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적 목적을 이루겠다며 민간의 경쟁을 부추겼다가 황당한 상황을 초래한 유명한 사례가 있습니다. 베트남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시절 하노이에 쥐가 창궐했었나 봅니다. 골머리를 앓던 프랑스인들이 꾀를 냈습니다. 하노이 주민들에게 쥐 가죽을 가져오면 한 마리당 일정한 금액을 주기로 한 것이죠. 프랑스인들은 이런 당근을 내놓으면 하노이 주민들이 너도나도 쥐를 잡아 씨를 말려주리라 기대했겠죠.
그런데 전혀 엉뚱한 상황이 전개됐습니다. 하노이 시민들이 쥐를 잡기는 커녕 쥐를 사육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힘들여 쥐를 잡기 위해 쫓아다니느니 가둬놓고 키워서 대량으로 가죽을 만드는 것이 더 큰 돈벌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인들은 쥐를 줄이기는 커녕 쥐를 더 늘려놓은 정반대의 결과만 얻었을 뿐입니다.
저는 우리 교육당국이 특성화고 뿐아니라 대학까지 평가틀에 취업률을 매우 중요하게 반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하노이의 쥐잡기 사례가 떠올랐습니다. 인위적으로 유도한 경쟁이 변태적인 행동을 낳게 됐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서울의 한 대학은 1년에 한번씩 각 학과의 조교를 모두 그해 학부 졸업생으로 교체합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당해 년도 졸업생의 취업률만 따지기 때문이죠.
또다른 대학의 교수들은 대학 취업률 조사 기간이 다가오면 너도나도 평소 친분이 있는 기업에 자신의 졸업생을 더도덜도 말고 딱 4개월만 채용해달라고 조릅니다. 교과부의 취업률 조사가 한 해의 일정 기간만 이뤄지고 그 후의 상황은 신경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원도의 한 대학은 올해 한 때 학교 중앙에 있는 전광판을 통해 각 학과의 취업률 상황을 실시간 중계했습니다. 담당 교수들에게 취업률을 올리도록 자극하기 위해서죠. 심지어는 취업률 올리기에 스트레스를 받던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이런 일들이 정상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나요?
특성화고는 전문 기능인을 양성해 취업을 시키는 것이 목적이니까 그나마 취업률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대학은요? 우리 고등교육 기본법에는 대학의 설립 목적을 '건전한 교양을 갖춘 민주시민 양성'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학에 대한 평가는 이런 본질적인 목적을 잘 수행하고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취업률이라는 수치로 손쉽게 정량 평가를 하려 할 게 아니라 연구와 교육이라는 대학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정성 평가해야 합목적적인 것 아닌가요?
교육과학기술부는 취업률을 부풀리는 각 학교의 꼼수에 대해 더욱 감사를 철저히 하고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효과가 있겠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대학들이 금방 더 정교하고 적발하기 힘든 차원 높은 꼼수를 선보일 것입니다. 아니면 취업률이 높지 않은 학과, 예를들어 사범대나 예술 관련 학과들, 기초 학문 분야 학과들은 없애고 취업이 잘되는 학과의 학생수만 늘릴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모두 교과부가 의도한, 또는 바라는 상황인가요?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교육 당국은 우리 특성화고가, 대학이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잘 실현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평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긴급 제안을 합니다. 공적인 교육기관은 공공을 위한 봉사의 도구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거나 이용하는 교육법인부터 정리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어떨까요. 취업률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보다 훨씬 교육 주체나 국민들로부터 높은 수준의 동의를 구할 수 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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