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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근혜가 '여성 리더십'을 말하기까지

[취재파일] 박근혜가 '여성 리더십'을 말하기까지
박근혜가 변했다. '여성 리더십은 OO 이다'라는 명제 앞에서 변화된 그의 태도에 주목한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오늘(28일)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여성본부 출범식에 참석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야 말로 우리 국민의 민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던질 수 있는 어머니와 같은 희생과 강한 여성 리더십이 필요한 때입니다." "글로벌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부드러움과 강력한 리더십, 부패와 권력 다툼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국민만 생각하고 동행하는 여성 대통령 시대로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여성인 박근혜 후보라면, 자연히 여러 차례 말했을 것 같은 이야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는 그동안 여성의 리더십을 화두로 던지는 것을 꺼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박근혜 후보에게 '여성'은 '핸디캡'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했는지 생각하지 않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박 후보를 둘러싼 남성들은 '여성'임을 약점으로 꼬집어 내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난 6월 21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상태였던 이재오 의원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외신기자클럽 초청 회견을 했다. 이때 이 의원은  '정치발전을 위해 여성의 리더십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분단 현실을 체험하지 않고 국방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리더십을 갖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나라가 통일돼 평화로워진 후라면 몰라도 아직 시기가 이르다"라고 답했다. 또 "흔히 여성적 리더십이라는 부드러움과 섬세함의 리더십은 내가 말한 인간적 리더십, 사람 향기 나는 리더십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다음 날, 박근혜 후보는 "21세기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나요?"라고 이재오 의원에게 응수했다. 그 이상의 긴 말은 없었다. 시대 착오적이라는 답이었다. 그리고 당내 경선을 앞두고 대선 출마선언을 한 7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은 '여성 리더십'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 때 박 후보는 "여성이기 때문에 좋은 점도 많겠죠. 시대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유형보다 무형자신이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때 리더십에 플러스 알파가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답했다.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박 후보는 리더십을 남성적 항목에 놓고 여기에 여성의 특징을 첨가하는 '플러스 알파'적 여성 리더십의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재오 의원의 발언을 깎아내리면서도 이재오 의원이 생각하는 여성 리더십의 범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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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여성이다.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를 출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이 없고 아들이 없고 딸이 없으며 시어머니도 없고 시아버지도 없고 시동생도 시누이도 동서도 도련님도 없다.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때는 이런 점이 상대 후보 측으로 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뭘 알겠느냐' 하는 거였다. 자식도 길러보지 않았으면서 보육을 교육을 어떻게 알겠느냐는 식의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생각해보시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여성의 조건은 아니다. 그리고 국방의 의무를 못하건 안하건 하지 않은 남성도 많다. 그러나 박 후보에게 여성이라는 것은 남성 중심의 정치판에서 '약자'로 보이게 하는 조건이었던 데다가, 선거판에서는 교묘하게 공격을 받는 조건이었다.

박 후보는 그 속에서 '여성'이라는 말만 들어도 자신을 얕잡아 보는 것 같아 불쾌했을 것이다. 그래서 누가 '여성 리더십'에 대해 물어도 '저 사람 나를 여성으로 한정지어 보는구나'하고 부정적인 질문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박 후보의 주변 인물들도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경우를 종종 보았다. '여자가 여자를 더 안 찍는다'라면서 여성 유권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이 인식 안에는 '여성들도 여성을 못 미더워 한다'는 대한민국에 오래된 남성중심적 사고, 그러나 이제는 젊은 층으로부터 자연스런 시간 변화에 따라 흘러가버린 사고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본인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는 이번 18대 대선을 앞두고 박 후보는 변했다. 남성형 명사 같았던 '리더십'에 플러스 알파로 '여성성'을 첨가했던 관점에서 벗어나 '여성 리더십'을 '희생과 강인함'으로 다시 규정했다. 반가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박 후보는 유모차도 끌었다. 유모차를 끄는 모습은 익숙치 않아 보였다. 그렇지만 익숙치 않음을 드러내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이다.

박 후보는 당 선대위 여성본부 출범식에서 여성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모두가 힘들다고 손사래 치며 몸을 사리고 나서지 않을 때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힘든 일 마다 않고 몸을 던지는 게 우리 여성이고 어머니들"이라고 말했다. 또 "집권하면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우리 여성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확실하게 힘이 돼드릴 것"이라면서 "여성을 정부 요직에 중용하고 육아문제 등 여성 정책을 국가 정책의 핵심을 두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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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후보의 오늘 여성에 대한 메시지의 강도가 여느 때와 다르다는 것은 야당의 반응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측 여성위원회는 이날 저녁 즉각 성명 보도자료를 냈다. 내용은 "박근혜 후보가 국회의원 15년 동안 여성관련 법안을 단 한건도 대표 발의한 적이 없다"는 비판이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은 또 "새누리당은 여성 권익을 위해 아무 것도 한 적이 없는 후보가 여성 대표라고 현혹하고 있다"며 "박 후보는 여성 대표가 아니고 오히려 변호사 시절 부터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울고 함께 싸워 온 문 후보가 '여성의 친구'이자 '친여성적 후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의 친구'와 '여성'이 맞붙은 형국이 된 것인가? 나는 이 논쟁이 단지 여성 유권자의 표를 겨냥한 급해맞은 언사가 아니라 남녀 모두를 위한, 우리가 다니는 학교, 우리가 다니는 직장, 우리가 속한 가정을 위한 논쟁으로 서서히 퍼져나가길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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