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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해 9백 명…모국을 떠나는 아기들

[취재파일] 한해 9백 명…모국을 떠나는 아기들
얼마 전 아주 특별한 행사에 취재를 갔다 왔습니다. 홀트아동복지회가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 서울대공원에서 마련한 가을 나들이였습니다. 홀트아동복지회가 어떤 곳인지는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낳아준 부모와 이런 저런 사연으로 인해 떨어져 고아가 된 아기들의 입양을 전담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입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한 해 2천 명의 아기들이 해외로 입양됐습니다.

행사에는 1백60명의 아기와 아기들의 위탁부모가 참석했습니다. 태어난 지 4개월 된 아주 작은 아기부터 잔디밭 위를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돌 지난 아기들까지 있었습니다. 1백60명의 아기가 돗자리 위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는 모습, 상상만 해도 입가에 엄마미소 아빠미소가 지어집니다.

위탁부모들은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한 달에 50만 원의 활동지원금을 받으면서 아기들이 입양될 때까지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분들입니다. 위탁부모들은 대부분이 아기를 키워 본 경험이 있는 50~60대 중년의 부모들인데 아기들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아시죠? 24시간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위탁부모들은 이런 수고를 자처한 분들입니다.

위탁부모를 통해 아기들의 참 다양한 사연을 들었습니다. 태어난 지 4개월 20일이 지났다는 한 아기는 혼열아였습니다. 엄마가 한국인 아빠는 외국인이라는데, 태어나자마자 무슨 이유였는지 버림받고 이틀 만에 위탁부모 손에 맡겨졌습니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아기의 눈망울이 어찌나 예쁘던지요. 한 아기는 10개월 된 여자아기였는데 머리에 보정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아기 머리가 기형이어서 보정기를 착용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불편한 보정기를 착용하고도 낯도 안 가리고 방긋방긋 웃는 아기가 참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 아기들은 모두 머지않아 해외로 떠나게 됩니다. 해외로 입양되는 것이죠. 보통 두 돌이 조금 못 된 22개월 정도가 되면 거의 다 해외 입양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국내 입양은 안 될까요?" 물었더니 홀트아동복지회 관계자와 위탁부모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보통 국내 입양은 6개월 안에 결정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난 아기는 국내 입양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성별 차이도 크다고 하는데 남자아기와 여자아기 비율이 3:7일 정도로 국내 입양은 여자아기를 선호하는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80년대와 비교하면 국내 입양이 많이 늘었고 입양에 대한 거부감도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국내 입양은 부모가 원하는 조건이 워낙 까다로워서 성사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매년 9백 명 정도 되는 아기들이 해외로 입양되고 있습니다.

2004년 봄 대학생 때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홀트아동복지회 임시보호소에서 하루를 보내며 르포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입양 취재를 하고 돌아와 그 때 쓴 기사가 생각나서 한번 찾아봤습니다. 당시 제가 쓴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현재 보호소에 머물고 있는 아이들은 모두 10명이지만 친부모가 양육을 포기해 버려지는 아이들이 한해 6천여 명에 이른다. 이 중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은 2천3백 명, 국내 입양은 천6백 명 정도로 2천 명 이상의 아이들은 새 부모를 찾지 못해 입양기관이나 시설에 옮겨진다. 특히 장애인의 경우 국내 입양이 거의 불가능해 대부분 해외로 입양가고 있는 실정이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최종 프리젠테이션에서 유창한 연설로 화제로 모았던 나승연 대변인이 지난 주말 타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고백한 경험담이 떠오릅니다. 나 대변인은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외국에서 생활했는데 외국 아이들이 동양인인 나 대변인을 놀리면서 "'한국 입양 아이들은 강아지보다 싸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아기들이 태어난 고국에서 새로운 부모를 만나 사랑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할 수는 없는 걸까요. 행사에서 만난 한 위탁모가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외국으로 떠나보내니까 가슴이 더 아프더라고요. 국내 입양이 많이 돼서 같이 있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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