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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류 장사' 병원 꼼수 맞다

환자들 "보험금 타도 남는 게 없다"

[취재파일] '서류 장사' 병원 꼼수 맞다
“선배, ‘서류 장사’ 기사 관련해서 의사라며 자꾸 항의 전화가 와서 업무를 못 보겠어요.ㅠ”

보도국 후배가 전화로 제게 항의합니다. 이메일 역시 얼굴 없는 항의글로 도배돼 있습니다. 하나씩, 한 문장씩 자세히 읽어봅니다. 의사선생님답게 점잖게 지적하는 글이 많지만 예의 없는 글도 있습니다. 일일이 다 응대해드릴 능력이 없어 ‘취재파일’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병원 ‘꼼수’...도 넘은 서류 장사>는 환자의 시선을 따라간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일부 의사들의 주장처럼 ‘환자 편’만 든 건 아닙니다. 2010년 5월 ‘보험금 청구 간소화 방안’을 내놓은 금융감독원을 취재했고, 주무 부서인 보건복지부 담당자도 만나봤습니다. 아, ‘의사 편’인 대한의사협회의 주장도 실었죠. 취재를 마치고 보니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환자(보험사기를 치려는 환자 말고요)들에겐 부당할 수도 있겠다’는 모호함에서 ‘부당하다’는 명료함이 도출됐습니다.

의사들 반발의 주요한 요지는 이렇습니다. 첫째, 진단서 등 ‘병명’이 들어가는 서류는 의사들의 전문적 지식이 농축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저작권 등 그에 상응하는 가치가 인정돼야 한다. 둘째, 그 서류에는 의사의 이름과 면허 번호가 들어가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공짜로 남발할 수 없다. 셋째, 서류 발급 비용을 환자가 낼 게 아니라 서류가 필요한 보험사가 부담해야 한다, 는 것이죠.

첫 번째 주장부터 살펴보죠. 의사들의 전문성, 당연히 인정합니다. 모든 진료 과정 하나하나에 대부분의 의사들은 혼신을 기울이는 것도 알고 있고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환자들은 모든 진료 과정 즉, 의사가 병명을 진단한 뒤부터 그에 맞는 치료와 처방을 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비용을 부담합니다. 의사들의 치료 과정 하나하나에 이미 대가가 지불되는 셈이지요. 그런데도 그 결과물을 서류로 받아보려면 추가 비용을 내라, 이렇게 말하는 건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백 번 양보해서 필요 최소한의 발급 비용(인쇄지, 잉크 등 행정 비용)은 받을 수 있다 치더라도 1만 원~2만 원까지는 아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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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주장도 그렇습니다. 항의 메일을 보낸 의사 대부분이 ‘건축 설계사에게도 건축을 맡기면 건축 비용과 별도로 도면 제작비까지 낸다’고 말씀들 하십니다. 예를 드셨으니 저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대학교에서 발급하는 졸업 · 성적 증명서 얘기입니다. 대학 교수들도 의사 못지않은 전문가입니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전문 지식을 강의하는 대신 학기당 한 번의 수업료를 받지요. 그것으로 끝입니다. 학기 내내 학생 하나하나의 리포트와 수업 태도를 진단하고 마지막에 성적을 내는 것까지가 교수들의 업무입니다. 수업료 따로, 성적 산출 비용 따로 받지 않습니다. 또 교수들의 전문적 지식의 결과물인 성적증명서와 졸업 증명서는 학생들의 취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적 서류입니다. 그만큼 교수와 대학이 책임을 져야 할 중요한 서류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증명서 발급 비용 역시 더욱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진단서 같은 서류 발급 비용과 비교하면 상당히 ‘저렴’한 게 사실입니다.

하나 더 예를 들어보지요. 역시 사회에서 전문가로 불리는 변호사 얘기입니다. 변호사는 의뢰인으로부터 수임료를 받습니다. 자신의 전문성을 쟁송에 발휘하는 대가이지요. 그 과정에서 모든 법률적 지식을 동원해 변론서를 작성하는데 변호사 역시 변론서 작성 비용 따로, 수임료 따로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계사가 도면을 작성하는 일도 공짜가 아닌데’라는 주장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설계사가 며칠을 걸려 제작한 도면은 그 자체가 전문성이 농축된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그걸 받아든 고객이 맘에 안 들어 퇴짜를 놨다고 칩시다. 사용하지 않을 도면이니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야 될까요?

세 번째 주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환자는 매달 보험사에 보험료를 내고 있습니다. 보장 받을 일이 있으면 개인정보에 관한 부분만 위임한 뒤 통보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험금 지급에 필요한 입퇴원 확인서와 진단서, 초진 기록부 등등 제반 서류들을 떼는 데 드는 비용은 당연히 보험사에서 지출해야 할 비용이지요. 이것을 환자에게 떠넘긴 보험사들 역시 ‘꼼수’를 부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동의는 여기까지입니다. 환자든 보험사든 각종 병원 서류를 발급받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의사들의 프레임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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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비 따로, 서류 발급 비용 따로’라는 공식이 왜 불변의 진리가 됐는지 따져보면 보건복지부 시행령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진단서 등 각종 서류를 발급하면 돈을 받아도 된다고 명시했기 때문입니다. 법에 있으니까 의사들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해왔을 겁니다. 그러나 역지사지로 환자들도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렸고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위해 진료비라는 의무를 부담한 거죠. 그 법에는 의사의 권리만 있고 환자의 권리는 실종된 것 같습니다.

시청자분들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병원 서류 발급 비용은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부분으로 환자가 모두 부담해야 하는 돈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보건복지부로선 예산을 지출할 필요가 없는 돈이고, 병원으로서는 바로바로 수입으로 직결되는 돈이라는 얘기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도 좋을 수 있지만 처남이나 처제는 안 좋을 수 있다는 게 저만 드는 생각일까요?

보건복지부는 전국 병원에서 진단서 같은 서류가 얼마나 발급되는지 통계조차 갖고 있지 않습니다. 각 병원에 현황을 물어보니 ‘영업 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이라면 이제라도 서류 발급 건수와 그 비용을 떳떳하게 공개해 국민을 납득시키는 게 맞는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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