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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진보 진영 후보 첫 동시 출마…'동지'에서 '적'으로

누가 완주? 누가 단일화 참여?

[취재파일] 진보 진영 후보 첫 동시 출마…'동지'에서 '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박빙 대결을 펼치는 가운데,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진보 진영에서 돌발 변수가 생겼습니다. 대선 사상 처음으로 진보 진영 후보 2명이 동시에 출마한 겁니다. 15, 16, 17대 대선에서는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출사표를 던졌고, 14대 대선에는 재야 운동권의 대부로 불린 백기완 통일문제 연구소장이 출마했었죠.

지난 21일 심상정, 이정희 두 여성 후보간 맞대결의 막이 올랐습니다. 심상정 후보는 당일 진보정의당 창당대회에서 찬반 투표를 거쳐 89.3%의 지지율로 후보로 선출됐습니다. 혼자 당내 후보로 출마했기 때문에 찬반 투표를 했던 거죠.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지난 19일 이미 당 후보로 확정됐습니다. 이 후보는 64.9%를 얻어 35.1%에 그친 민병렬 전 대표 권한 대행을 여유있게 따돌렸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심상정 후보가 선출된 날에 공교롭게도 대선 출정식을 열었습니다. 진보 진영의 대표성을 놓고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겁니다.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의혹'이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구당권파와 신당권파로 나뉘어 정면 충돌한 뒤 두 후보는 딴 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두 후보 모두 사정은 좋지 않아 보이네요.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두 후보 모두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영길 후보가 16대 대선에서 3.89%, 17대 대선에서 3.01%의 득표율을 얻은 것과 비교하면, 출마 직후이긴 하지만 이정희, 심상정 두 후보를 합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진보 진영 유권자들의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로 추정됩니다.

그러면, 이정희, 심상정 후보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텐데, 왜 대선 출사표를 던졌을까요? 먼저 심상정 후보는 이번 대선을 통해 진보 진영의 대표성을 인정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시급한 목표는 진보정의당이란 생소한 신당의 이름을 선거 운동을 하면서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간 단일화 논의가 시작되면 바로 참여하겠다는 전략도 있습니다. 이정희 후보는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 앉지 못하고 심 후보 자신만 앉게 되기를 내심 바랄 수도 있겠죠.

이정희 후보는 통합진보당을 정상화하고 당내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분당 사태로 대중적 신뢰를 잃은 당의 모습을 재건하기 위한 차원이겠죠. 이른바 '종북 딱지'를 떼는 것도 출마의 목표일 겁니다. 이정희 후보는 수락연설을 통해 "정치혁신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북공 공작과 종북 공세를 한국 정치에서 완전히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야권 단일화에 대한 두 진보 정치 아이콘들의 입장은 어떨까요? 두 후보 모두 '완주'가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나 단일화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심상정 후보는 상대적으로 야권 연대에 적극적입니다. 심 후보는 지난 22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어떤 경우에도 야권 연대는 꼭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측도 연대와 협력 의사를 밝히며 화답했어요.

문재인 후보 측 추미애 국민통합위 공동위원장과 안철수 후보 측 송호창 공동선대본부장이 진보정의당 창당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했습니다. 따라서 심 후보는 자신과 당이 내 건 조건만 수용되면 중도 사퇴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진보정의당 관계자는 "심 후보가 독일식 비례대표 명부제 도입과 같은 정치 혁신을 요구하고, 이런 의제들이 수용되면 중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같은 당 소속인 노회찬 의원이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완주하는 바람에 당시 한나라당에 어부지리를 안겨 줬다는 비판도 부담"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정희 후보는 야권 연대에 합류할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습니다. 이 후보는 지난 21일 수락연설에서 "새누리당을 퇴출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다 모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돌아 온 것은 싸늘한 반응이었습니다. 민주통합당 박용진 대변인은 "통합진보당이 지금 해야 할 것은 대선출마라는 고집불통의 태도가 아니라, 정권교체를 위한 사심없는 복무"라고 비판했습니다. 안철수 후보 측은 공식 입장을 내지는 않았지만, 부정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안 후보가 출마 선언 전인 지난 5월 부산대학교 강연에서 통합진보당 사태를 언급했는데요, 현재 통합진보당 소속인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향해 "유독 문제라고 안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 측이 이 후보에게 먼저 손을 내밀 가능성은 현재로서 대단히 낮습니다.
이 후보와의 연대가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이 후보나 통합진보당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완주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완주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진보진영을 대표했던 두 여성 후보들이 서로 다른 처지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됐습니다. 심상정, 이정희 후보 모두 과거 민주노동당 후보, 그러니까 진보 진영 후보가 대선에 미쳤던 영향력을 발휘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두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될지-물론, 단순히 득표율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 중 어느 한 당이 진보 진영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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