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여권인 대통합민주신당에 출입하고 있었는데 대선 판도가 한나라당으로 기울었던 탓인지 답변이 생각 만큼 신통치 않았다. 몇몇 의원들은 '요즘 세상에 추석 민심 같은 게 어딨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인터넷과 SNS, 휴대전화가 발달해 시골 구석구석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받아보는 마당에 가족끼리 추석에 모여 앉았다고 무슨 특별한 얘기가 있겠냐고 되물었다. '듣고보니 그도 그렇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 여론, '정보' 아닌 '의견' 교환의 산물
우연치 않게 올해 추석을 앞두고 비슷한 아이템의 제작을 맡게 됐다. 추석 민심이 올 대선의 첫번째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게 골자였다. 5년 전 생각없이 묻고 다녔던 것과 달리 이것 저것 자료를 취합하다보니 추석을 기점으로 상당한 지지율 변화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뷰차 만난 전문가의 설명은 이랬다. "추석은 사람들이 이동하기 때문에 말이 섞일 가능성이 높다. 말이 섞인다는 것은 수도권의 민심과 지방의 민심이 섞이는 것이고 세대들 간의 의견이 섞이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여론이 형성될 수 있어 정치권에서 중요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신수단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냥 피상적으로 정보를 받아보는 것과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세대가 저마다 습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감대'(여론을 형성하는 작은 구성단위라고 할 수 있다.)를 만들어가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였다.
특히나 그것이 자기의 생각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가족간의 의견 교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또 하나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는 '소통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전화나 인터넷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 10년 전 '추석 민심'의 힘
이번 대선은 흔히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무소속 정몽준 후보가 맞붙었던 10년 전 대선에 비유된다. 대세론을 등에 업은 보수정당 후보와 추격에 나선 진보정당 후보, 그리고 강력한 제3의 후보의 출현이 이번 대선 구도와 닮아 있다.
추석 민심의 힘은 당시 대선에서 잘 드러났다. 추석을 한달 여앞둔 지난 2002년 8월 8일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32.2%로 1위를 달렸다. 민주당 노무현와 무소속 정몽준 후보는 각각 25.1%와 21.2%로 뒤를 쫓고 있었다.
하지만 추석 직후 9월 23일~24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31.6%, 무소속 정몽준 31.4%, 민주당 노무현 20.6%로, 3위 였던 무소속 정몽준 후보가 0.2%p차 2위로 급상승했다. 물론 추석 민심이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 모두 이번 추석 밥상에 올릴 이야기 거리를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적어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토록 미뤄왔던 과거사 문제를 정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말들이 당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특히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비슷한 경험을 했던 박근혜 후보로서는 과거사 문제를 간과하기 힘들었으리라는 분석이 있다.
17대 대선을 1년 여 앞둔 지난 2006년 7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터진 안보 위기는 여성인 박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했고, 추석 연휴를 거치면서 북한 관련 안보 문제가 이듬해 대선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박 후보가 지지율 경쟁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밀리는 한 원인이 됐다.
하지만 추석 민심 경쟁에서 더욱 피말리는 경쟁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앞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다. 이번 추석을 기점으로 두 후보 가운데 누가 치고 나오느냐에 따라 후보 단일화의 향배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안철수 후보가 지지율 경쟁에서 박근혜 후보를 확실히 따돌린다면 단일화 논의는 안 후보쪽으로 급격히 기울 수 있다. 반면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를 따라잡거나 격차를 줄인다면 반대로 문 후보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이번 추석 연휴 동안 지지율 경쟁에서 이기는 쪽이 단일화 논의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양측 모두 지지부진할 경우 자칫 단일화 논의가 답보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지지율은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변화의 기울기가 더 중요한 때도 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초반 경쟁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며칠 안남은 추석 연휴 이후,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후보 가운데 누가 웃게 되느냐에 따라 안갯속 대선 판도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추석 민심 대전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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