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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면접 보러갔다가 커피 한 잔 마셨는데…

[취재파일] 면접 보러갔다가 커피 한 잔 마셨는데…
"말이 어눌해진다거나 나도 모르게 의식적으로 똑바로 앉아야지 한다거나. 그냥 기억이 없어요. 기억이 싹둑싹둑 자른 듯이...."

한 20대 여성의 하소연입니다. 이 여성에게 대체 무슨일이 일어난 걸까?

지난달 2일 오후 5시 30분쯤, 이 여성은 경기도 분당에 있는 한 커피전문점에서 40대 남성을 만났습니다. 일자리를 구하던 여성은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놓았고, 이를 보고 남성이 비서직이 있다며 면접을 보자고 연락을 한 겁니다. 이 남성은 매우 친절했습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커피를 좋아하냐며 물어보더니, 여성을 만나기 전에 미리 주문해서 커피까지 가지고 올라가는 친철함을 보였습니다. 여성은 아무생각없이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이상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졸리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이 어눌해지고... 

40대 남성이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에게 이상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장 상사가 잠자리를 원하면 어떻게 할 건지, 성관계 경험은 얼마나 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은 정신이 계속 없었지만, 순간 핸드폰 녹음기를 켰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짧게 녹음돼 있었습니다. 그들의 대화는 일반 비서직을 구하는 내용이 아니였습니다. 술집 여성 이야기가 나오고 잠자리 이야기가 난무했습니다.

"나를 도와달라 이거지. 그러면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주겠다는 거지. 내가 줄테니까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나를 도와주면 나는 줄 수 있다는 거야. 그냥 건당 얼마씩 해서 잠자리를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도와줘."

이상한 분위기인 줄 알면서도 여성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자신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너무 정신이 없고 힘이 풀리고 순간순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상태로 여성은 남성과 함께 저녁까지 먹고 이 자리에서 폭탄주도 두 잔 마셨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어느새 남성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까지 올라갔습니다. 남성의 오피스텔에서 나온 시간은 밤 10시 쯤. 이 여성에게 남성과 함께한 약 5시간은 그냥 꿈이었습니다. 중간중간 기억이 나지 않는, 여성의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5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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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녀가 처음 만났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 가보겠습니다. 친철하게도 커피를 주문해 올라갔던 남성. 이 남성은 커피를 주문하고선 이 커피에 수면제를 탔습니다. 졸피뎀 성분이 들어있는 수면제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돼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구입할 수 있는 수면제였습니다. 물론 정상적으로 복용하면 치료에 도움이 되는 문제가 없는 수면제이지만, 이 남성은 정상복용량의 10배를 탔습니다. 이 정도면 순간 기억이 없어질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남성은 여성의 커피에 수면제를 정상 복용량보다 많이 타 놓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여성을 유린한 겁니다.

이 남성은 43살 장모 씨.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다 망하고 이혼한 상태로 혼자 살고 있는 장 씨는 이런 방법으로 지금까지 모두 3명의 젊은 여성 구직자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그런데, 경찰 조사 결과 장 씨가 그동안 연락한 여성 구직자가 무려 200명이 넘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가 최대 200명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장씨가 사용한 수면제를 과다복용하면 기억이 순간 없어지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무슨 짓을 당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경찰은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진술을 하고 있다며, 여성구직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장 씨의 여죄를 추궁한다는 계획입니다.

그렇다면 장 씨는 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여성 구직자들과 연락을 할 수 있었을까. 장 씨는 구직사이트에 기업회원으로 등록이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직자들의 신상정보를 자유롭게 확인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던 겁니다. 구직자들이 올려놓은 이력서들은 장 씨에게는 너무나 좋은 먹이감들이었습니다.

이런 피해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아쉽게도 피해자들이 주의를 하는 방법 이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구직사이트에서는 기업회원들을 스크린을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리고 경찰도 의사의 처방을 받고 구입한 수면제에 대한 사용을 일일이 관리감독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이런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개개인이 주의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겁니다. 모두들 어쩔 수 없다고 하니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교육수준으로 돌아가야할 형국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건네주는 음식은 함부로 먹지 마세요."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는 어떤 사람인지 잘 확인하고 만나세요."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의학전문의는 이렇게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의약품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난무하고 있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약물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현실을 걱정했습니다. 유치원 교육 수준의 "조심하세요"가 아닌, 점차 만연화되고 일상화 되고 있는 약물로 인한 범죄를 막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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