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요즘 학생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분명 한글인데, 특별히 어려운 단어도 없는데 왜 잘 이해가 안 될까요. '생선'이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의미 에서 '생선'은 고등어나 조기와 같은 어류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생선'이라는 단어가 학생들 사이에서는 '생일 선물'의 줄임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생일 선물로 구두를 사달라는 이야기였던 겁니다.
이런 줄임말은 그나마 듣고나면 이해는 됩니다. 그런데,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도 있습 니다.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 중에 '에바'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저도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 한참 고민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도저히 감조차 잡히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에게 답을 들었습니다. '에바'라는 단어는 '오바한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였습니다. 솔직히 듣고도 왜 '에바'가 '오버한다'라는 뜻인지 이해가 안 돼서 다시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사용하고 있는 학생들도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친구들이 쓰니까 따라 쓴다는 겁니다. 그나마 영어단어 'over'의 발음이 변형된 게 아닌지 추측할 뿐입니다.
'썸타요'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취재 중에 여중생들에게 처음 들었습니다. 이 단어 3글자를 정확히 메모하기 위해서 5번 정도 물어본 거 같습니다. "썸 뭐라고?" "타요? 이게 맞어?" 너무 생소한 나머지 한글인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썸타요'는 '남녀 사이에서 서로 호감을 가지고 만나는 단계' 정도로 뜻을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남녀 사이에 특별한 감정을 흔히 영어단어 'somethig'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something'에 학생들이 '있다, 하다'의 뜻으로 사용하는 '타다'가 합쳐지진 후 다시 말이 줄어들어 '섬타요'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겁니다. 이외에도 한국교총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의 은어를 모아놓은 사전까지 만들 정도로 학생들만이 사용하는, 그들만의 언어가 이미 고착화된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기성세대들은 이런 학생들의 언어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학생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길거리에서 기성세대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대부분 기성세대들은 "모르겠다",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같은 시대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학생들과 기성세대는 소통조차 안 되는 서로 너무 다른 집단이었습니다. 물론 학생들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기성세대의 문화로 편승되면 이 간극은 줄어들 겁니다. 하지만, 기성세대와 단절돼 그들만의 문화 속에만 갇혀 있는 학생들은 올바른 '안내'가 필요한 미완성의 존재입니다.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라며 쉽게 넘길 수 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변화가 필요합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사안의 먼저 원인부터 따져봐야겠습니다. 학생들의 언어 문제에 대해 교육전문가들은 빠르게 해체되는 가정 환경과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소외된 학생들이 가지는 심리적 사회적 고립과 상실감의 결과라고 분석합 니다. 대가족에서 소가족으로 가족의 형태가 바뀌는 수준을 넘어서 최근에는 가정의 파괴가 급속히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높은 이혼율로 인해 편부모 가정이 느는 것은 물론 정상적인 가정에서도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아이들은 가정에서 밖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정에서 내몰린 아이들을 학교에서도 안아 주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성적에 따른 줄세우기와 입시위주의 교육이 팽배한 학교에서도 상당수의 아이들은 낙오자가 됩니다. 결국 학생들끼리 그들만의 정체감과 안정감을 찾기 위해 강한 유대감으로 뭉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유대감이 너무 강하다 보니, 그리고 고립감과 상실감이 바탕에 깔린 유대감으로 학생들의 집단이 이뤄지다 보니, 다른 집단에 대해 배타적이고 공격적으로 형성되고 있습니다. 자연히 그들만이 사용하는 언어도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언어들로 채워지게 되고 좀 더 자극적인 언어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몇가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전문가들은 학생들을 둘러싸고 있는 미디어 환경과 인터넷도 학생들의 언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지적합니다. 여과되지 않은 언어들이 미디어 속에 난무합니다. 그런 미디어에 학생들은 빠져 있습니다. 결국 학생들은 여과되지 않은 언어의 홍수 속에 빠져 있습니다. 지상파 방송의 오락프로그램에서는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줄임말과 비속어들이 웃음이라는 포장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방송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성인 영화들이 인터넷을 통해 학생들에게 그대로 노출됩니다. 비속어를 사용하는 사람, 욕설을 사용하는 사람, 이 모두들이 학생들이 선망하는 유명 연예인들입니다. 학생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스폰지처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들의 말은 유행으로 발전해 퍼져나갑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비속어나 줄임말들이 잘못이라고 생각조차 못합니다.
스마트폰 사용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학생들은 얼굴을 보고 하는 대화보다 스마트폰 문자를 통한 대화가 더 익숙한 세대입니다. 그런데 이 문자메시지는 구어를 문자로 입력하는 행위입니다. 정해 진 시간에 빨리 메시지를 전달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줄임말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줄임말이 평상시 언어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익명이 보장된 인터넷에서의 대화도 학생들의 언어에 영향을 미치는 큰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익명이라는 방패 속에서 인터넷에서 그들의 언어는 자유를 넘어선 방종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학생들이 인터넷 게임을 하면서 채팅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친구 들과의 대화는 거의 전부가 욕설과 비속어였습니다. 심지어 게임 상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이런 습관은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더욱이 게임에 집중한 그들의 입에서는 문자로 쓴 그 언어들이 그대로 입으로 나왔습니다. 교육전문가들은 그동안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지켜왔던 전통적인 말에 대한 규범이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지적하는 이유입니다.
개선할 방법은 있을까. 오랫 동안 확산되어 온 학생들의 언어파괴 현상을 어떻게 개선할 방법은 있는 걸까. 교육전문가들은 가장 주의해야할 것이 학생들에게 잘못이라고 나무라며 강제로 고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은어는 어떤 집단 안에서 독특하게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은어가 무조건 나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겁니다. 정체성과 내적유대감을 높이는 사회화 과정으로서의 순기능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학생들의 은어속에 한글이 파괴된 비속어와 욕설, 줄임말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이 비속어와 욕설, 줄임말을 줄이기 위해서 '읽기와 쓰기'교육 강화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많았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한 교육전문가가 들려준 한 실험 사례입니다. 한 사물을 놓고 두 집단에게 2분 간 자유롭게 그 사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두 집단은 읽기와 쓰기 교육이 잘 이뤄진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입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읽기와 쓰기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집단에서는 2분 간 이야기를 이어나기지 못했고, 그 순간 욕설과 비속어가 등장했다는 겁니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리속에서 나오는 겁니다. 결국 머리에 올바른 언어가 있어야 그 언어가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올바른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선 읽기와 쓰기 교육이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가정의 언어교육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가정에서 부모와의 많은 사랑이 담긴 대화가 학생들의 언어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직접적인 대화가 아니라도 부모간의 대화, 다른 가족간의 대화 또한 학생들의 언어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라는 걸 유념해야 할 겁니다.
학생들의 무너진 언어생활은 어쩌면 우리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소통의 통로가 막힌 학생들이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상실감을 느끼면서 만들어낸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내뱉는 '외계어'는 기성세대에게 외치는 '아우성'은 아닐까요. 자신들을 좀 봐달라는, 자신들에게 따듯한 관심과 사랑을 달라는 갓난아이의 울음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