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하루 18시간 운전합니다."

버스기사 건강과 시민 안전 위협하는 버스 운전기사 장시간 노동

유덕기 기자 dkyu@sbs.co.kr

작성 2012.10.08 08:32 수정 2012.10.08 08:44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하루 18시간 운전합니다."
2초였을까. 아니, 3초였을까. 5초도 안 됐을 시간. 10년 넘게 버스 운전을 한 58살 이 씨가 운전대에서 졸은 것은 잠시였습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은 이 씨의 정신이 가까스로 돌아왔습니다. 본능적으로 뒤돌아본 버스 안. 오랜만에 동두천과 이웃한 연천으로 향하던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 할 것 없이 20명 가까운 승객과 그들의 가방, 지갑, 휴대폰이 버스 안에서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몸 어딘가 부러지고 금이 갔을 때 나올만한 신음소리가 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아스라진 버스 앞 유리가 이 씨의 팔을 찔러 피가 흐르는 것, 그리고 몸 곳곳에 피멍이 들고 부은 것을 깨달은 건 한참 뒤였습니다.

지난 7월, 경기도 동두천의 한 한적한 지방도로에서 시내버스 한 대가 또 다른 시내버스 한 대의 뒤를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승객 15명이 골절 등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경찰은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났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사고원인 조사 중이라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주 전인 6월 말, 비슷한 사고가 한 건 더 있었습니다. 경기도 김포의 한 시내버스가 출근길 승객을 태운 상태에서 옆으로 쓰러져 버려 승객 10여명이 다쳤습니다. 역시 운전기사의 졸음이 원인이었습니다.

거리는 멀리 떨어져있지만 같은 '경기도 지역'. 사표를 내고 회사를 그만 둬 만날 길이 없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동두천 버스 사고 기사인 이 씨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냈습니다. 아직 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이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씨는 졸음운전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경기도 지역 버스 근무가 서울과 다르다 말했습니다.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근무를 한다는 것, 새벽 4시쯤 일어나 차고지에 가 새벽 5시 첫차를 몰고 나가고 마지막 12시 반까지 차를 몬다는 것. 그리고 어떤 회사는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변명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근무 형태가 이렇다보니 경기지역 버스기사들은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어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미지
한국노총, 그리고 민주노총. 양대 노총의 버스 관련 실무자들에 따르면, 서울 등 광역시 정규직 버스기사들은 하루 8시간씩 두 개 조가 일합니다. 그러나 그 외 지역은 경기도 같은 '격일제' 근무를 합니다.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근무형태인데 경우에 따라 2일 이상 일하고 하루 쉬는 경우도 생긴다 합니다. 피로 누적과 졸음으로 인해 버스기사 개인의 질병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사고도 빈발한다 합니다. 추석 같은 명절에 서너 시간 계속 운전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저와 서진호 영상취재기자는 경기도 평택지역의 한 운수회사 버스기사인 김상현 씨의 하루를 뒤 ?았습니다. 김 기사님 역시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 근무를 합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차량 점검을 하고, 6시 반쯤부터 첫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김 씨가 운전하는  버스는 평택과 오산을 오갑니다. 버스기사들은 한차례 노선 왕복을 하는 걸 '1회전'이라 하는데, 김씨의 노선은 왕복 1회전에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립니다. 이렇게 6회전을 합니다. 다시 말해 18시간 정도 운전을 하는 겁니다.
이미지1회, 2회, 3회...회전과 회전 사이. 실제 교통신호나 정체, 버스 정류장 개수에 비해 무리인 1회전 3시간 내외 운행시간을 사고 없이 맞추려 하니, 버스기사의 피로는 급증합니다. 화장실 갈 시간, 점심을 먹을 시간도 제대로 없었습니다. 김 씨의 경우 뛰어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운전석에 앉아 집에서 싸온 김밥으로 아침 겸 점심을 대신했습니다.

그렇게 6회전을 채워갈수록 김 씨의 얼굴은 피로로 가득해 졌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목소리 역시 피로로 무겁고 낮아졌습니다. 새벽 12시 반이 되어서야 버스를 차고지에 주차하고 집으로 향하는 김 씨의 어깨는 아침에 비해 훨씬 쳐져있었습니다. 피로가 누적되다 보니 많은 격일제 버스기사들이 고질적인 병에 시달립니다. 만성피로에 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환은 기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장시간 운전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건 당연합니다. 영국 의료진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연속 운전 18시간이면 혈중알코올 0.1%를 넘는 상태와 비슷하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하루도 아니고 한 달, 일 년..이렇게 피로가 누적되면 사고가 증가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실제 한국노총이 지난 2008년 시행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격일제 근무 버스기사의 사고 발생률은 서울처럼 하루 2개조가 근무하는 근무형태 버스기사의 사고 발생률에 비해 2배입니다. 노동자의 건강뿐만 아니라 교통 환경과 시민안전을 위협하는 겁니다. 일본, 영국,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법으로 버스 운전기사처럼 운행근로를 하는 근로자의 하루 운행 근무시간을 10시간 안쪽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격일제 근무형태는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양대 노총은 그 이유로 '버스회사의 이익 때문'이라 주장합니다. 격일제로 버스 운행을 하면 하루 2교대제 보다 필요한 기사수가 확연히 줄어듭니다. 즉, 4대보험이나 경조사비 등의 고정비용이 확연히 줄어드는 겁니다. 한국노총의 자료에 따르면 하루 2교대제 운영회사는 평균적으로 버스 1대에 2.3명의 운전기사를 고용하고, 격일제 운영 회사는 평균 버스 1대당 1.8명의 기사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버스 100대를 갖고 있는 운수회사라 치면, 서울 같은 1일 2교대제는 격일제 근로형태에 비해 80명은 더 고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납니다.

7개 광역시도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격일제로 버스 운행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버스 노동계에 따르면 서울같은 2교대제가 이뤄지는 광역시도라 하더라도 암암리에, 비정규직 운전기사는 더 많은 시간 노동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지방의 경우 심한 경우 나흘 일하고 하루 쉬는 근무형태를 지닌 곳도 있다합니다. 경기도 뿐만 아니라, 격일제로 운영되고 있는 지역의 버스기사 근무제도 개선이 빨리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