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생수 박스 안 가져갔어. 증거를 대~”
초등학교 반장선거 회의록 같죠? 반장선거를 폄하했나요? 초등학생들이 화낼 수도 있겠네요, 사실 의정부시의회 속기록입니다. 나이 지긋하신 시의원 분들이, 생수 한 박스의 행방을 둘러싸고 진지하게 논쟁하십니다. 속기록에서 일부만 편집한 것 아니냐? 아닙니다. 저도 생수 얘기 좀 하다가 그만둘 줄 알았습니다. 근데 이분들 대단했습니다. 7월부터 넉 달간 이러고 있습니다. 의정부시의회 파행은 8할이 생수 때문입니다. 그래도 의심스럽다면, 시의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속기록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생수 논쟁은 이렇게 터졌습니다.
“(시의회 의장 후보는) 부의장이라는 권력으로 자신의 농사를 거들어 준 사람들을 먹여야 한다며, 시의회 공적 물품인 생수나 차를 박스로 집어가는 것이 이미 의원으로서 자질 상실을 하였다고 하고요.”
이종화 시의원(의장 후보, 7월 17일)
“생수, 커피 좋습니다. 제가 생수는 한두 개 씩 갖고 나가서 먹습니다. 이제 비로소 말씀드리지만, 박스로 갖고 나간 거 CCTV에 찍혀 있다? 증거를 대세요.”
“지금도 식수는 여름날에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한두 개 씩 갖고 나갑니다. 그걸 박스로 갖고 나가서 내가 농사짓는데 농업인들한테 일꾼들한테 갖다 줬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물을 갖고 나가지 말고 먹지 말고, 이 안에서 먹고, 이 안에서 타먹고, 이래야 되는데. (중략) 전 분명히 나중에 법의 심판을 받겠습니다.”
이종화 시의원(의장 후보, 8월 17일)
“의원님들 생수 한 두병 가지고 가시는 건 다 갖고 가시잖아요. 산에 올라가면서 생수 한 두병 안 갖고 올라갔습니까? 우리 조 의원님 갖고 올라가셨죠? 똑같아요. 한 병씩 생수 먹는 걸 가지고 뭐 박스로 가져갔다, 이건 나중에 법에서 다 밝혀질 테니까”
의정부시의회가 생수만큼 집착한 것이 의회 ‘녹음기’입니다.
조남혁 시의원(8월 16일)
“후보가 도덕적 문제가 있으면 검증해야죠. 그 자료가 여기 있지 않습니까. 5년 전에 가져간 녹음기 29만9천 원짜리 가져간 거 왜 29만9천 원짜리 정품을 안 사옵니까? 8만 원짜리, 왜 남이 쓰던 것을 사와요? 확실히 나타난 것 아닙니까? 왜 후보 검증을 못합니까.”
이종화 시의원(의장 후보, 8월 16일)
“녹음기도 똑같은 얘기예요. 제가 분명히 직원한테 빌려갔어요. 직원한테 빌려갔다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안경집처럼 조그마합니다. 나가서 좌담회 참석했다가 그 다 다음 날 잃어버렸어요. 들고 다니다 보니까 어디서 빠졌어요. 누가 훔쳐갔다는 얘기는 전 안합니다. 보니까 없어 졌어요. 내가 분실했구나, 해서 바로 올라가서 분실신고를 했습니다.”
생수에 녹음기에, 이번엔 ‘등산화’까지 가세했습니다.이종화 시의원(의장 후보, 8월 16일)
“제가 뭐가 모자라서 등산화를 지금 받은 등산화 한 번도 신지 않고 곰팡이가 피었어요. 신발이 없어서 두 켤레 가지고 갑니까? 그거 가져다 보여 달라면 보여드릴게요. 2년 전 새 등산화가 곰팡이가 피어 있어요.”
“(시의회) 등산화 두 켤레는 안 갖고 왔습니다. 한 켤레 갖고 왔기에 신어봐서 안 맞아서 분명히 직원한테 그 직원들 지금 한 명도 남아 있는 사람 없습니다. 바로 2년 전이에요. 등산화 나왔기에 안 맞아서 적으니까 좀 바꿔다오. 내가 통보만 했습니다. 2년 전 일이기 때문에 통보를 누가 받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시의원들의 현란한 말솜씨. 동료 의원도 혀를 내두릅니다.
안정자 시의원(8월 16일)
“7월 5일부터 지금까지 쭉 앞에 나와서 이야기 하시는 말씀 들으면서 정말 정치인들은 말을 잘하는 구나, 이제까지 들으면서 어쩌면 한결 같이 녹음기도 아니고 두 달여 동안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은 내용을 지금까지 이 시민들 앞에서 어쩌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렇게 똑같은 얘기들을 계속들 주고받는지”
의정부시의회가 1년에 회의할 수 있는 날은 총 90일입니다. 임시회는 50일인데, 전반기에 25일을 썼고, 7월 이후 후반기에 23일을 썼습니다. 달랑 이틀 남았습니다. 정례회가 40일인데, 후반기에 19일을 허비하고 21일 남았습니다. 임시회와 정례회를 합치면 7월 이후 후반기에 총 42일간 회의를 연 셈인데, 딱 그 날만큼 생수와 녹음기, 등산화를 놓고 치고 박고 싸운 것입니다. 내일(10일) 오후 2시에도 회의가 소집돼 있는데, 또 뭘 놓고 싸울지 궁금합니다.
의정부시의회가 놀면서, 내년도 예산 심사는 졸속 처리할 게 뻔해졌습니다. 국회 국정감사에 해당하는, 시의회 행정사무감사도 대충 대충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정부시가 사업을 제대로 하는지, 낭비한 예산은 없는지, 감시해야 하는 분들이 이러고 있습니다. 의정부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2차 추가경정예산안도 표류 상태입니다. 2차 추경에는 노인과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예산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게 통과가 안 되면 12월부터 복지비 지급을 못합니다. 조례를 만들거나, 고쳐야 하는 시 사업도 전면 중단됐습니다. 시의회는 지자체와 함께 굴러가는 거대한 바퀴인데, 이게 안 굴러갑니다. 지자체 혼자 굴러가면서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성남시의회도 만만치 않습니다. 속기록 살펴봤더니, 다행히 시민 속 터지게 하는 생수 말싸움은 안 했습니다. 의정부시의회보다 나은 게 딱 한 가지입니다. 시의회 의장은 뽑았다는 것. 그거 말고 한 일은? 역시 없습니다. 논의한 안건도 없고, 처리한 안건도 없습니다. 의정부시의회는 7월부터 1번 안건(의장 선출)만 갖고 지지고 볶는 중인데, 성남시의회는 그나마 1번 안건은 처리했습니다. 대신 생수 말싸움 말고, 전형적인 정치 싸움만 신나게 하고 있습니다.
정쟁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이곳 의장은 원래 새누리당 소속이었는데, 민주통합당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뒤, 새누리당을 탈당해 지금은 무소속입니다. 새누리당은 화나겠죠. “정치적 야합으로 당선된 의장은 물러나라, 민주통합당은 사과하라!” 이러면서 날을 샜습니다. 등원 거부한지 오래 됐습니다. 여야가 물밑 조율이나 하고 회의를 열 것이지, 조율도 없이 개회했다 산회했다, 개회했다 산회했다, 무한 반복했습니다. 회기만 계속 까먹었습니다. 성남시의회 1년 회기는 100일. 7월 이후 후반기에만 정례회 50일 가운데 39일을 허비했고, 임시회는 24일을 낭비했습니다. 후반기에 63일 회의한 건데, 생수 말싸움 따위도 없고, 회의만 열었다 닫았다 반복해서, 속기록이 아주 단출합니다.
성남시는 특히 중소상인 보호를 위한 조례 개정이 시급한데, 개정은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성남시는 지난 4월부터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했고, 서울처럼 대형마트로부터 소송을 당한 뒤 9월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성남시는 서울의 각 지자체처럼, 조례를 조금씩 손봐서 정부의 입법 취지를 살릴 계획인데, 조례를 통과시켜야 할 시의회가 놀고 있어서 도리가 없습니다. 재래시장 상인들은 왜 대형마트 영업제한이 풀린 뒤 아무런 조치가 없는지, 영문도 모르고 있습니다.
의정부도 성남도, 파행의 뿌리는 시의회 의장과 상임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감투싸움입니다. 매달 1~2백만 원의 업무추진비, 번듯한 관용 차량, 전속 운전기사까지. 그러니까, 연봉 수천만 원을 놓고 벌이는 전투입니다. 아무래도 기초 의회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가 약해서 그런지, 마음 놓고 신나게 싸움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이라도 하면서 싸우면, 누구도 삿대질을 못하겠죠. 시의원들은 이렇게 의회를 넉 달간 마비시켜놓고, 매달 3백만 원 넘게 나오는 의정비는 꼬박꼬박 챙겨가고 있습니다. 시의원님들, 벌써 1,200여만 원을 ‘날로’ 먹은 셈입니다. 남은 회기에 모여서 뭘 하는지,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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