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이인제 대표를 처음 마주한 것은 지난 2007년이다. 당시 이 대표는 충청권 의원 5명이 주축이 된 국민중심당 소속이었다. 당 자체가 지역정당 성격이 강해 중앙무대에서의 활동은 미미했다. 특히나 2007년은 대선이 있던 해라 당사를 드나드는 기자들도 거의 없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 의원은 그해 5월 국민중심당을 탈당해 민주당에 입당했다. (열린우리당 창당파가 빠져나간 뒤 새천년민주당이 축소 재편되면서 생긴 민주당이었다.) 세가 작긴 했지만 민주당도 그해 대선 후보 경선을 실시했다. 다들 박상천 대표의 권유로 경선에 나선 조순형 의원의 낙승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예상 외였다.
이 의원은 대선 후보로 완주했지만 득표수는 미미했다. 하지만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합당 등 대선 이후 이어진 정계개편 과정에서 이인제 의원은 대선 후보로서 나름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렇게 민주당에 정착하는가 싶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인제 의원은 다시 당을 떠났다. (공천 탈락이 이유였던 걸로 기억난다.)
무소속으로 다시 18대 국회 입성에 성공한 이인제 의원은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자유선진당으로 자리를 둥지를 옮겼다. 이회창 대표와의 갖은 악연에도 불구하고 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한 석이 아쉬웠던 선진당은 이 의원을 전격 영입했다.
하지만 이회창 대표가 물러난 뒤 선진당은 19대 총선에서 대패했다. 18석이던 의석 수는 5석으로 줄었고 지역 기반인 충청권의 맹주 자리를 타당에 넘겨줘야 했다.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심대평 대표가 물러났다. 지도부 공백사태를 막기 위해 최다선 의원인 이인제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전당대회를 거쳐 이인제 의원이 당 대표에 올랐다. 맨손에서 대선후보로, 또 맨손에서 당 대표로... 불사조라는 말이 그냥 생긴 별명은 아닌 셈이다.
새누리당은 국민대통합 차원에서 선진당과의 합당을 결정했지만 이 대표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워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당 대표이니 예우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선대위 고위직에 앉혀 박 후보 옆에 세웠다가 자칫 후보에게 낡은 이미지만 덧씌워 표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다.
이인제 의원은 이번 합당으로 10번째 당적을 바꾸게 됐다. 또 지난 97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을 탈당한 지 15년만에 '친정'으로 복귀하게 됐다. 지난 93년 최연소 노동부 장관, 95년 경기도지사를 거쳐, 신한국당 대선 경선 후보, 민주당 대선 후보, 선진통일당 대표를 거치면서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은 이 대표가 이번 대선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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