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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헌재로 넘어간 '투표시간 연장 논의'

비정규직 근로자 투표권 제약 실재...해법 찾아야

[취재파일] 헌재로 넘어간 '투표시간 연장 논의'
◇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투표시간 연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투표 시간을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제한한 현행 공직선거법 155조 1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자영업자 등 시민 100명이 청구인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오후 6시까지로 투표시간이 제한돼 투표할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투표 시간을 늘려달라는 게 요구의 골자입니다. 지난달 민주당이 투표 시간 연장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여야 합의가 무산돼 정치권의 논의가 더 진전이 없자 민변과 시민들이 직접 나선 것입니다.

민주당과 노동계, 민변 등 진보단체들은 투표시간 연장에 적극 동의하고 찬성하는 반면 새누리당은 반대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투표시간 연장이 비정규직 근로자 등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있는 유권자의 참여를 이끌어내 투표율을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반면 새누리당은 투개표 관리 등 비용 소모는 많은 반면 투표율 상승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다며 반대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겉으로 내건 공식 반응이야 이렇지만 투표율이 높아지면 특정 정당에 유리하거나 불리하다는 점이 감안됐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입니다.

◇ 투표 참여 제약받는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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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한국정치학회에 의뢰해 진행한 연구결과는 투표 시간 연장 논의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독립 기관인 선관위가 발주했고, 중립 성향의 학자들이 연구한 것이니 정파적 시각에서도 자유롭습니다.

연구 결과를 보면, 2008년 총선 때 투표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사람들(전체 840명 중 256명) 가운데 참여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응답이 64.1%에 달했습니다. 귀찮아서 또는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어서 투표를 하지 않은 자발적 기권과 달리, 투표를 할 의향이 있지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외부 사정으로 못한 사람이 그 정도라는 겁니다.

또 이들을 상대로 투표하지 못한 이유를 물더니 고용 계약상 근무 시간 중 외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투표할 수 없었다는 응답이 42.7%로 가장 많았고, 투표를 위해 자리를 비울 경우 임금이 감액되기 때문에 못했다는 응답이 26.8%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2010년 지방선거 때도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즉 열악한 고용 조건으로 인해 투표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연구에서는 또 선거일 또는 투표에 참여하는 시간을 유급 휴무 또는 휴업으로 인정받는 노동자가 22.7%에 불과해, 무려 77.3%의 노동자가 투표 참여에 유무형의 제약을 받고 있는 사실도 파악됐습니다. 고용 형태에 따라 헌법이 보장한 선거권에 제약이 있다는 점을 방증한 것입니다.

오늘 헌법 소원 현장에 동행한 2명의 비정규직, 일용직 근로자들의 이야기는 앞에 설명한 설문이 터무니없지 않다는 걸 뒷받침합니다.

홍00(호텔 비정규직 근로자)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실 수 있는 분들이 있는가하면 저희같이 새벽에 나와서 교대근무를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또한 직장과 집이 가깝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고 집이 멀어지면 퇴근 후에 집에 돌아가 투표를 해야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선거일이라고 딱히 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희는 투표를 못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서00(건설 일용 근로자)
"저희는 새벽 5시 반에 나갑니다. 그리고 끝나는 시간이 저녁 6시입니다. 또 바쁠 때에는 9시까지 연장근무를 하게 됩니다. 그것 때문에 저희는 투표를 하고 싶어도, 좋아하는 후보가 나와도 투표를 못합니다."

◇ 해외 사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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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에 따르면 해외 주요 선진국들은 대부분 우리보다 투표 시간이 깁니다. 영국은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15시간을, 미국은 주에 따라 밤 9시까지 투표를 하기도 합니다. 일본은 오전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스웨덴은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투표를 합니다. 프랑스와 독일, 호주는 오전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10시간으로 우리보다 짧지만, 우리처럼 평일이 아닌 일요일(호주는 토요일)에 투표를 진행해 투표권에서 소외받는 이들이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번 논란을 두고 정가에서는 주판알을 굴리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투표율이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만큼 정략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투표시간 연장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과 관련된 사안인만큼, 여야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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