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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물리적 거세, 신체형의 '호화로움'

‘처벌’ 보다 ‘철학’이 더 가벼운 이유

[취재파일] 물리적 거세, 신체형의 '호화로움'
아동 성폭행 사건 취재를 위해 전라남도 나주에 다녀온 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 여파는 여전합니다. 논란은 예상대로 ‘처벌 강화’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정치권도 발빠르게 대책을 내놨습니다. ‘물리적 거세법’까지 발의됐습니다. 성범죄자들을 평생 남자 구실 못하게 하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성욕(性慾)

물리적 거세법은 그 시작부터가 ‘신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잇따르는 성범죄의 원인은 범죄자들의 과도한 성욕 때문이고, 그 성욕을 원천 봉쇄하면 성범죄도 줄 것이며, 결국 고환을 적출하는 거세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겁니다.

성범죄의 원인이 성욕이라는 전제,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꼭 성욕, 생물학적인 성 호르몬 때문만으로 볼 수 없다는 논란도 있습니다. 군대를 예로 들어 볼까요.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성들이 모여 있는 군대, 왜 그 안에서 성폭력이 자주 발생하는 걸까요. 성욕을 주체할 수 없어서 다른 남자들에게 해소하는 걸까요. 이게 맞는다면, 가해자들은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 성향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를 보면 대부분의 군대내 성폭력은 이성애자에 의해 발생됐습니다. 성욕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는 겁니다.

학계에서는 통제와 구속, 억압이 만연한 공동체의 분위기를 지적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위계를 폭력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어긋난 심리’가 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지배하고 싶은 그런 삐뚤어진 지배욕을 상대방의 수치심을 자극해 푼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한창 논란이 됐던 학교 폭력 문제도 그렇습니다.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의 옷을 벗기고 수치심을 주는 건 학생들 사이의 위계놀이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물리적 거세를 한 성범죄자, 성욕은 없어도 성범죄를 또 저지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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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處罰)

심지어 ‘사형제 부활’에 대한 논의까지 나왔습니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방증입니다. 공감은 갑니다. 나주 현장에서도 충분히 느꼈습니다. 잠을 자던 아이가 이불 째 끌려나왔던 집, 아이에게 몹쓸 짓을 했던 다리 밑, 5시간 넘게 쓰러져 있던 도로…. 그 현장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가 끓었습니다.

이런 감정적인 분노는 바로 처벌 강화에 대한 담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수많은 언론에서 논거로 들었던 게 중국과 이란의 사례입니다. 이들 국가들은 아동 성범죄자들은 무조건 사형이라며, 우리도 강도 높은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이란 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등 대부분의 중동 국가는 성범죄에 대해 무척 강력한 입장을 취합니다. 인터넷에는 인권 후진국도 처벌이 이렇게 강한데, 왜 한국은 그렇게 미온적이냐는 글로 넘쳐납니다.

하지만 처벌이 강한 중동 국가나 중국에서 아동성폭력이 단죄됐을까요. 유감스럽게도 이들 국가의 아동 성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세계보건기구가 2005년 미성년자를 포함한 이란 여성을 상대로 한 통계조사를 참고하면, 응답자의 42.2%가 남성들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아동 성폭력이 은밀하게,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피해자도 죄인 취급을 받는 문화 때문에 신고조차 어렵다고 합니다. 처벌이 강하다고 해서 아동 성폭력이 근절되는 건 아닌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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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人權)

물론 극악무도한 성범죄자들, 특히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한 성범죄는 강력히 처벌해야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일부 중동 국가의 사례를 보면 처벌이 강하다고 해서 성폭력이 줄지는 않는 듯 싶습니다. 성폭력은 처벌이 약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아동 인권, 여성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적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아무리 거세를 하고 사형에 처해도, 피해자가 선뜻 신고도 할 수 없는 사회라면, 아동과 여성을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하지 않는 공동체라면 성범죄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 성범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인권에 있는 셈입니다.

인권이라는 원칙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극악무도한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강해야 합니다. 하지만 물리적 거세와 같이 인간의 신체를 가볍게 생각하는 분위기는 '신체권'이라는 인권 원칙의 중추 역시 거세하는 겁니다. 극단적인 신체형을 용인하는 문화가 오히려 인권 감수성을 떨어뜨리고, 언젠가 성폭력에 대한 분노도 약화시키지는 않을까 우려도 됩니다. 강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아동 성폭력이 충분이 용인되는 일부 인권 후진국들 처럼요. 처벌 외에도 우리 사회의 아동 인권, 여성 인권을 어떻게 고양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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