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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중도상환수수료 철회 그 이후…

[취재파일] 중도상환수수료 철회 그 이후…
지난해 6월 29일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을 발표했다. ‘변동금리-거치기간 후 일시상환’ 위주의 대출구조를 ‘고정금리-비거치식 분할상환’으로 전환하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전체 대출의 5% 수준인 고정금리 대출의 비중을 2016년까지 3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기존 대출자가 변동금리에서 고정금리로 전환하면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주기로 했다.

그 해 9월 소자보호 모범규준(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고 중도상환수수료 면제가 실시됐다. 모범규준은 금융당국과 시중은행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 자율 협약의 성격을 띠었지만 소비자에 대한 당국과 은행들의 약속이었다.

당시만 해도 안팎의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비싼 이자를 물면서 굳이 고정금리로 갈아탈 수요가 얼마나 되겠는가?”라는 회의론이 우세했던 것이다. 변동금리에서 고정금리로 갈아탈 때 중도상환수수료를 받지 않더라도 은행이 감수해야 할 이익의 감소는 크지 않을 듯 보였다. 일종의 립서비스로 치부됐던 것이다.

올해 3월 적격대출이라는 게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적격대출은 은행이 판매한 고정금리 대출을 주택금융공사가 보증을 붙여 유동화하는 상품이다. 공기업의 보증이 붙어 낮은 금리로 외부자금 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고정금리 수준도 크게 낮아졌다.

처음 적격대출은 시작한 건 SC와 씨티 등 외국계 은행이었다. 국내 은행들은 상황을 지켜봤다. 일반적인 주택대출 증가세가 확 꺾인 상황에서 금리가 4% 초반까지 낮아진(10년 만기 비거치식 기준) 이 상품에만 소비자들이 몰렸다. 웬만한 신용등급의 일반 소비자에게 적용되는 변동금리보다 오히려 낮았기 때문이다. 특히 변동금리 대출을 받고 있던 사람들이 대거 이 적격대출로 갈아탔다. 그러자 국내 은행들도 하나 둘 이 상품 판매 경쟁에 뛰어들었다. 국민은행이 적격대출을 취급하기 시작한 건 8월부터였다.

지난 3월 일부 외국계 은행에서 시작한 적격대출은 9월까지 7개월만에 7조 6,216억 원이 판매됐다. 8~9월에만 4조 2,677억 원이 취급됐는데 이 가운데 40.5%인 1조 7,298억 원은 국민은행이 담당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적격대출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넓은 주택대출 고객 저변과 영업망을 내세워 공격적으로 영업을 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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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민은행은 변동금리에서 적격대출로 갈아타는 사람들에게 꼬박꼬박 중도상환수수료를 받았다. “어차피 대출채권을 주택금융공사에 넘기고 사실상 수수료만 받는 상품이기 때문에 타행 대출로 간주했다”는 게 국민은행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다른 은행들은 달랐다. 변동금리에서 고정금리로 갈아탈 때 중도상환수수료를 받지 않겠다는 약속(‘모범규준’)을 이 적격대출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적격대출이 대출채권을 주택금융공사에 넘길지라도 은행 자체의 고정금리 상품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국민은행이 변동금리 대출을 적격대출로 전환하는데 중도상환수수료를 물린 것은 정부와 금융감독원과 은행들이 한 약속(‘모범규준’)을 위반한 것이었다. 이 문제를 기사를 통해 지적하자 금융감독원도 "분명한 모범규준 위반"이라며 시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바로 다음 날 국민은행은 적격대출에 대해서도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했다. 그동안의 수수료 부과가 부당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정작 문제는 그 이후였다. 변동금리에서 적격대출로 갈아타면서 그동안 중도상환수수료를 냈던 국민은행 고객들이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면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충분히 예견됐던 문제였다. 국민은행의 중도상환수수료 부과가 “명백한 약속 위반이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에 소홀함이 없도록 지도하겠다”고 했던 금융감독원도 이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소비자들이 이미 냈던 부당한 수수료를 국민은행이 돌려주라고 강제할 근거나 수단이 없다”는 이유였다. 소비자보호 모범규준은 법이나 규정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정부(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과 시중은행들이 ‘변동금리에서 고정금리로 갈아타면 중도상환수수료를 안 받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런데 해석 상의 착오든 은근슬쩍이든 ‘안 받겠다’던 수수료를 국민은행은 받았다. 그리고 수수료를 받은 행위가 ‘약속 위반이고 소비자 보호와 정부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금감원은 판단했다. 그 판단에 승복해 국민은행은 중도상환수수료 부과를 철회했다. 그런데 이미 받은 수수료는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이해가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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