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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SNL 등장 '강남스타일'에 눈물 흘린 까닭은?

[취재파일] SNL 등장 '강남스타일'에 눈물 흘린 까닭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미국에서 대단한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난 주 미국 시간으로 금요일과 토요일, 잇따라 NBC 방송의 주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더니, 오늘은 유튜브 조회수가 2억 건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NBC의 ‘투데이쇼(Today Show)’ 이야기는 이미 당일 아침뉴스와 8뉴스에서 리포트했기 때문에 많이들 아실 겁니다. 그런데, 미국 사는 입장에서 더 놀랄 일은 다음 날인 미국 토요일 밤에 벌어졌습니다. 미국 TV 코메디 프로그램 중 가장 전통있고 파급력이 큰 Saturday Night Live (이하 SNL, 미국 동부 시간으로 매주 토요일 밤11시 30분 방영)에 ‘강남 스타일’이 전격 등장한 겁니다.

http://www.nbc.com/saturday-night-live/video/lids/1417085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NBC의 저작권 관리 때문인지, 유튜브에선 오리지널 영상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국내에서는 동영상 재생이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이날은 SNL의 시즌 오프닝이었습니다. 미국은 주요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시즌제입니다. 여름 동안 SNL은 지난 가을 겨울에 나간 에피소드들을 재방송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초가을이 되어, 올 시즌을 첫 시작하는 날이 지난 토요일이었습니다. SNL은 매주 유명 인사들이 돌아가며 MC를 맡는데, 이날 MC는 세쓰 맥팔레인(Seth MacFarlane)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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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쓰 맥팔레인은 Fox TV에서 방영 중인 '패밀리 가이', 몇달 전 개봉해 히트했던 영화 '테드' 등의 대본을 쓰고 감독했으며, 목소리 연기까지 했던 코메디계의 천재 거물입니다. 이 세쓰 맥팔레인이 ‘강남 스타일' 코너에 같이 나옵니다. 함께 등장하는 코미디언들도 SNL의 정규 인기 멤버들입니다. 이들이 한꺼번에 강남스타일을 흉내내고 흥겨워하는 와중에 싸이가 직접 나오기까지 했을 때,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와, 싸이 인기가 이 정도인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바탕 웃고 난 다음에는 괜시리 눈물이 났습니다. “강남스타일"처럼 웃기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나다니 정상이냐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외국에서, 특히 선진국에서 오래 사는 데 따른 애환이라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한국 사람이 미국 대중 매체에 의해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 못했습니다. 한국 남자가 TV에 나와서 뭔가 하는 것에 대해 미국 사회가 이렇게 열광하다니. 제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뉴욕에 나와 있거나 살고 있는 다른 한국분들에게서도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잘난 줄 아는 미국, 그중에서도 제일 잘난 사람들만 모여 사는 뉴욕에서 생활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자존심 상하는 일들을 많이 겪습니다. 특히 동양인 남자는 더욱 그렇습니다. 미국 사회의 인종 계층구조에서 제일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건 백인 남성 입니다. 백인 남성들이 동양인 여성들에게는 비교적 나이스합니다. 동양인 여성들은 더러 백인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 주류사회 상층부에 성공적으로 진입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인이 미국 대중매체로부터 받은 좋은 대접도 대체로 여성들에게 집중됩니다. 과거 영화배우 김윤진이 그랬고, 소녀시대 등 걸그룹이 그랬고, 올림픽 때 김연아가 그랬습니다. 동양인 남성은 간혹 착하고 속 깊은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대개 무뚝뚝하거나 촌스럽고 유머감각 없는 존재들로 통합니다.  그런데 싸이는,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그런 선입견을 일거에 허물었습니다.

게다가, 그게 누구의 탓이든 싸이는 군대도 두 번이나 갔다오지 않았습니까. NBC 투데이쇼 공연이 막 끝날 때, 땀범벅이 되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을 보며, 그간 겪었을 마음 고생과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을까 느껴졌습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지만, 그 기회를 잡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지요.

* Dress Classy, Dance Cheesy

싸이는 영어도 참 잘합니다. 미국에서 어릴 때부터 산 사람의 발음은 아니지만, 영어를 영어처럼 말할 줄 압니다. 그리고, 표현을 제대로 합니다. 싸이가 NBC의 낮시간대 인기 토크쇼인 엘렌 쇼에 나와서 자기 말춤의 컨셉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Dress Classy, Dance Cheesy.”

옷은 격조높게 입되 춤은 유치하게 추라는 이야기인데, 영어로도 정말 멋진 표현이어서, 명 진행자인 엘렌이 이 표현을 대단히 좋아했고, “그날의 한마디 (quote of the day)”로 선정했습니다. 이 말은 인터넷에서도 널리 퍼졌을 뿐 아니라, 미국사람들이 자기들끼리 ‘강남 스타일'을 소개하고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문장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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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가 미국 TV에 나올 때 보면, 상당히 자연스럽게 미국 사람들과 어울립니다. 보스톤 유학생활 할 때 “제대로 놀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고, 그게 싸이의 미국 내 성공을 가능케 하는 내공이기도 합니다. 미국 대중문화 시장은 아무리 콘텐츠가 좋다고 해도 ‘어색한 외국인'이 살아남기는 어려운 곳이거든요.

* 인기 비결은 “마카레나 효과?”

“강남스타일"이 미국인들에게 먹히는 건, 우선은 곡이 잘 만들어졌기 때문일 겁니다. 국적 불문, 모든 사람들의 귀에 중독성 있게 감기는 곡이 아니면, 아무리 뮤직비디오가 재미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히트하기 어렵죠.

제가 아는 한 미국인 방송 앵커는 이런 얘기도 합니다. “마카레나" 효과라구요. ‘마카레나'는 지난 1995년경 스페인 남자 가수가 춤과 함께 불러 세계적인 유행을 탔던 노래죠. 당시 전세계는 ‘마카레나'가 무슨 뜻인지, 가사가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지만, TV화면에 나오는 집단 군무가 쉽고 재미있다보니 너도나도 앞다퉈 따라했습니다. 미국에서의 ‘강남스타일'의 인기도 그것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과 SNS의 시대여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스스로 ‘강남’이 뭔지, 가사가 어떤 내용인지, 지식을 전파하고 있지만, 대개의 미국인들에게는 그런 건 별로 중요치 않다는 겁니다. 그저 노래와 춤이 너무나 재미있고 신난다는 것이죠.

* 미국진출 시기도 절묘

저는 싸이에게 천운도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유튜브에 뮤직비디오가 올라와 미국에 상륙한 시기가 참 절묘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수많은 팝스타들이 여름 휴가 시즌을 노리고 신곡을 내놓습니다. 치열한 경합 끝에 살아남는 노래들은 몇 안 됩니다. 그리고, 그런 노래들만 주로 소비됩니다. 올여름의 승자는, 칼리 레이 젭슨(Carly Rae Jepsen)의 “Call Me Maybe”( http://www.youtube.com/watch?v=fWNaR-rxAic)와 마룬5 (Maroon 5)의 “Payphone”(http://www.youtube.com/watch?v=zOOwAZyO5N0)이었습니다.

“One hundred days of summer vacation”이라고도 말하는 긴 여름휴가 기간 동안, 미국 사람들은 귓구멍에 딱지가 앉도록 이 노래들을 들었습니다. 이제 슬슬 지겨울 때가 되었을 때, 보기도 재미있고 듣기도 신나는 “강남 스타일"이 상륙한 겁니다. 주변 미국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강남 스타일 인기가 적어도 한 달은 더 가지 않겠냐”고들 많이 얘기합니다.

그 다음을 어떻게 이어갈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한국에서 익히 봐서 알다시피 싸이는 라이브로 다져진 내공이 있는 아티스트니까, 잘 해나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NBC의 주요 프로그램에 잇따라 진출한 건, 저스틴 비버 소속사이기도 하다는 기획사의 능력도 상당히 작용했을 겁니다.

아직 싸이의 대규모 라이브 공연 소식은 없는데, 단독 공연이든, 아니면 유명 가수의 라이브에 앞서 ‘강남 스타일'만 부르고 들어가는 형식이든, 라이브 무대가 주어지면 싸이의 상품성은 더욱 폭발할 수 있을 겁니다.  “강남 스타일" 열기가 남아있을 올해 안에,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가득 메우고 “챔피언" 등 자기 히트곡들로 뉴요커들을 열광시키는 싸이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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