억에서 몇 십억 원 씩 3년 째 원금 회수조차 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경찰 수사에 그다지 적극 협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도 믿음이 있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그 정도로 여유가 있으신 분들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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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황장엽' 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믿고 그 수양딸에게 선뜻 거액을 맡겼건만 사업은 전혀 진척이 없었습니다. 종종 추진 상황을 채근이라도 할 때면, 오히려 왜 나를 믿지 못하느냐고 김 씨는 역정을 냈고, 미8군 중장의 여비서라는 여성을 등장시켜 안심시키기를 3년여 째, 참 길고 지난한 시간들이 지나간 거죠. 저같은 소시민들은 그 정도의 돈을 떼였다고 생각이 들면, 바로 신고하고 어떻게든 돈을 찾으려 들텐데 이 일이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어찌보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흔 살의 나이지만, 김 씨는 결국 구속됐고, 경찰은 여비서 역할을 한 중년 여성을 쫓고 있는 상황입니다.

구속이 된 뒤에도 김 씨는 여전히 사업이 진행 중이며, 대부분의 사업을 여비서 역할을 한 중년 여성이 추진해 본인은 잘 모른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김 씨가 왜 이런 사기 행각을 벌이려 했는지, 투자금 100억 원을 도대체 어디에 썼는지는 경찰 수사를 더 지켜봐야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등에 업고 얼마든지 좋은 일을 하면서 인생을 마감할 수 있는 나이에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지만, 제3자 입장에서 볼 때는 아무리 믿음직한 사람도 한 번쯤은 의심해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는 그런 씁쓸한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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